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4시간 넘게 美 비난한 카스트로… 외교 단절로 이어졌죠
역사적 유엔 연설들
- ▲ 1960년 피델 카스트로 쿠바 총리 - “미국 등 제국주의 국가들이 제3세계 착취”. /게티이미지코리아
지난 20일(현지 시각) 유엔(UN) 총회에서 BTS(방탄소년단)가 특별 연설을 해 화제가 됐어요. BTS는 "지금 10대, 20대는 코로나로 인한 '로스트 제너레이션(잃어버린 세대)'이 아니라 '웰컴 제너레이션'이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린다. 변화에 겁먹기보다는 '웰컴'이라 말하며 앞으로 걸어나가는 세대라는 의미"라고 말했어요. 코로나로 지친 청년 세대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죠.
유엔 총회는 1945년 창설된 유엔의 최고 의사 결정 기관이에요. 보통 1년에 한 번 9월에 미국 뉴욕에서 회의를 열어 국제 협력이나 예산 문제를 논의하죠. 총회에선 각국 정상 등이 연설하는데, 이 연설은 전 세계에 공개되기 때문에 새로운 화두를 제시하거나 관심을 촉구하기 좋은 기회예요. 그동안 많은 정치가와 유명인이 연설에 나섰어요. 역사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줬다는 평가를 받는 연설은 어떤 게 있을까요?
'최장 연설' 기록 세운 피델 카스트로
쿠바의 공산 혁명을 이끈 피델 카스트로(1926~2016)는 유엔 총회에서 무려 4시간 29분을 연설해 국가 정상급 중 최장 연설 기록을 갖고 있어요.
카스트로는 1959년 바티스타의 독재 정권을 타도하고 공산 독재 정권을 세워 쿠바 총리가 됐어요. 그때부터 그는 외국 기업과 산업 시설을 국유화하는 급진적 공산화 정책을 펼쳤죠. 쿠바에 투자한 많은 미국 기업이 경제적 피해를 보자 미국과 쿠바 사이가 급속도로 나빠졌어요. 쿠바가 미국 기업의 석유 산업 시설을 몰수하자 미국이 쿠바산(産) 설탕 수입을 중단했고, 쿠바는 보란 듯이 소련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지요.
1960년 9월 카스트로는 유엔 총회에 참석해 자신의 혁명을 선전하고, 미국 등 제국주의 국가들이 제 3 세계 국가들을 착취하고 있다고 주장했어요. 그는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존 F. 케네디에 "문맹, 무식" 등 단어를 쓰며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애초 1시간 정도 연설하겠다고 연단에 올라갔는데, 4시간 넘게 내려가지 않았어요.
이 연설 후 1961년 1월 미 아이젠하워 정부는 쿠바와 맺은 모든 외교 관계를 끊었어요. 곧 취임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4월에 카스트로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피그스만(Bay of Pigs) 침공을 명령했어요. 피그스만 침공은 미 정부가 망명한 쿠바인 1500여 명을 모집해 쿠바의 피그스만을 공격한 사건이에요. 하지만 이 작전은 대실패로 끝났고, 승리한 카스트로 입지는 더욱 강해졌죠. 카스트로는 2008년까지 49년간 쿠바를 통치해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집권한 지도자'로 기네스북에 올랐답니다.
야세르 아라파트 "올리브 가지와 총"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초대 의장이었던 야세르 아라파트(1929~2004)의 1974년 연설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1960년대에 게릴라 조직을 이끌며 이스라엘의 주요 시설을 파괴하는 무장 투쟁을 벌였고, 1969년엔 PLO 의장이 됐죠.
팔레스타인은 유엔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1974년 당시 아라파트는 비정부 기구 PLO 대표 자격으로 유엔에 초대받아 연설했어요. 연설 주제는 팔레스타인에 주권을 부여하라는 것이었죠. 그는 "나는 한 손엔 올리브 가지를, 다른 손엔 독립 투사의 총을 들고 왔다. 이 올리브 가지가 내 손에서 떨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했어요. 총은 '전쟁', 올리브 가지는 '평화'를 비유한 것으로, 이스라엘과 분쟁을 겪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절박한 상황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촉구한 거예요. 연설 후 유엔 총회는 팔레스타인의 주권을 인정해 '비회원 옵서버 단체' 자격을 부여했어요.
1988년 PLO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을 선포하고 야세르 아라파트는 대통령이 됐습니다. 그는 무장 투쟁의 한계를 극복하고 팔레스타인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기 위해 평화 노선을 택했어요. 이스라엘과 평화 협상을 해 1993년 오슬로 협정을 맺었고 서로 존재를 인정했죠. 그는 오슬로 협정을 체결한 공로로 1994년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 시몬 페레스 외무장관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았답니다.
이라크 전쟁 서막 된 콜린 파월 장관의 연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2년 1월 북한·이라크·이란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어요. 그가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이 바뀌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하던 상황이었죠.
2003년 2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라크 무기 사찰 후 공개회의를 소집했어요. 콜린 파월 당시 미 국무장관이 연설자로 나섰죠. 그는 각종 자료를 동원해 사담 후세인이 대량 살상 무기(WMD)를 보유하고 있고 테러 단체 알카에다와 연루돼 있다고 주장하며 이라크 침공 승인을 요구했죠. 그는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점을 각국에 확신시키려 생화학 무기 포자가 든 시험관을 보여주기도 했어요. 하지만 프랑스·독일 등이 전쟁에 반대해 안전보장이사회 승인은 얻지 못했어요.
하지만 파월 장관의 연설 한 달 후 미국은 안보리 동의 없이 이라크 전쟁을 시작했어요. 미국의 공격으로 전쟁 한 달여 만에 후세인 정권은 무너졌지만, 이라크에서 대량 살상 무기는 발견되지 않았고 2010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종전 선언을 할 때까지 민간인 약 10만명, 군인 5000명이 목숨을 잃었어요.
☞그레타 툰베리
유엔 연설로 반향을 일으킨 건 정치인만이 아니에요. 스웨덴의 10대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사진>는 2019년 16세 때 유엔 총회에 참석해 기후변화 대응을 외면하는 세계 정상들을 질타했어요. 툰베리는 "당신들이 (기후변화 대응에) 실패하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죠. 전 세계에 환경 문제 관심을 일으킨 그는 이후 시사 주간지 타임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고,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어요.
- ▲ 2003년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 - “사담 후세인, 대량 살상 무기 보유”. /UN PHOTO
- ▲ 1974년 야세르 아라파트 PLO 의장 - “나는 올리브 가지와 총을 들고 왔다”. /UN PHOTO
- ▲ 그레타 툰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