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사소한 역사] '바다 위 길잡이'… 인천상륙작전 때도 결정적 역할 했죠
입력 : 2021.09.28 03:30
등대
- ▲ /문화재청
고대엔 횃불이나 봉화를 등대 대신 사용했어요. '삼국유사'에 금관가야의 김수로왕이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을 맞이하기 위해 망산도라는 섬에 불을 밝혀 뱃길을 안내하라고 명령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요.
건축물로 지어진 최초의 등대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파로스섬의 등대로 알려져 있어요. 기원전 3세기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건설을 시작했는데, 그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 2세 때 완공됐어요. 이 등대 꼭대기엔 거대한 거울이 있어서 낮엔 햇빛을, 밤엔 화로(火爐)의 불빛을 반사시켜 뱃길을 안내했대요. 거울이 어찌나 컸던지 55km 밖까지 불빛이 퍼져 나갔고, 맑은 날엔 거울에 바다 건너 콘스탄티노폴리스(현 터키 이스탄불)가 비쳤다는 이야기도 전해져요.
파로스 등대는 지진 등으로 14세기쯤 무너졌지만, 그 명성이 우리나라까지 전해진 모양이에요. 조선 태종 때 만들어진 세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는 이집트 카이로 부근에 탑 모양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이 파로스 등대를 묘사한 걸로 추정돼요. 이 지도는 현재 원본은 없고 모사본이 일본과 한국에 있는데 등대 추정 그림은 일본의 모사본에만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근대식 등대는 개항 이후 등장했어요. 강화도조약(1876년) 이후 부산·인천·원산이 개항되면서 드나드는 선박이 크게 늘어나자 횃불로는 한계가 있었어요. 이에 1903년 한국 최초의 근대식 등대인 팔미도 등대<사진>와 소월미도 등대가 인천항에 지어져 불을 밝혔어요.
팔미도 등대는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결정적 역할을 했어요. 당시 작전 성공엔 안전한 뱃길 확보가 최우선이었는데, 한·미군 병사들이 팔미도에 침투해 9월 14일 자정에 등대 불을 밝혔죠. 이 불빛을 보고 인천 앞바다로 모여든 유엔군 함대가 15일 새벽 상륙작전을 벌일 수 있었어요. 팔미도 등대는 2003년까지 사용됐고 지금은 역사적 건물로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