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사소한 역사] 영국 '커틀릿'에서 유래… 日 체격 열세 극복하려 육식 늘리며 도입

입력 : 2021.10.12 03:30

돈가스

오스트리아의 슈니첼(위)과 일본의 돈가스(아래). /위키피디아·Pexels
오스트리아의 슈니첼(위)과 일본의 돈가스(아래). /위키피디아·Pexels
저민 돼지고기에 튀김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긴 '돈가스'는 어린이와 어른 모두 좋아하는 요리예요. 최근엔 TV 방송에 나온 이후 지나치게 손님이 몰려 서울에서 제주도로 가게를 옮긴 돈가스 식당이 있었는데요, 사람들이 돈가스를 먹으려고 텐트 치고 밤을 새워 줄까지 서자 '대체 무슨 돈가스이기에'라는 소리도 나왔죠. 이런 돈가스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일본 요리인 돈가스는 돼지 '돈(豚)'과 '커틀릿(cutlet)'을 일본식으로 읽은 '가쓰레쓰'의 합성어예요. 일본에선 675년 불교신자였던 덴무 천황이 소·말 등 동물들을 먹지 못하게 하는 '육식 금지령'을 내린 후 1200년간 육식(肉食)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1858년 미·일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되고 메이지 유신으로 서구화·근대화가 추진되면서 달라졌어요.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체격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선 서양처럼 육식을 해야 한다고 본 거죠. 그때부터 서양 육식 요리를 일본인 입맛에 맞게 바꾼 음식들이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카레와 오므라이스, 그리고 돈가스 같은 요리였죠.

당시 돈가스와 비슷한 유럽 요리로 영국 커틀릿과 오스트리아 슈니첼(Schnitzel)이 있었어요. 둘 다 얇은 고기에 빵가루를 입혀 기름에 부침개처럼 구워 낸 것인데, 메이지 시대 일본은 같은 섬나라로 강대국이었던 영국을 모방하려 했기 때문에 돈가스 원형이 영국 커틀릿이란 설이 우세해요. 1872년 서양 문물을 소개하는 책자들을 펴낸 가나가키 로분이 돼지고기로 커틀릿을 만드는 방식을 소개하면서 커틀릿이 일본에서 인기를 얻게 됐죠. 이후 도쿄의 '렌가테이'라는 식당이 더 쉽고 빠르게 요리를 만들기 위해 일본식 튀김 기법을 응용해 돼지고기에 밀가루와 계란, 빵가루를 입혀 기름에 튀겨내는 방식을 개발했어요. 그리고 1890년대 중·후반부터 '포크커틀릿'이란 이름으로 팔기 시작했는데, 이게 '돈가스의 원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1929년엔 전직 궁내청(일 왕실 관리 부서) 요리사인 시마다 신지로가 우에노에 있는 자기 식당에서 돈가스를 팔기 시작하면서 젓가락으로 하나씩 집어먹을 수 있도록 미리 썰어서 내놓았대요. 이 방식이 점점 퍼져나가 일본 돈가스의 특징이 됐죠.

한국에는 돈가스가 일제강점기인 1930~1940년대 전래됐지만, 대중화된 건 경제성장이 시작된 1960년대부터예요. 당시 돈가스는 분위기 있는 경양식집에서 먹는 음식이었죠. 미리 썰려 있고 두툼한 일본 돈가스와 달리 한국식 돈가스는 얇고 큰 돈가스를 썰지 않고 그대로 내는 방식이었어요. 한국식 돈가스가 유럽의 커틀릿이나 슈니첼과 더 비슷한 셈이죠.
김현철 서울 영동고 역사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