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주름 펴주는 보톡스… 근육 풀어주는 '독' 성분 이용한대요
독의 세계
- ▲ /그래픽=안병현
등산하기 좋은 가을이면 "뱀을 조심하라"는 말을 자주 들어요. 겨울잠을 앞두고 뱀의 독이 강해졌을 때라서 피해야 한다는 거예요. 추석을 앞둔 이맘때 벌초하다 말벌에 쏘이는 사람도 많습니다. 또 해마다 살모사나 해파리 등 독이 있는 동물에게 물리거나 쏘여서 목숨을 잃는 사고가 종종 발생해요. 복어나 버섯처럼 독이 있는 동식물을 잘못 먹어서 중독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렇게 무시무시한 독이 인류에게 유용하게 쓰이는 경우도 늘고 있어요. 질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개발되는 거죠. 주름을 탱탱하게 펴주는 보톡스도 독이라는 거 알고 있나요?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양면성을 지닌 '독'. 어떤 것들이 있고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봐요.
피·신경·근육을 공격해요
자연계의 많은 동식물과 미생물은 독을 만들어 자신을 보호하거나 먹이를 사냥해요.
독에는 여러 종류가 있어서 제각기 작용하는 방식이 달라요. 우선 피에 작용하는 '용혈독'이 있어요. 우리나라에도 있는 살모사의 독이 용혈독이죠. 용혈독은 몸에 들어오면 피에 있는 적혈구를 파괴하고 신체 조직에 손상을 입혀요. 피가 굳는 것을 방해해 출혈이 일어납니다.
강력한 독사로 유명한 코브라의 독은 '신경독'이에요. 이 독에 중독되면 신경계에 손상을 입어 근육이 마비돼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요. 아마존에 사는 '독화살개구리'의 독도 신경독이죠. 독화살개구리는 상대방이 공격하면 피부에서 독을 분비해 자신을 보호해요. 원주민들이 이 독을 채취해 화살에 발라 사냥에 써서 '독화살개구리'라는 이름을 얻었대요. 신경독은 피에 작용하는 독보다 효과가 빨라서 더 위험하답니다. 근육 조직에 손상을 주거나 세포를 죽이는 독도 있어요.
최강의 독은?
가장 강력한 독은 무엇일까요? 대상이 어떤 생물인지, 독이 신체 어느 부위로 들어가는지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정확한 순위는 매기기 어려워요. 같은 독이라도 호흡을 통해 곧바로 폐에 흡수됐을 때가 피부를 통해 천천히 흡수됐을 때보다 효과가 크대요. 독을 먹는 경우엔 소화 기관에서 소화액에 의해 분해되어서 효과가 가장 적대요.
그래도 '최강의 독'이라고 할 때 늘 상위권에 꼽히는 것은 '보툴리눔톡신'이에요. 호수나 강의 진흙 속에 사는 보툴리누스균이 만들어내는 독이죠. 이 독에 중독되면 근육이 마비되고 숨을 쉴 수 없게 돼요. 보툴리눔톡신은 단 1g만으로도 사람 1000만명 이상을 죽일 수 있어요. 1㎏도 되지 않는 양으로 지구상 인류 모두를 죽일 수 있는 무시무시한 독이에요.
보툴리누스균은 썩은 통조림에서도 생길 수 있어요. 이 세균은 산소가 없는 곳에서 발아해 독소를 분비하는 특성이 있어서 밀폐된 통조림에서 생겨날 수 있는 거죠. 꿀에도 보툴리누스균 포자가 있을 수 있어요. 보통 어른들은 꿀을 먹어도 위에서 이 포자가 죽어서 괜찮은데, 어린 아기는 위산 분비 기능이 덜 발달해 보툴리누스균 포자가 죽지 않고 몸속에서 발아해 독성을 낼 수 있어요. 그래서 돌 전의 어린 아기에겐 꿀을 먹이지 말아야 해요.
해양 플랑크톤이 만드는 '마이토톡신'이라는 독도 대단히 강력해요. 중독되면 약 20분 뒤에 증상이 나타나고 몇 시간 만에 사망해요. 이 독 1g이면 약 10만명을 죽일 수 있어요. 하와이 등지에 사는 산호가 갖고 있는 '팔리톡신'이라는 독도 매우 강력해 1g으로 7만명 가까이 죽일 수 있어요.
독화살개구리의 독인 바트라코톡신은 1g으로 8000명 이상을, 복어 독으로 유명한 테트로도톡신은 1g으로 2000명 가까이 죽일 수 있어요. 반면 추리 소설에서 독살(毒殺)할 때 흔히 쓰이는 청산가리는 1g으로 죽일 수 있는 사람의 수가 불과 몇 명밖에 되지 않아요.
사람 살리는 '독'도 있다
아주 조금만 섭취해도 죽을 수 있는 무서운 독이지만, 때로는 인류에게 유용하게 쓰이기도 해요. 예를 들어 살모사의 독에서 피가 굳지 못하게 하는 성분을 추출해서 '혈전 치료제'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어요. 혈전은 피가 굳어서 생긴 덩어리로, 혈관을 막아서 뇌졸중이나 심장마비 등을 일으킬 수 있죠. 반대로 중남미에 사는 보스롭스라는 뱀의 독엔 혈액을 응고시키는 성분이 있는데, 이것으로 응급 시 피가 빨리 굳게 만드는 지혈제를 만들기도 해요.
뱀독 성분을 이용한 약품 중 가장 널리 쓰이는 건 고혈압 치료제인 '캡토프릴'이에요. 남미에 사는 하라라카 살모사 독에 있는 혈압 낮추는 성분을 이용해 만든 약이죠. 복어 독인 테트로도톡신을 이용해 진통제를 만드는 연구도 이뤄지고 있어요.
가장 강력한 독인 '보툴리눔톡신'도 의학적인 용도로 쓰여요. 주름을 펴주는 '보톡스'가 대표적이죠. 보툴리눔톡신을 매우 극소량만 근육에 주사하면 근육을 수축시키는 '아세틸콜린'이란 신경 전달 물질 분비가 차단돼 근육이 이완돼요. 수축됐던 근육이 이완되면 그 위에 붙어 있던 피부도 펴지는 원리죠. 보톡스는 미국 제약회사에서 사용한 상품명인데, 지금은 해당 시술 자체를 뜻합니다.
[은수저와 독]
고대부터 현대까지 많은 인물이 '독' 때문에 두려움에 떨었어요. 누군가를 암살할 때 독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권력자들이 독살을 두려워하며 끊임없이 주위 사람을 의심했죠. 이때 흔히 쓰인 독은 '비상(砒霜)'이라고 불린 비소화합물이었어요. 과거 죄인에게 내렸던 사약 재료도 바로 비상입니다. 사극을 보면 임금이 먹는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은수저를 넣는 장면이 나와요. 비상에는 황이 들었는데, 황이 은수저를 검게 만들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은수저로는 황이 들어 있지 않은 다른 독을 찾아낼 수 없는 한계가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