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남·북극 1m 두께 얼음 부수면서 지구 한 바퀴 반 누볐어요

입력 : 2021.08.10 03:30

쇄빙선 아라온호

/그래픽=안병현
/그래픽=안병현

지난달 1일 우리나라의 쇄빙선 '아라온호'가'북극 항해'에 나섰어요. 138일간 '남극 항해'를 마치고 돌아와 3개월간 정비를 끝낸 후 다시 북극으로 떠난 거죠. 아라온호는 매년 300일 이상 남극과 북극을 오가며 항해할 정도로 바쁘답니다.

'쇄빙선(碎氷船·ice breaker)'은 수면의 얼음을 깨고 항해할 수 있게 만든 배입니다. 극지를 연구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지요. 우리나라는 세계의 끝인 남극과 북극을 연구하기 위해 남극 세종과학기지와 장보고과학기지, 북극 다산과학기지 등 기지 3곳을 운영하고, 아라온호를 갖추고 있답니다. 최근 정부는 아라온호보다 2배 규모의 새로운 쇄빙선을 설계해 2027년 출항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어요. 우리나라뿐 아니라 독일·일본·영국·중국 등이 더 큰 쇄빙선을 보유하려고 힘을 쏟고 있는데요. 극지 연구에서 쇄빙선은 어떤 역할을 하는 걸까요?

지구 기후변화의 척도, '극지'

우리가 극지를 연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지구의 기후변화를 알기 위해서예요. 극지는 얼음으로 이뤄져 있어 지구온난화 등 각종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거든요. 빙하가 녹으면 해수면이 상승하고, 결국 섬이 바다에 잠기는 경우도 생기고 해양 생태계에도 큰 영향을 주겠죠. 또 자원의 보고(寶庫)이기도 해요. 미국 지질자원조사국(USGS)에 따르면, 북극 얼음 밑에는 석유·가스가 약 4120억 배럴이나 매장돼 있어요. 세계 전체 매장량의 25%에 이르는 양이죠. 또 각종 금속 광물, 차세대 식량으로 각광받는 크릴 등도 많이 있어요. 세계 각국이 이런 극지의 주도권을 차지하려 적극 진출하고 있죠.

쇄빙선은 어떻게 얼음을 깨고 나아갈까

얼음으로 이뤄진 남극과 북극을 연구하려면 아라온호 같은 쇄빙선이 필요해요. 아라온호는 2009년 항해를 시작했어요. 아라온은 바다를 뜻하는 순우리말 '아라'와, 모두를 뜻하는 '온'을 합친 이름이에요. 길이 111m, 폭 19m에 무게가 7507t인데 1m 두께 얼음을 부수며 3노트(시속 5.5㎞)로 전진할 수 있어요. 전진할 땐 강력한 엔진의 추진력을 이용해 얼음을 밀어붙여서 깨고 나가요. 배 앞 아래쪽엔 '아이스 나이프(ice knife·얼음 칼)'가 달려 있어 얼음을 자르고 나아가죠. 얼음 칼로 깨지지 않는 두꺼운 얼음은 뱃머리를 들어 얼음 위에 올라가 배의 무게로 얼음을 눌러서 깨뜨려요. 후미에 있는 프로펠러 2개는 깨진 얼음을 양옆으로 밀어내 배 뒤쪽이 다시 얼어붙지 못하게 해요.

아라온호에는 첨단 연구 장비가 있어 극지 빙하의 변화, 해양 생물 자원, 해저 지질 환경, 대기 환경 등을 연구해요. 또 남극과 북극 기지에 연구원과 물자를 실어 나르는 역할도 하죠. 극지 연구소에 따르면 2019~2020년 아라온호는 남극 중앙해령과 아문센해, 로스해 등 지구 한 바퀴 반에 해당하는 총 5만7000㎞ 바다를 누볐어요.

북극 얼음이 훨씬 두꺼워요

남극과 북극은 비슷해 보이지만 아주 달라요. 남극은 바다로 둘러싸인 거대한 대륙인 반면, 북극은 연중 얼어 있는 얼음 바다예요. 남극은 가장 추운 날이 영하 89도, 북극은 영하 70도 정도로 남극이 훨씬 추워요. 육지가 바다보다 더 빨리 식고 빨리 더워지기 때문에 육지로 된 남극이 더 추운 거예요.

바다 얼음 두께는 북극이 1.5~5m로 평균 1m인 남극에 비해 더 두꺼워요. 아라온호는 두께 1m 이하 얼음만 깰 수 있어서 매년 70% 이상을 남극에서 지내고, 여름 3개월만 북극을 항해해요. 아라온호만으론 북극 연구에 한계가 있어 쇄빙선을 추가로 도입하기로 한 거랍니다. 두 번째 쇄빙선은 두께 1.5m 얼음을 깰 수 있고, 무게도 아라온호의 2배가 넘는 1만5450t급이 될 예정이에요. 아라온호로는 갈 수 없었던 해역들을 탐사하게 될 거예요.

빙하로 수만 년 전 기후 알 수 있어요

극지 연구의 대표적 대상은 바로 '빙하'예요. 지구의 마지막 최대 빙하기는 2만3000~1만9000년 전으로 추정돼요. 이 시기 북미 대륙은 뉴욕까지 빙하로 덮여 있었고, 유럽도 영국을 포함해 스칸디나비아반도 등도 빙하로 뒤덮여 있었어요. 이후 빙하가 조금씩 녹아 지금 상태로 축소된 거예요. 지금 남아 있는 빙하를 연구하면 수천~수만년 전 기후나 생태계 등을 알 수 있어 '냉동 타임캡슐'이라고 불립니다.

세계 각국의 극지 연구소들은 빙하의 각종 변화를 관찰해요. 빙하가 얼마나 많이 녹아내리는지, 해양 생물들은 어떻게 변하는지 등을 분석하는 거죠. 2013년 4월 남극 웨들해 북서쪽에 있는 라센 빙붕(氷棚) 지역 탐사는 아라온호의 연구 성과 중 하나예요. 빙붕은 남극 대륙과 이어져 바다에 떠 있는 거대한 얼음덩어리인데, 두께가 300~900m에 달해요. 라센 빙붕 지역은 두꺼운 얼음과 영하 40도를 밑도는 혹한으로 세계에서 가장 접근하기 힘든 지역으로 알려져 있었죠. 그런데 아라온호가 2006년 미국 파머호에 이어 두 번째로 이곳에 접근했어요. 현재 아라온호는 라센 빙붕이 붕괴되고 있는 원인을 규명하고, 이산화탄소를 바다에 저장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국제 공동 연구를 하고 있답니다.

[녹색 빙하는 플랑크톤 때문이에요]

우리는 남극과 북극을 생각하면 하얀 얼음과 눈만 생각해요. 하지만 빙하 색깔은 다양하답니다. 남극의 일부 빙하는 물감을 뿌린 듯 녹색으로 보여요. 그린란드 빙하는 붉은색, 가장자리는 검은색으로 변하기도 했죠.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얼음 속에 살고 있던 미생물이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말해요. 녹색은 빙하 속에서 광합성하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엽록소를 통해 녹색 빛을 내기 때문이지요. 분홍색 빙하는 광합성을 하는 조류, 그중에서도 붉은 빛을 내는 홍조류에 의해 핑크빛으로 물들어 보이는 거예요. 대기 중에 떠다니던 에어로졸이나 검댕들이 빙상에 내려앉으면 검은색으로 보인답니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최원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