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무대 위 인문학] 국악기를 오케스트라처럼 배치… BTS·'쿠키런'도 연주해요

입력 : 2021.09.06 03:30

국악관현악

우리나라 전통 국악기를 서양의 오케스트라처럼 배치한‘국악관현악’연주 모습이에요. 청소년들이 많이 하는 게임‘쿠키런’의 배경 음악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국립극장
우리나라 전통 국악기를 서양의 오케스트라처럼 배치한‘국악관현악’연주 모습이에요. 청소년들이 많이 하는 게임‘쿠키런’의 배경 음악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국립극장
"어떤 빛은 야망, 어떤 빛은 방황, 사람들의 불빛들, 모두 소중한 하나."

꿈과 삶을 응원하는 '위로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소우주'. 이 곡이 가야금, 아쟁, 해금 등 국악기로 연주되면 어떤 분위기가 날까요? 지난 6월 국립극장에서 60인조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이 곡을 국악관현악으로 편곡해 연주한 새로운 시도가 화제가 됐어요. 아이돌 음악뿐 아니라, 청소년들에게 유명한 게임 '쿠키런'의 배경 음악도 연주됐죠. 우리 전통 악기는 따분하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기 위한 시도였어요.

'국악관현악'은 국악기를 서양의 오케스트라 악기처럼 배치하고 지휘자가 이끄는 연주 방식이에요 역사가 아직 50여 년밖에 안된 현대적인 음악에 속합니다. 국악관현악은 서양의 오케스트라와 어떻게 다를까요?

관현악은 1920년대 한국에 알려졌어요

'관현악'을 뜻하는 '오케스트라'는 그리스어 오르케스트라(orkhēstra)에서 나온 말이에요. 오르케스트라는 고대 그리스 원형극장에서 무대와 관람석 사이에 있는 넓은 장소를 부르는 말이었죠. 이곳에서 합창단이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악기 연주자가 음악을 연주했어요. 18세기 들어 오케스트라는 극장에서 악기가 위치한 장소를 의미하는 말로 쓰였어요. 이후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음악 이론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장 자크 루소(1712~1778)가 '음악사전'(1767)이란 책에서 오케스트라를 '여러 가지 악기의 집합체'라고 정의 내리며 오늘날에 이르렀어요. 우리나라엔 조선 후기 서양 음악이 들어왔고, 1920년대부터 교회 등을 중심으로 소규모 오케스트라 연주가 생겨났어요.

잊혀지는 국악 되살리기 위해 등장

국악관현악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대중에게 잊혀 가는 국악을 되살리기 위한 시도로 등장했어요. 서양 오케스트라처럼 여러 악기들의 합주를 통해 다양하고 조화로운 음악을 연주함으로써 전통 음악의 지평을 넓히겠다는 생각이었죠. 시도는 그 이전에도 있었지만 국악관현악이 본격 시작된 것은 1965년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창단되면서부터입니다. 국악관현악 이전에도 국악기의 합주곡은 있었어요. 조선 시대 종묘에서 역대 제왕들의 제사 때 연주하던 음악인 '종묘제례악'이 대표적이죠. 하지만 수백년 전부터 전승되어 온 악보를 우리 전통 악기로만 연주하는 종묘제례악과 국악관현악은 악기 편성부터 곡 편곡까지 매우 다르다고 할 수 있어요.

여러 악기군 골고루 배치해요

국악관현악은 서양 오케스트라와는 같은 점도 다른 점도 있어요. 서양 오케스트라는 보통 100명 안팎 연주자로 구성되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파트는 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로 구성된 현악기군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해요. 그다음은 피콜로·플루트·오보에 등 목관악기군, 호른·트럼펫 등 금관악기군, 팀파니·큰북 등 타악기군 순으로 악기 수가 많아요. 이와 달리 국악관현악은 각 악기군의 수가 고른 게 특징이죠.

국악관현악의 현악기에는 가야금, 거문고, 해금, 아쟁이 있고, 관악기는 대금, 피리(향피리, 당피리) 생황이 포함됩니다. 타악기는 징, 꽹과리, 장구, 북, 박, 편경, 방향 등이 들어가요.

국악관현악은 곡에 따라 개량된 악기를 배치해 소리를 더 풍성하게 만들기도 해요. 예를 들어, 본래 12줄인 가야금은 15현, 17현, 21현 등 다양하게 개량됐는데, 이 중 18현과 25현 가야금이 창작곡에서 자주 쓰여요. 이런 개량 가야금은 전통 가야금보다 줄 수가 많아서 음역이 넓고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답니다. 또 국악관현악엔 국악기에 부족한 저음을 내기 위해 피아노, 첼로, 콘트라베이스 같은 서양 악기를 추가하기도 해요.

서양과 국악관현악 모두 연주하기 전 많은 악기의 소리를 튜닝(조율)하는 게 중요해요. 서양 관현악은 그 기준을 오보에나 제1바이올린의 A음(라)에 맞추는데, 국악관현악은 대금의 황종(黃鐘)음에 맞춘답니다.

클래식 지휘자들도 나섰다

이처럼 국악관현악은 다양한 악기들을 자유자재로 추가하기 때문에 아이돌 그룹 곡처럼 대중적인 곡들도 편곡하는 것이 가능해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의 개·폐막식에서 국악관현악이 쓰였고, 최근에는 다양한 개량 악기뿐 아니라 외국의 민속 악기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또 임헌정, 정치용, 최수열, 김홍재 등 클래식 지휘자들도 국악관현악을 지휘해요. 영화 음악과 게임 음악에도 국악 관현악이 쓰이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경성 부민관]

최초로 국악관현악 형식을 시도한 작품은 1939년 김기수가 작곡한 '황화만년지곡'이에요. 이능화의 한문시를 노래와 국악관현악 반주로 편성한 곡인데, 1935년 일제강점기 때 경성부가 서울 태평로에 건립한 '부민관'에서 연주됐어요. 부민관은 지금으로 치면 시립극장이었는데, 지하 1층, 지상3층짜리 다목적 회관으로 다양한 연극, 무용 등 공연이 열렸어요. 황화만년지곡은 지휘 없이, 작곡가 김기수가 현재 국립국악원의 전신인 이왕직아악부의 악기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광복을 불과 20여 일 앞둔 1945년 7월 24일 부민관에서 한국인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아세아민족분격대회'가 열리자 유만수, 조문기, 강윤국 등 대한애국청년당원 3명이 행사장에 폭탄을 터트리는 일도 있었어요. 이 건물은 지금은 서울시의회 건물로 쓰이고 있어요.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기획·구성=김연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