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 이야기] 善·惡이 한 세계라는 새로운 깨달음… 1차 대전 직후 많은 젊은이들이 공감

입력 : 2021.09.07 03:30

데미안

1919년 발간된‘데미안’ 표지. /위키피디아
1919년 발간된‘데미안’ 표지. /위키피디아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최근 아이돌 그룹 BTS가 읽는다고 알려지자 국내에서 절판된 지 10년 된 '요절'이란 책이 재출간됐다는 소식이 들렸어요. 일찍 세상을 뜬 화가들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몇 년 전엔 BTS가 정규 2집 앨범을 발표하기 직전 독일 태생 작가 헤르만 헤세(1877~1962)의 '데미안'이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그 앨범 모티브를 '데미안'에서 얻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죠. '데미안'은 헤세가 1919년 발표한 소설인데, 100년이 지나 21세기 뮤지션에게 영감을 준 셈입니다.

이 책은 싱클레어라는 소년이 세상에 선(밝음)과 악(어둠)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가며 성장하는 과정을 다룬 '성장 소설'이에요. 열 살 싱클레어는 조용한 소년이었지만 호기심도 왕성했어요. 그러다 열세 살 불량 학생 크로머의 마수에 걸려들어요. 크로머의 관심을 끌려고 이웃집에서 사과를 훔쳤다고 거짓말했는데, 그의 협박으로 실제 도둑질까지 하게 되죠. 크로머의 괴롭힘에서 싱클레어를 구원한 건 얼마 전 전학 온 데미안이에요. 싱클레어는 그때까지 기독교 교리에 충실한 교육을 받았는데, 데미안은 선과 악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한 세계라는, 지금까지 배운 것과 다른 이야기를 해줘요. 두 사람은 급격하게 가까워졌어요. 하지만 곧 서로 다른 학교로 진학했고, 싱클레어는 낯선 도시에서 다시 방황하게 됩니다.

그즈음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자주 이야기한 '문장(紋章)에 새겨진 새의 그림' 꿈을 자주 꿨어요. 또 데미안이 이야기한 '아프락사스'라는 단어도 생각났죠. 그때까지 싱클레어는 그게 뭔지 몰랐는데, 우연히 만난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가 "아프락사스는 신(神)이면서 동시에 악마"라고 알려줘요. 이후 싱클레어는 정신적으로 부쩍 성장해요. 선과 악으로 나뉜 이분법적 세계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한 것이죠. 대학생이 된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다시 만났지만 곧 1차 세계대전이 터져서 함께 군에 입대해요. 어느 봄날 중상을 입은 싱클레어가 데미안의 환상을 보면서 소설은 끝을 맺습니다.

1차 세계 대전 직후 극도로 혼란스러운 시대에 이 소설이 나오자 젊은이들이 열광했다고 해요. 소설은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통해 자기 내면을 파고들어 나를 찾는 방법을 알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이 부분에 젊은이들이 공감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정신의학자 카를 융도 이 소설을 '폭풍우 치는 밤 등대의 불빛'이라고 평하기도 했어요. 헤세가 소설을 통해 보여준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길'은 지금 젊은이들에게도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