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봄나물 캐고 모내기, 송편에 김장… 재일조선인 화가가 담은 우리네 삶
입력 : 2021.09.27 03:30
우리 세시 풍속 도감
매년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이 되면 우리는 반가운 친척을 만나 맛있는 것을 나눠 먹으며 안부를 묻습니다. 과거 조상들은 추석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세시 풍속은 농경 사회였던 옛날부터 사계절마다 행해지던 풍습이나 행사예요. 이 책은 세시 풍속과 장날 풍경, 전통 놀이와 음악, 춤 등 옛 조상들 생활을 마치 눈앞에 펼친 듯 생생한 그림과 함께 보여줍니다.
이 책에 실린 그림을 그린 홍영우 선생은 1939년 일본 아이치현에서 태어나 201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을 일본에서 산 재일조선인 2세예요.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지요. 그림은 혼자 공부했고, 한글도 스물네 살이 되어서야 배울 수 있었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무릎에 앉혀 놓고 들려주던 우리 땅과 전통 이야기를 토대로 스스로 공부해 소박하면서도 생생한 풍속화를 그려냈어요.
우리 조상들은 봄이 되면 산과 들에서 봄나물을 캐고, 여름이 되면 모내기를 했어요. 힘든 노동인 모내기도 서로 도와가며 흥겹게 해냈지요. 모 심는 사람들 곁에선 농악대가 신나게 풍물을 치며 노동요를 불러주고, 마을 아낙네들은 푸짐한 못밥(모내기를 하다가 들에서 먹는 밥)과 새참(일하다 잠깐 쉬면서 먹는 음식)을 마련했어요. 힘든 보리 타작과 모내기를 끝내면 단옷날(음력 5월 5일)에 떡을 해먹고 그네를 뛰고 씨름판도 벌이며 한숨 돌렸어요.
가을이 되면 고추를 말리고, 감을 따고, 추석 즈음부터 이른 타작을 시작했어요. 조상님께 올리는 차례상에는 햅쌀로 지은 밥과 송편을 올렸거든요. 탈곡기가 없었던 시절엔 단단한 통나무나 돌 위에 볏단을 내리쳐서 낟알을 떨었답니다.
옛날에는 보통 닷새마다 장이 열렸어요. 특히 서리가 내리고 날이 추워지면 겨울에 먹을 김장을 했는데, 김장철에는 '김장 시장'이 열렸어요. 김장 시장에선 배추, 무, 쪽파, 고추, 마늘, 생강, 젓갈 등 온갖 김장거리를 사고팔았답니다. 이때 사람들은 장독도 장만했어요. 장은 정월에 담가야 가시가 생기지 않는대요. '가시'는 장에 생기는 구더기를 뜻해요.
이 책을 보면 우리 조상들이 보낸 일 년이 일과 놀이가 적절하게 어우러져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힘든 일이 끝나면 한숨 돌리며 함께 노래하고 춤을 췄고, 일이 많은 계절이 지나면 다음 해를 준비하며 느긋하게 휴식을 취했답니다. 책에는 널뛰기, 윷놀이, 말뚝박기, 제기차기, 고싸움, 고누, 그네뛰기, 투호, 씨름, 닭싸움 등 조상들이 했던 다양한 전통 놀이도 등장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