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식물 이야기] 오후 3시에 꽃 피우고 10시엔 오므리는 '생물시계' 갖고 있어요

입력 : 2021.08.16 03:30

대청부채

[식물 이야기] 오후 3시에 꽃 피우고 10시엔 오므리는 '생물시계' 갖고 있어요
가을에 접어든다는 입추(立秋)가 지나서인지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식물은 그 무엇보다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요. 땅에 뿌리를 내려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 자리에서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생존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계절뿐 아니라 시간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식물이 있어요. 바로 8~9월에 보라색 꽃<사진 위>이 피는 '대청부채'랍니다. 대청부채는 특이하게도 오후 3~4시 사이 꽃이 피고 밤 10시 전후 꽃이 오므라져요. 생물이 어떤 행동을 정해진 시간에 반복하는 것을 '생물시계'라고 하는데, 대청부채도 이런 '생물시계'를 지닌 것입니다.

식물이 꽃을 피우는 시간은 종류에 따라 달라요. 수련이나 얼레지 같은 꽃들은 해가 나면 꽃을 피우고 저녁에는 오므리고, 달맞이꽃이나 노랑원추리 등은 밤에 꽃을 피워요. 하지만 대청부채처럼 정확한 시간에 꽃을 피우는 식물은 흔하지 않아요. 대청부채가 오후 3~4시에 꽃을 피우는 이유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의문을 품었어요.

지난해 중국 베이징산림대 연구진 등은 이런 현상이 유전적으로 가까운 범부채와 교잡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가설을 논문으로 발표했어요. 연구진은 2017~2019년 500m 거리에서 함께 자라는 대청부채와 범부채가 자연적으로 교잡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를 연구했어요. 우선, 범부채는 오전 7~8시에 피고 저녁 6~7시에 져서 대청부채(오후 3시~10시)와 개화 시간이 달랐어요. 일부 개화 시간(오후 3~7시)이 겹치긴 했지만, 꽃가루를 전해줘 수정을 돕는 꿀벌이 대청부채와 범부채를 찾는 시간이 겹치지 않아 교잡이 되지 않았다고 연구진은 밝혔어요. 이 연구로 '대청부채의 오후 3시 미스터리'가 다 풀린 것은 아니지만 흥미로운 내용입니다.

대청부채는 붓꽃속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인데, 1983년도에 인천 옹진군 대청도에서 처음 발견됐고, 칼 모양 잎<사진 아래>이 부챗살처럼 넓게 퍼져 대청부채란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합니다. 북한에선 참부채붓꽃이라고 불러요.

대청부채는 중국, 러시아, 몽골 등에선 대체로 내륙에서 자라는데, 우리나라에선 대청도, 백령도, 소청도, 충남 태안 무인도 등 주로 해안가에서 자라요. 자라는 곳이 한정적이고 개체 수가 적은 데다, 관상용으로 가치가 높아 채집하는 사람들이 많아 멸종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글·사진=최수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전시문화사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