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흥청망청 놀고먹는 '사육제'… 실제론 '고기여 안녕'이란 뜻

입력 : 2021.10.13 03:30

카니발

①브라질 ‘리우 카니발’ 퍼레이드의 선두에 선 ‘드럼 퀸’의 모습. ②파우 브라질. 브라질의 국명이 이 나무에서 유래됐대요. ③피터르 브뤼헐이 그린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1559)의 일부분. 기독교 사순절의 금욕적인 정신과 사육제(카니발)의 화려하고 분주한 풍경을 한 폭에 담은 작품이에요. 술통 위에 앉은 배가 불룩한 사람은 사육제를 상징하는데, 각종 고기를 꿴 꼬챙이를 들고 있죠. 반대편 청어 두 마리만 갖고 있는 비쩍 마른 남성은 사순절(교회)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위키피디아
①브라질 ‘리우 카니발’ 퍼레이드의 선두에 선 ‘드럼 퀸’의 모습. ②파우 브라질. 브라질의 국명이 이 나무에서 유래됐대요. ③피터르 브뤼헐이 그린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1559)의 일부분. 기독교 사순절의 금욕적인 정신과 사육제(카니발)의 화려하고 분주한 풍경을 한 폭에 담은 작품이에요. 술통 위에 앉은 배가 불룩한 사람은 사육제를 상징하는데, 각종 고기를 꿴 꼬챙이를 들고 있죠. 반대편 청어 두 마리만 갖고 있는 비쩍 마른 남성은 사순절(교회)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위키피디아

브라질의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가 내년 초 '카니발 축제'를 개최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전해졌어요. 브라질 카니발은 매년 2월 말에서 3월 초에 여러 도시에서 열리는데, 올해 초엔 코로나 때문에 취소됐죠. 평소 카니발로 관광 수입을 수조 원 올리던 브라질은 행사 취소로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백신 접종 완료자가 크게 늘어나자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 도시 당국이 내년 초 축제를 재개하기로 한 것이지요.

흥겨운 삼바 춤에 맞춰 진행되는 브라질의 카니발은 전 세계에서 매우 유명한 축제 중 하나예요. 카니발은 브라질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열리지만, 특히 브라질 카니발이 가장 유명해요. '삼바에 살고, 삼바에 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삼바 음악·춤이 넘치는 카니발은 브라질의 상징입니다. 화려한 마스크를 쓰고 삼바 춤을 추는 무용수들이 떠오르는 카니발 축제. 여기엔 브라질의 슬픈 역사가 숨어 있답니다.

나무 이름이 국가명 됐대요

남아메리카 지역 나라는 대부분 스페인어(에스파냐어)를 쓰지만,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써요. 왜 그럴까요? 15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대서양으로 항해를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어요. 신대륙 소유권을 놓고 두 나라는 갈등을 빚었죠. 결국 1494년 서경 46도 부근에서 남북으로 선을 그어 동쪽 영토(브라질~인도)는 포르투갈이, 서쪽 영토(카리브해~태평양)는 스페인에 귀속됐어요. 포르투갈과 스페인 국왕이 국경선을 확정한 것을 '토르데시야스 조약'이라고 합니다. 이 선은 브라질의 동쪽 끝부분을 지나가지만, 브라질은 모두 다 포르투갈 영토가 됐어요.

브라질이라는 나라 이름도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와 관련 있어요. 1500년 포르투갈이 브라질 일대를 탐험하다 붉은 염료의 재료로 쓰는 '파우 브라질'이라는 나무를 발견했어요. 이 나무 이름이 추후 '브라질'이라는 국명이 됐다고 알려져 있어요.

식민지 시절 유럽의 가톨릭 문화 유입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가 시작되면서 유럽의 가톨릭 문화인 '카니발(Carnival)'도 들어왔어요. 가톨릭에선 부활절 이전 40일간을 고기를 먹지 않는 '사순절(四旬節)'로 삼았어요. 예수의 고난에 동참해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절제와 금욕 생활을 하자는 의미죠. 사람들은 그 전에 미리 고기를 많이 먹어두려 했는데, 그것이 카니발(사육제·謝肉祭)로 이어졌어요. 카니발의 어원에는 여러 설이 있어요. 우선, 이탈리아어 '카르네 발레(carne vale)'에서 왔다는 거예요. '카르네'는 '고기', '발레'는 '안녕'이라는 뜻으로 '고기여, 안녕'이란 의미죠. 사순절이 되면 고기를 못 먹을 테니 작별 인사를 한다는 의미로 해석돼요. 또, 라틴어 '카르네 레바레(carne levare)'에서 왔다는 얘기도 있어요. '고기를 없애다'라는 뜻이죠. 카니발 동안 사람들은 고기와 술을 마음껏 먹고 마셨을 뿐 아니라, 장난도 치고 놀이도 했어요. 서로 물총을 쏘고, 밀가루 반죽으로 공을 만들어 던지고 놀기도 했대요.

1822년 브라질이 포르투갈에서 독립한 후 카니발은 완전히 브라질 사회에 정착했어요. 집안 행사에서 점차 거리 행사로 확대됐죠. 특히 독립으로 해방감을 얻은 사람들이 더욱 과감히 행동해 종종 카니발이 폭력 사태로 번지기도 했대요. 이에 1900년대 초엔 리우에서 '문명 도시 리우 만들기' 캠페인이 벌어져 이때부터 장난·폭력이 난무하는 카니발은 차차 사라졌고 새로운 형식의 축제로 바뀌기 시작했어요.

흑인 노예들 애환 담겼죠

가톨릭 문화였던 카니발에 식민지 시절 브라질에 온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의 문화가 결합하기 시작했어요. 흑인 노예들은 당시 사탕수수와 담배 농장에서 주로 일했어요. 고된 노동을 견디는 유일한 돌파구가 춤과 노래였는데, 이들의 설움이 녹아 있는 음악이 바로 '삼바'예요. 이 때문에 삼바에는 여러 아프리카 부족의 다양한 리듬이 섞여 있답니다.

1888년 브라질에서 노예 해방이 이뤄지자 자유를 찾은 흑인들은 일자리를 찾으러 당시 경제가 성장하던 리우데자네이루로 모였어요. 하지만 일자리를 얻기는 쉽지 않았죠. 이들은 언덕 위 판자촌이 밀집한 파벨라(브라질의 빈민가)에 모여 살면서 저녁이 되면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며 시름을 달랬어요. 그리고 자기들만의 '작은 카니발'을 열기도 했어요. 1920년대 후반 한 빈민 구역에 '속 시원히 말 좀 합시다'라는 뜻의 '데이샤 팔라르'라는 삼바 학교가 최초로 생겼어요. 여기서 흑인들은 카니발에서 각자 할 역할에 대해 논의하고 의상도 제작하면서 연습했대요. 이름은 학교지만, 지역 공동체 역할을 한 것이지요. 이들은 '삼바' 음악과 춤을 이용해 축제를 즐겼어요. 갈수록 삼바 학교가 늘어나자, 자기들끼리 경연도 시작했죠. 결국 그들의 카니발 문화가 브라질 전체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됐어요. 지금 카니발은 브라질 여러 도시에서 열리는데, 그중 단연 규모가 큰 것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리우 카니발'이랍니다.

[삼바 학교]

브라질에는 카니발을 준비하는 삼바 학교가 많아요. 각 학교 공연단은 주제에 따라 퍼레이드를 구성해 축제에 참여해요. 퍼레이드는 단순 축제가 아니라 경쟁이기도 해요. 심사위원들이 음악·의상·춤·기획 등 여러 부문을 심사해 우승팀을 결정하거든요. 삼바 학교들은 축제에서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해요. 1992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환경 회의가 열렸을 땐 삼바 학교 대부분이 '환경'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어 출전했답니다.

서민영 함현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김연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