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재스민 향료 1g 얻는데 2만 송이 필요… 예전엔 왕·귀족만 '향기' 누렸대요
입력 : 2021.09.09 03:30
향의 과학
- ▲ /픽사베이
은은하고 달콤한 꽃향기는 사람 기분을 단숨에 좋아지게 해요. 사람들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향기를 간직하거나 소유하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꽃을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향을 연구했죠. 지금으로부터 5000여 년 전 수메르 문명은 향료 제조 기술을 상형문자로 남겼고, 이집트 문명 역시 기원전 2500년쯤 제작된 미라에 각종 향료를 사용했답니다.
그런데 식물에서 향을 채취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어요. 가령 재스민은 해가 뜨기 전인 새벽에 꽃을 따야 가장 좋은 향을 채집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꽃 1㎏당 단 1g의 정유(精油·essential oil)만 얻을 수 있는데, 꽃 1㎏은 약 2만 송이에 해당해요. 꽃 중에 송이가 큰 편인 장미만 해도 정유 1g을 추출하려면 약 2600송이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천연 향료를 구하는 데는 엄청난 노력과 꽃이 필요해서 왕이나 귀족, 종교 지도자 등 신분 높은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해요.
이처럼 귀한 향을 지금은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지요. 비누나 세제처럼 일상에서 사용하는 제품에서도 좋은 향이 나고요. 이 책의 저자 히라야마 노리아키 박사는 이렇게 향을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화학 기술의 발전 덕분이라고 설명해요. 19세기에 자연에 있는 여러 생물에서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다양한 물질을 분리하고 화학구조를 규명하는 '천연물 화학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식물에 함유된 향기 관련 분자를 순수한 형태로 추출해낼 수 있었답니다. 향기 관련 분자를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기술도 발달해서 인공 향료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됐고요. 이젠 거의 모든 향 분자를 인위적으로 합성할 수 있게 됐어요. 예를 들어, 인돌(indole)이라는 화합물은 재스민 향을 만드는 데 쓰여요. 그런데 이 인돌의 농도가 진하면 분뇨 냄새가 난대요. 하나의 화합물이 농도에 따라 재스민 향도 냈다가 분뇨 향도 냈다가 하는 셈이죠.
향의 효과는 생각보다 다양해요. 중세 유럽에선 장미의 정유를 상처 회복에 사용했어요. 근대에 들어와 프랑스의 화학자 르네 모리스 가테포세는 라벤더 정유를 넣은 비누를 만들었는데, 이 비누는 1차 세계대전 중 병사들의 옷이나 붕대를 씻는 데 사용되며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고 해요. 그는 '아로마세러피(향기 치료)의 아버지'라고 불려요.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는 향기에 대한 기억은 순식간에 우리를 과거로 데려다주기도 해요. 이런 점에서 헬렌 켈러는 "냄새야말로 모든 세월을 뛰어넘어 시간 여행을 하게 만드는 강력한 마법사"라 했어요. 이 책은 인류가 오래도록 사랑해온 향의 정체와 정서적·약리적 효능, 향기를 둘러싼 신비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