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美 베트남전 개입, 닉슨 대통령의 도청… 내부 비리 알렸죠

입력 : 2021.10.20 03:30

내부 고발자

①펜타곤 문서를 뉴욕타임스에 전달한 대니얼 엘즈버그가 기자 회견장에 선 모습. ②‘워터 게이트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했던 마크 펠트 전 FBI 부국장(가운데)이 전 동료 등에게 인사하는 모습. ③스위스 UBS가 운영하는 불법 조세 피난처 정보를 폭로한 브래들리 비르켄펠트. /게티이미지코리아·National Whistleblower Center
①펜타곤 문서를 뉴욕타임스에 전달한 대니얼 엘즈버그가 기자 회견장에 선 모습. ②‘워터 게이트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했던 마크 펠트 전 FBI 부국장(가운데)이 전 동료 등에게 인사하는 모습. ③스위스 UBS가 운영하는 불법 조세 피난처 정보를 폭로한 브래들리 비르켄펠트. /게티이미지코리아·National Whistleblower Center
세계 최대의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이 최근 도덕성 논란에 휩싸였어요. 전 페이스북 직원인 프랜시스 하우겐이 "페이스북이 이윤 최우선 정책을 펼치며 10대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에 해로운 콘텐츠와 운영 방식을 개선하지 않았다"고 폭로했기 때문이에요. 이에 페이스북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고, 미국 의회는 소셜미디어 규제 법안을 발의하고 나섰죠.

하우겐처럼 공익을 위해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이뤄지는 비리를 외부에 알리는 사람을 '내부 고발자'라고 해요. 영어로는 휘슬블로어(whistle-blower)라고 해요. 영국 경찰이 부정행위를 목격했을 때 호루라기를 불어 경고하는 행위에서 비롯된 말이에요. 과거 내부 고발자는 '배신자' '부적응자'로 낙인찍히고 고통받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미국 등 선진국들은 내부 고발자에게 보상을 제공하고 신변을 보호하는 등 장려하고 있답니다. 내부 고발이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사건은 어떤 게 있을까요?

펜타곤 문서 폭로한 군사 전문가

1971년 6월 미국이 베트남전 개입을 정당화하려 통킹만 사건을 조작했다는 사실을 뉴욕타임스(NYT)가 특종 보도했어요. NYT는 1945년부터 1967년까지 미국 정부가 베트남에 정치·군사적으로 개입한 내역을 담고 있는 7000쪽에 달하는 국방부(펜타곤) 문서를 입수해 보도한 거예요.

문서를 NYT에 넘긴 건 문서 작성에 참여한 군사 분석 전문가 대니얼 엘즈버그였어요. 베트남전에 반대했던 그는 1971년 문서 사본을 NYT에 넘겼고, NYT는 이를 1면에 보도했어요.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는 구실로 삼은 통킹만 사건이 조작됐다는 게 핵심이었죠. NYT 보도로 반전 운동이 더욱 거세졌어요.

닉슨 정부는 NYT 보도가 국가 안보에 위협된다며 제소했고 1심 법원에서 보도 정지 판결을 받아냈어요. 하지만 대법원은 보도 정지가 언론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1조'에 위배된다고 판결했죠. 당시 휴고 블랙 판사는 "자유롭고 억제되지 않은 언론만이 정부의 거짓을 효과적으로 폭로할 수 있다"며 언론의 자유를 지지했답니다.

워터 게이트와 '딥 스로트'

리처드 닉슨(1913~1994) 대통령의 '워터 게이트'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도 내부 고발자의 역할이 컸어요. 1972년 6월 17일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한 남성 5명이 체포됐어요. 닉슨의 재선을 위해 비밀공작반이 상대 정당인 민주당 본부에 침입해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된 것이죠. 당시 민주당 본부가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었기 때문에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불리게 됐어요.

당시 마크 펠트(1913~2008) FBI 부국장은 백악관이 이 사건을 은폐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는 워싱턴포스트(WP) 기자였던 밥 우드워드와 전화 통화를 하거나 몰래 만나 정부 고위직만 알 수 있는 정보들을 넘겼죠. 마크 펠트는 이 사건에 전 CIA 요원이자 닉슨 대통령의 측근인 하워드 헌트가 연루되어 있다는 것도 확인해줬어요. 우드워드는 동료 칼 번스타인과 함께 워터게이트 사건과 백악관의 비리를 파헤쳤어요. 당시 두 기자는 마크 펠트를 '딥 스로트(Deep Throat)'로 불렀는데 딥 스로트는 사실 성인 영화 제목이었다고 해요.

이들의 보도로 1973년 닉슨 대통령과 참모진의 불법 도청, 선거 방해, 불법 정치 자금, 탈세 등 범죄 행위가 밝혀졌어요. 결국 닉슨 대통령은 1974년 8월 탄핵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해 사임했죠. 이후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은 30년 넘게 '딥 스로트'의 정체를 숨겼는데, 2005년 마크 펠트의 정체가 밝혀졌답니다. 이 사건으로 '딥 스로트'는 '익명의 제보자'를 뜻하는 말이 됐어요.

내부 고발 후 돈방석 앉은 은행 직원

민간인도 내부 고발로 공익에 도움을 주는 경우가 있어요. 거기다 인생 역전까지 한 사람이 있답니다. 스위스 최대 은행 UBS(Union Bank of Switzerland)에서 일하던 브래들리 비르켄펠트입니다.

그는 UBS에서 일할 때 미국의 재력가들이 스위스에 계좌를 만들어 재산을 숨기고 탈세하는 일을 돕는 일을 했어요. 2007년 비르켄펠트는 미국 당국에 접근해 UBS가 운영하는 불법 조세 피난처 정보를 제공했어요. 이를 통해 UBS는 7억8000만 달러의 벌금을 물었고, 탈세 혐의를 받는 수천 명의 미국인 명단을 미국 정부에 제공해야 했죠. 이 사건으로 2010년 전 세계의 은행이 미국인이 보유한 계좌를 국세청에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이 통과됐어요. 비르켄펠트는 보상금으로 1억400만 달러(약 1225억원)를 받았답니다.


[미국 최초 내부 고발자]

폭풍 속에서 연을 날려 '피뢰침'을 발명한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은 '미국 최초의 내부 고발자'로 불리기도 해요.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였던 1760년대 영국이 미국에 각종 세금을 부과해 긴장이 높아지고 있었어요. 당시 프랭클린 등은 식민지 체제에 만족하는 보수적 입장이었지만, 영국에 불만을 갖는 급진파들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죠. 1772년 매사추세츠 하원 대표 자격으로 영국 런던에 있던 프랭클린은 매사추세츠 주지사 토머스 허친슨이 영국 정부에 쓴 편지 여러 통을 입수했어요. 허친슨은 편지에서 미국인들의 폭동 상황 등을 과장해 설명하며 더 많은 영국군을 파견해 달라고 하고, 미국인의 자유를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프랭클린은 허친슨이 왜곡된 사실을 전달해 양국 사이가 나빠지고 있다고 판단, 이를 알리기 위해 편지를 매사추세츠 의회 의장에게 전달했어요. 하지만 편지 내용이 알려지자 미국 시민들은 크게 분노했고, 급진파 인사들이 더 큰 지지를 얻게 됐어요. 결국 프랭클린의 폭로로 양국 관계는 더 나빠졌고, 이듬해 미국 독립 전쟁의 도화선이 된 '보스턴 차 사건'까지 일어났답니다.

윤서원·단대부고 역사 교사
윤서원 단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김연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