신문은 선생님

[수학 산책] '8억6946만3853×73' 26초만에 암산… 훈련으로 터득한 경우 많대요

입력 : 2021.10.21 03:30

인간 계산기

[수학 산책] '8억6946만3853×73' 26초만에 암산… 훈련으로 터득한 경우 많대요
가끔 TV에서 엄청나게 큰 수의 곱셈이나 덧셈을 놀랍도록 빨리 계산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어요. 일반 사람들이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복잡한 계산을 머릿속에서 뚝딱 해내니 '인간 계산기'라 할 만하죠. 작년 온라인으로 열린 '마인드 스포츠 올림피아드(MSO)'에서 인도 출신 닐라칸타 바누 프라카시(22)가 암산 부문 금메달을 차지했는데, '8억6946만3853×73′을 단 26초 만에 풀었대요.

이렇게 뛰어난 암산 능력은 후천적으로 훈련된 경우가 많다고 해요. 프라카시도 다섯 살 때 머리를 다쳐 입원해 있는 동안 뇌를 계속 쓰려고 체스 게임을 하고 수학 문제도 풀었는데, 이후에도 이걸 계속하다 보니 저절로 훈련이 됐대요. 복잡한 계산을 빨리 하는 건 '구조적 훈련' 덕분이라는데요. 8763×8이라는 문제가 있으면 8000×8, 700×8, 60×8, 3×8로 나눠 계산한 다음 그 결과를 모두 더하는 방식이래요.

그런데 이런 암산 능력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람도 있어요. 바로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사람인데요. 이는 자폐 등 뇌기능 장애를 가진 사람 중 일부가 암산 등 특정 분야에서 천재적 재능을 보이는 현상을 말해요. 미국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사람 중 한 사람으로 의학 발전에도 큰 공을 세운 벤저민 러시가 1789년 서번트 증후군 환자에 대한 기록을 남겼어요. 70대 아프리카 노예 토머스 풀러가 엄청나게 빨리 계산을 했다는 내용이죠.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영국인 작가 대니얼 태멋은 회고록에서 빠른 계산의 비법을 소개했어요. 그는 모든 숫자를 마음속에서 각각 다른 모양과 색깔로 바꿔 계산한대요. 숫자에 시각적으로 접근하는 것이죠. 그는 27을 7번 반복해 곱하는 계산도 단 몇 초 만에 해내요. 태멋은 암기력도 대단했는데 2004년 '3.1415…'로 소수점이 끝없이 이어지는 원주율을 다섯 시간 넘는 동안 단 한 번의 실수 없이 2만2514 자릿수까지 정확하게 말했대요.

많은 사람들이 빨리 암산하는 능력을 부러워해요. 그런데 이렇게 암산을 잘해야 수학을 잘하는 걸까요? 사실 수학자의 상당수는 계산을 빠르게 하지 못해요. 복잡하고 큰 수의 계산은 컴퓨터에 맡기고 수학적 원리를 탐구하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지요. 계산하는 게 싫어서 쉽게 계산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수학자가 된 사람이 있을 정도예요. 계산은 단순 기술일 뿐, 계산을 잘한다고 반드시 수학을 잘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이광연 한서대 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