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전시장에 갔어요] "아름다운 얼굴이여, 인사드립니다" 황금 가면에 적힌 주문

입력 : 2021.09.23 03:30

'투탕카멘: 파라오의 비밀' 展

사진1 - 투탕카멘의 얼굴을 본뜬 황금가면.
사진1 - 투탕카멘의 얼굴을 본뜬 황금가면.

추석 잘 보내셨나요? 추석은 보름달을 보며 풍요를 기원하고, 차례와 성묘를 통해 돌아가신 조상께 인사드리는 날입니다. 과거엔 조상의 묘지를 양지 바른 땅에 크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엔 간소화하는 추세예요. 무덤 크기보다 조상을 기억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일 거예요.

고대 무덤 중 화려하기로 손꼽히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는 '투탕카멘: 파라오의 비밀' 전시에 가면 금빛으로 번쩍이는 으리으리한 무덤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이집트는 수천 년 전에 기적이라고 불릴 만큼 놀라운 수준의 미술품을 만들었어요.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어도 영혼은 남아 영원히 산다고 믿었는데, 파라오(왕)가 사후 세계에서도 불편함 없이 살 수 있도록 묘지 안의 방을 꾸미는 데도 신경을 썼어요. 그들은 파라오를 신의 권위를 이어받은 통치자라고 믿었기 때문에 신을 떠받드는 마음으로 정성과 솜씨를 다해 조각과 가구·공예품을 제작했답니다.

100년 전 발견된 '이집트 최고의 문화재'

1922년 고대 이집트 제18왕조 12대 왕 투탕카멘(재위 기원전 1333~1323년)의 무덤이 도굴꾼에게 파헤쳐지지 않아 원래 상태를 거의 유지한 상태로 고고학 발굴팀에 발견됐어요.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진기한 보물 5300여 점이 드러나면서 전 세계 관심이 이집트 문화로 쏠렸습니다. 투탕카멘 무덤 발굴 100주년을 맞아 열리는 '투탕카멘: 파라오의 비밀' 전시는 1922년 발굴 당시 유물과 마주했던 첫 감동의 순간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됐습니다. 디커뮤니케이션·유니크피스·SC exhibitions가 주최하고, 조선일보가 후원하는 이 전시는 내년 4월 24일까지 열려요.

1922년은 이집트가 영국의 식민지에서 해방된 해이기도 해요. 덕분에 투탕카멘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다른 나라로 빠져나가지 않고 온전하게 이집트가 소유하게 됐습니다. 이 유물은 몇 백㎏이나 되는 금과 보석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재료 자체의 값어치도 엄청날 뿐 아니라, 역사적·문화적으로도 값을 매길 수 없는 이집트 최고의 문화재입니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기 때문에 진품을 보려면 무조건 이집트 카이로박물관에 가야 하지요. 세계 순회 전시에서는 실제 유물을 가장 공신력 있는 방식으로 정확하게 복제한 것들을 전시해요.

소년 파라오의 황금 가면

〈사진①〉
은 투탕카멘의 얼굴을 본뜬 황금가면이에요. 무게가 11㎏이나 되는 가면은 미라가 된 파라오의 얼굴을 덮었던 것이에요. 순금 위에 파랑·빨강·검정 보석이 박혀 있어요. 오뚝한 콧날에 뚜렷한 입술 선을 지닌 젊고 잘생긴 파라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매의 모습을 한 호루스신이 늘 함께한다는 뜻에서 파라오는 매처럼 긴 눈꼬리를 가지고 있어요. 왕의 이마 위에 있는 독수리와 코브라는 이집트의 수호신들이지요.

고대 이집트에서 금은 영원히 변치 않기에 '신의 피부'로 여겨졌어요. 투탕카멘은 비록 열여덟의 나이로 죽었지만, 3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황금 가면과 함께 우리 곁에 있습니다.

가면 뒷면엔 상형문자가 적혀 있어요. 고대 이집트인의 글은 사물의 모습을 본떠 만든 상형문자였어요. '아름다운 얼굴이여, 인사드립니다'로 시작하는 이 글은 감각 기관 하나하나를 신(神)으로 지칭하는 등 내용이 적혀 있대요. 왕의 몸을 보호하고 그 몸이 사후 세계에서도 제구실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주문이라고 합니다. 〈사진④〉는 투탕카멘 몸에서 적출한 폐·위·간 등 내장(內臟)을 담은 작은 관에 새겨진 상형문자로, 내용물을 지키기 위한 마법의 주문이 적혀 있습니다.

이집트 상형문자는 1799년에서야 해독의 실마리가 풀렸어요. 당시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가 이집트를 침략했을 때 나일강 하구의 마을 로제타에서 비석 조각 '로제타석'을 찾아냈는데, 여기에 상형문자를 포함해 세 개의 다른 언어로 같은 내용이 쓰여 있었거든요.

파라오의 전차

〈사진②〉
는 투탕카멘이 앉았던 의자의 등받이에 새겨진 그림이에요. 왕비가 왕의 몸에 다정하게 기름을 발라주고 있네요. 이집트 화가들은 사람을 그릴 때 일정한 법칙을 따랐어요. 옆에서 본 모습과 앞에서 본 모습을 섞어서 그리는 방식이죠. 왕과 왕비를 자세히 보세요. 얼굴은 옆모습인데, 눈은 앞에서 본 모습이고, 상체는 앞모습인데 하체와 발 부분은 다시 옆에서 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신체를 그린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코의 높이, 눈의 폭, 어깨너비, 발 길이 등 신체 정보를 좀 더 많이 알려주기 위해서랍니다. 그래야 죽은 영혼이 다시 환생했을 때 이전 파라오를 닮을 수 있을 테니까요.

〈사진③〉은 투탕카멘의 묘에 들어 있던 전차예요. 몸체는 금박이 입혀져 있고 두 바퀴에는 바퀴살이 6개씩 있어요. 이 전차는 기원전 1650년쯤 이집트에 도입되어 이후 파라오들이 애용했다고 해요. 이집트 부조(浮彫)에는 파라오들이 허리에 말 고삐를 감고 전속력으로 전차를 모는 동시에 활을 쏘는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실제로 이 둘을 한 번에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죠. 왕의 용맹함을 강조하려고 그렇게 그린 것으로 보여요.

☞하워드 카터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견한 사람은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1874~1939)예요. 그는 전문적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17세 때 이집트로 건너가 왕의 무덤 벽화 등을 그림으로 옮기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어요. 영국 귀족 카나번 경의 재정적 후원을 받아 왕묘 발굴을 주로 했는데 1922년 11월 4일 투탕카멘 무덤을 발견해 고고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됐답니다.

사진2 - 투탕카멘이 앉았던 의자의 등받이에 새겨진 그림.
사진2 - 투탕카멘이 앉았던 의자의 등받이에 새겨진 그림.
사진3 - 투탕카멘의 묘에 들어 있던 전차.
사진3 - 투탕카멘의 묘에 들어 있던 전차.
사진4 - 투탕카멘 몸에서 적출한 폐·위·간 등 내장(內臟)을 담은 작은 관에 새겨진 상형문자.
사진4 - 투탕카멘 몸에서 적출한 폐·위·간 등 내장(內臟)을 담은 작은 관에 새겨진 상형문자.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견한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왼쪽)가 관을 살펴보는 모습. /Semmel Concerts·위키피디아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견한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왼쪽)가 관을 살펴보는 모습. /Semmel Concerts·위키피디아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김연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