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소리 없는 세계에 사는 십대 소녀… 세상과 부딪치며 성장하는 이야기

입력 : 2021.10.18 03:30

산책을 듣는 시간

[재밌다, 이 책!] 소리 없는 세계에 사는 십대 소녀… 세상과 부딪치며 성장하는 이야기
정은 지음 l 출판사 사계절 l 가격 1만1000원

소리가 없는 세상은 어떨까요? 소설 '산책을 듣는 시간'의 주인공 수지를 만나고 나면, 소리 없는 세상에 대해 달리 생각하게 될 거예요. 소리가 없는 세상도 결핍의 세계가 아니라 온전한 세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머리가 끄덕여질 거예요.

수지는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돌이 채 안 됐을 때 고열에 시달린 후 귀가 들리지 않게 됐지요. 수지는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소리를 못 듣는다는 게 뭔지 잘 몰랐고, 마냥 행복했어요. 엄마와 수화로 대화해서 의사소통의 불편을 몰랐고, 장애인을 바라보는 동정의 시선도 받아보지 못했거든요.

수지는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악기를 배우고 싶어 피아노 학원에 갔지만 소리를 들을 수 없다며 거절당합니다. 수지는 몸으로 소리의 파동을 느끼면서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 혼자 놉니다. 수지는 구름이 흘러가는 소리, 물결이 번지는 소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특수학교에 입학했지만, 초등학교 내내 외로웠어요. 다행히 중학교 때 친구가 생깁니다. 그 친구는 색을 못 보고 명암만 구분할 수 있어서 늘 시각 장애인 안내견과 함께 다녔어요. 흑백으로 된 세상에 살고 있는 친구였지요. 안내견 마르첼로와 한민, 둘에게 끌려 수지는 주위를 맴돌다가 가까워집니다. 한민과 마르첼로는 수지의 유일한 친구가 됐어요.

그러던 중에 수지는 다가오는 자동차 소리를 듣지 못해서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할머니와 엄마는 그녀가 인공 와우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해요. 두개골을 절개하고 머리와 귀에 임플란트 장치를 해서 소리를 듣게 하는 수술이었어요. 수술을 받고 난 후, 소리가 없는 세계에서 소리가 있는 세계로 이동한 수지는 행복해졌을까요? 그녀는 온몸을 때리는 소리의 강렬함에 괴로워합니다. 고요를 빼앗겼다고 느껴요. 일반 학교로 전학 갔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곧 학교를 그만둡니다.

이후 수지를 아껴주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자기 꿈을 찾아 외국으로 떠났어요. 느닷없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수지는 비로소 슬픔을 배우게 됐어요. 하지만 오래 좌절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사람은 먼저 자신과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할머니의 당부를 가슴에 새기고 말이에요.

수지는 어떻게 됐을까요? '산책을 듣는 시간'이란 사업을 하는 사업가가 됐어요. 신청한 사람과 함께 산책을 하는 일이었죠. 수지의 사업은 제법 번창하고 있다고 하네요. 수지가 세상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삶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같이 지켜봐 주세요.
서현숙 교사·'소년을 읽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