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명화 돋보기] 루이 14세는 궁정화가에게 반려견 그림 그리게 했대요

입력 : 2021.10.11 03:30

명작 속 개들

①알렉상드르 프랑수아 데포르트 ‘루이 14세의 개들, 디안과 블롱드’(1702년). ②이암 ‘모견도’(16세기 전반). ③토머스 게인즈버러 ‘아침 산책’(1785년). ④헤라르트 테르 보르흐 ‘개의 벼룩을 잡는 소년’(1655년쯤). ⑤장 바티스트 그뢰즈 ‘말썽꾸러기’(1765년). /국립중앙박물관·이주은 교수 제공
①알렉상드르 프랑수아 데포르트 ‘루이 14세의 개들, 디안과 블롱드’(1702년). ②이암 ‘모견도’(16세기 전반). ③토머스 게인즈버러 ‘아침 산책’(1785년). ④헤라르트 테르 보르흐 ‘개의 벼룩을 잡는 소년’(1655년쯤). ⑤장 바티스트 그뢰즈 ‘말썽꾸러기’(1765년). /국립중앙박물관·이주은 교수 제공

지난달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전체의 15%나 된다고 해요. 주변을 둘러보면 동물 병원과 미용실은 물론이고 반려동물과 함께 들어갈 수 있는 카페 등 편의 시설도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가족이 여럿인 가구뿐 아니라 혼자 사는 1인 가구도 반려동물을 많이 키우는데,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몸과 마음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길게는 수만 년 전부터 인간과 함께 지내온 개는 예나 지금이나 대표적인 반려동물이지요. 학자들은 야생의 무리를 떠난 늑대가 인간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인간에게 길들여져 개로 진화한 것으로 보고 있어요. 개는 사람들이 사냥을 나갈 때 함께 나가 큰 공을 세우는가 하면, 양몰이 등 가축을 감시하는 역할도 했지요. 냄새를 잘 맡고 귀가 밝아 시각장애인을 인도하거나 저택의 경비를 책임지기도 하지요. 오늘은 명화 속에 나오는 개 이야기를 살펴볼게요.

태양왕의 애견들

<작품 1>
은 '태양왕'이라 불린 프랑스 루이 14세(1638~1715)가 사냥에 데리고 다녔던 포인터 두 마리를 그린 '개 초상화'입니다. 루이 14세가 직접 궁정 소속 화가에게 그리라고 지시한 것을 볼 때, 왕이 가장 예뻐한 개였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림에 디안(Diane)과 블롱드(Blonde)라는 개 이름도 적혀 있네요. 개들은 그림의 왼쪽 아래에 있는 새들을 사냥감으로 노리고 있어요. 그림에는 새의 몸통 뒷부분만 보이네요. 개들의 접근을 미리 알아챈 새 한 마리는 날쌔게 하늘로 날아올라 도망치고 있습니다. 디안과 블롱드는 왕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 사냥 나갈 때 앞장섰을 뿐 아니라, 평소에는 왕의 방 입구에 앉아 왕을 지키는 특별 임무까지 맡았다고 합니다.

개와의 산책 풍경

우리나라의 옛 그림 중에도 개 초상화가 있어요. <작품 2>는 조선 시대 화가 이암(1499~미상)이 그린 '모견도'입니다. 이암은 왕실의 후손으로 동물 그림을 잘 그렸어요. 이 그림 속 개들이 그의 애견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어미 개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새끼들을 바라보고 있고, 한 새끼는 어미 등에 올라타 곤히 잠들어 있고, 다른 새끼들은 품속을 파고들며 어여쁜 재롱을 피우고 있네요.

사람과 개가 함께 등장하는 그림을 볼까요? <작품 3>은 영국 화가 토머스 게인즈버러(1727~1788)가 그린 '아침 산책'이에요. 이 그림에는 부부의 산책길에 동반한 흰색 개가 등장합니다. 궁전에서 지낸 루이 14세의 개들 못지않게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개는 야외에 나가 바람을 쐬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산책하는 모습이 눈에 잘 띄어요. 요즘에도 동네 공원에 나가면 개와 함께 걷거나 뛰는 사람들을 아침저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게인즈버러는 풍부한 자연 풍경 속에 인물을 배치하는 그림을 즐겨 그렸어요. 풍경화와 초상화를 결합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죠. 개도 인물들 사이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게인즈버러가 살던 18세기 후반에 영국 상류층 사이에서 최고 인기를 누린 그림 주제 역시 아름다운 전원 속에서 개와 함께 산책을 즐기는 모습이었어요.

주인과 개의 우정

서민 가정에서 키우는 개는 어떤 모습으로 그림 속에 나올까요? <작품 4>를 보세요. 17세기 네덜란드의 풍속화가 헤라르트 테르보르흐(1617~1681)가 자기 아들을 모델로 그린 '개의 벼룩을 잡는 소년'입니다. 차분한 빛으로 가득한 검소한 분위기의 실내를 배경으로, 개를 아끼는 소년과 주인을 믿고 의지하는 개 사이에 잔잔한 우정이 오가는 게 느껴집니다.

<작품 5>에서도 서민 가정의 소년과 개가 나옵니다. 18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프랑스의 화가, 장 바티스트 그뢰즈(1725~1805)가 그린 '말썽꾸러기'예요. 그뢰즈는 중산층이나 일반 서민층의 어른과 아이에게 교훈이 될 만한 내용을 주로 그렸어요. '말썽꾸러기'는 편식하는 소년이 음식을 먹는 척하면서 숟가락으로 떠서 발밑에 있는 개에게 몰래 주는 모습입니다. 싫어하는 음식을 먹지 않으려는 것이지 개를 위한 우정의 행동은 아니지요. 소년의 엄마로 보이는 오른쪽 여인은 아이가 잔꾀를 부리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꾸중 대신 상냥하게 타이르려 하는 것 같습니다. 올바른 가정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한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림 속의 개를 보면 사람이 개와 지낸 시간과 더불어 개를 통해 인간 세상을 빗대어 표현하고자 한 화가의 의도까지 엿볼 수 있답니다.

[앤디 워홀이 사랑한 개]

예술가 중에서도 개를 아낀 이가 많았어요. '팝아트의 왕' 앤디 워홀(1928~1987)에겐 아모스와 아치라는 닥스훈트 두 마리가 있었어요. 워홀은 둘을 끔찍이 아껴 그림으로도 남겼죠. 아모스와 아치가 수의사에게 다녀온 날 워홀은 일기에 이렇게 썼어요. "인생은 너무나 짧고 개의 삶은 더더욱 짧다." 인간보다 개의 수명이 짧은 것을 안타깝게 여긴 것이지만, 결국 세상을 먼저 뜬 것은 워홀이었어요. 그는 이 일기를 쓴 날로부터 두 달 후 수술 합병증으로 사망했습니다.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김연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