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쇼팽의 짝사랑 고백曲… 아름답고 낭만적 선율로 유명해요

입력 : 2021.10.04 03:30

쇼팽의 2개 피아노 협주곡

왼쪽부터 쇼팽이 짝사랑했던 콘스탄차 글라트코프스카, 프레데리크 쇼팽, 9년간 쇼팽의 연인이었던 소설가 조르주 상드./The Fryderyk Chopin Institute 홈페이지·위키피디아
왼쪽부터 쇼팽이 짝사랑했던 콘스탄차 글라트코프스카, 프레데리크 쇼팽, 9년간 쇼팽의 연인이었던 소설가 조르주 상드./The Fryderyk Chopin Institute 홈페이지·위키피디아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꿈의 대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가 우리나라 시각으로 3일 오후 5시 본격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쇼팽 콩쿠르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5년마다 개최하는 세계 최고 콩쿠르 중 하나로, 코로나 때문에 1년 미뤄져 이번 18회 대회는 6년 만에 열립니다. 피아니스트가 모두 87명 출전하는 이번 대회엔 한국 피아니스트도 7명 참가했습니다.

우리에게 쇼팽 콩쿠르가 친숙해진 결정적 계기는 바로 직전 대회인 2015년 17회 쇼팽 콩쿠르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우승한 일이라 할 수 있어요. 이번에도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주는 무대가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쇼팽 콩쿠르는 단 한 사람의 작품만으로 심사합니다. 참가자들은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폴란드 작곡가 프레데리크 쇼팽(1810~1849)의 작품만을 연주합니다. 세 차례 예선 무대에서 참가자들은 쇼팽이 작곡한 발라드·스케르초·프렐류드·녹턴 등을 연주합니다. 마지막까지 남은 피아니스트들은 결선 무대에서 쇼팽이 남긴 피아노 협주곡 두 곡 중 하나를 골라 연주해야 합니다.

쇼팽이 스무 살에 완성한 피아노 협주곡 두 곡은 아름다운 선율과 화려한 피아노의 기교로 널리 사랑받는 명곡입니다. 쇼팽 콩쿠르 결선 지정곡으로 6년 만에 무대에 오르는 피아노 협주곡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요?



사랑에 빠진 수줍은 쇼팽 모습 담겨있어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두 곡 모두 쇼팽이 학창 시절 짝사랑했던 후배 여학생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먼저 만들어진 곡은 우리에게 피아노 협주곡 2번 F단조 작품 21로 알려진 작품이에요. 피아노 협주곡 1번보다 먼저 작곡했지만 출판이 늦어져 작품 순서가 바뀌었어요.

1826년 바르샤바 음악원에서 공부하기 시작한 쇼팽은 1829년 초 같은 학교 성악과 학생인 콘스탄차 글라트코프스카를 보고 한눈에 반하고 맙니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던 쇼팽의 마음은 짝사랑에 그쳤어요. 그는 절친이었던 티투스 보이치에호프스키에게 쓴 편지에서 "이상형을 발견했어. 반년 동안 밤마다 그녀가 나오는 꿈을 꿨지만, 아직 그녀에게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어"라고 털어놓았죠.

쇼팽은 말로 하는 고백 대신 음악으로 마음을 표현했어요. 1830년 3월에 초연한 협주곡 2번은 글라트코프스카에게 보내는 사랑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격한 고전주의 스타일로 만든 1악장, 폴란드 민속 춤곡인 마주르카 리듬을 쓴 3악장도 훌륭하지만, 이 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서정적 멜로디가 아름답게 흐르는 2악장입니다. 관현악이 조용히 반주하는 가운데 피아니스트가 달콤하면서도 감상적인 선율을 노래하는데, 사랑에 빠진 수줍은 청년 쇼팽의 모습이 잘 드러나는 명곡이에요.



낭만적이고 우수어린 분위기

이보다 7개월 뒤인 1830년 10월에 초연한 피아노 협주곡 1번 E단조 작품 11은 이전 협주곡보다 규모가 커지고 좀 더 성숙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 곡 역시 글라트코프스카를 생각하며 만들었다고 알려져있어요. 조성진이 지난 콩쿠르 때 연주해 우승한 곡입니다.

쇼팽은 보이치에호프스키에게 보낸 편지에서 1번 협주곡 2악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낭만·고요함·우수를 살려서 연주해야 하며, 달빛 아래서 명상하는 느낌이 드는 곡이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1악장부터 당당하고 화려한 악상과 확대된 스케일로 듣는 사람들을 사로잡습니다. 2악장은 2번보다 더욱 진하고 열정적인 사랑 노래이며 쇼팽 특유의 낭만적 정서가 넘쳐흘러요. 경쾌한 3악장에선 피아니스트가 '크라코비아크'라는 폴란드 민속 춤곡의 리듬을 바탕으로 눈부신 기교를 선보이며 멋지게 전곡을 마무리합니다.

쇼팽과 글라트코프스카의 관계는 쇼팽이 조국 폴란드를 떠나며 짝사랑으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쇼팽이 그녀를 위해 만든 곡들은 지금까지 큰 사랑을 받고 있어요. 협주곡 두 곡은 평소에도 사랑받지만, 쇼팽 콩쿠르에선 더욱 긴장하고 집중해서 듣게 됩니다. 출전자 모두에게 행운을 기원하며, 결선에 많은 한국 피아니스트가 진출해 그들이 연주하는 피아노 협주곡을 여러 차례 듣게 되길 바랍니다.


[쇼팽의 여인들]

쇼팽이 폴란드를 떠나 서유럽에 진출한 후 사랑한 여인은 옛 친구의 여동생 마리아 보진스카였습니다. 두 사람은 1835년 여름휴가 때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고, 쇼팽은 이듬해 보진스카에게 청혼합니다. 하지만 보진스카의 부모가 병약했던 쇼팽의 건강 때문에 반대해 결국 둘의 관계는 1837년 7월 깨지게 됩니다. 그 후 쇼팽이 만난 여인은 소설가로 유명한 조르주 상드(1804~1876)였습니다. 쇼팽보다 여섯 살 연상이었어요. 1838년 여름부터 연인 관계가 된 두 사람은 한때 마요르카섬으로 도피 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프랑스 중부 지방 마을 노앙과 파리를 오가며 사랑을 나누었죠. 하지만 두 사람 관계 역시 사소한 오해 때문에 약 9년 만에 파국을 맞게 됩니다. 쇼팽을 마지막까지 돌본 여인은 제자였던 제인 스털링이었어요. 스코틀랜드 출신인 스털링은 1848년 쇼팽의 영국과 스코틀랜드 연주 여행을 주선하기도 했고, 쇼팽이 애정을 주지 않았는데도 온 정성을 다해 그를 돌보며 마지막 여인으로 남았습니다.

김주영 피아니스트 기획·구성=김연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