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홍길동 실존 인물은 '노인 도적'… 소설 속 '청년 의적'과 달라

입력 : 2021.07.29 03:30

홍길동

/그래픽=안병현
/그래픽=안병현
최근 학계에서 "한글 소설 '홍길동전'은 그동안 알려진 것처럼 조선 중기 문신 허균(1569~1618)의 작품이 아니다"란 주장이 나왔다고 해요. 사실 대다수 한글 소설이 그렇듯, '홍길동전'도 작가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아요. 하지만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에 허균이 해당 소설을 쓴 것으로 알려져온 것이죠. 그런데 허균이 살던 시대엔 아직 그런 형식의 한글 소설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허균이 쓴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허균이 썼다는 '홍길동전'은 무엇일까요? 현재 전해지진 않지만, 실존 인물인 '홍길동'의 일대기를 쓴 한문 소설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해요. 홍길동이 실존 인물이었다니 놀랍지 않은가요? 그는 누구였을까요?

연산군 시절 도적 떼의 우두머리

"강도 홍길동을 잡았다고 하니 기쁨을 견딜 수 없습니다. 백성을 위해 해독을 제거하는 일이 이보다 큰 것이 없으니, 청컨대 이 시기에 그 무리들을 다 잡도록 하소서."

1500년(연산군 6년) 10월 22일 영의정 한치형 등이 임금에게 이렇게 아뢴 내용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돼 있습니다. 홍길동은 연산군(재위 1494~1506) 시절 충청도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한 도적 떼의 우두머리였어요. 명종 때 임꺽정, 숙종 때 장길산과 함께 '조선 왕조 3대 도적'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실록의 다른 기록에는 홍길동이 옥정자(갓 꼭대기에 옥으로 만들어 단 장식)와 홍대(겉옷에 두르는 붉은 띠) 차림으로 스스로 '첨지'(정 3품 관직)라 부르며 대낮에 떼를 지어 무기를 가지고 지방 관아에 마음대로 드나들면서 큰 세력을 떨쳤다고 나와요.

하지만 역사 인물 홍길동이 소설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준 의적이었는지는 의문입니다. '폭군 연산군에게 맞섰으니 의적 아니었겠느냐'고 보기도 하지만, 실록에는 홍길동 체포 13년 뒤 "충청도는 홍길동이 도둑질한 이후 유망(流亡·거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이 회복되지 못해 세금을 거두기 어렵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백성의 피해도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홍길동은 한양의 의금부로 압송돼 조사받았고 이 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보이지만, '살아남아 유구(현재 일본 오키나와)로 이주했다'는 주장도 있죠. 하지만 실록에는 그가 탈옥했다는 확실한 기록이 없습니다.

'노인 도적' 홍길동

우리는 보통 홍길동이라고 하면 수염도 채 나지 않은 소년이나 청년의 모습을 떠올려요. 소설 '홍길동전'에서 어렸을 때 집을 나오는 것으로 설정했고, 신동우 화백의 만화 '풍운아 홍길동'(1965~1969)이나 신동헌 감독의 애니메이션 '홍길동'(1967) 같은 작품들이 다 청년으로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연산군 때 실존 인물 홍길동은 청년 시절이 아니라 노년 시절 잡히기 직전 몇 년 동안 주로 도적 활동을 했다고 해요. 그의 정확한 출생·사망 연도는 전해지지 않지만 추정해볼 수 있어요. 홍길동의 아버지로 알려진 홍상직은 무관직을 지낸 양반인데, 1424년(세종 6년) 사망했어요. 설사 홍길동이 태어나기 전 아버지가 별세했다 해도 홍길동은 1425년생인데, 그렇다면 1500년 체포됐을 땐 최소 76세가 됩니다. 홍길동이 1443년생이란 주장도 있어요. 그렇다면 체포될 땐 58세로 당시로선 고령이었죠. 소설 속 '청년 도적'이 실제 역사에서는 '노인 도적'이었을 가능성이 큰 셈이에요.

소설에선 탐관오리 혼내주는 의적

그랬던 실존 인물 홍길동이 조선 후기에 유행한 한글 소설 '홍길동전'에서는 새로운 인물로 거듭납니다. 실제 홍길동이 신출귀몰하게 활동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는데, 이를 토대로 '도술을 자유자재로 쓰면서 탐관오리(백성을 괴롭히는 나쁜 관리)들을 혼내주는' 정의로운 캐릭터로 묘사된 것이죠.

여기에 당시 본처 자식(적자)과 첩의 자식(서자) 간 차별 극복뿐 아니라 계급 타파, 빈민 구제, 새로운 사회 건설 같은 백성의 꿈이 깃든 '사회 혁명적인 소설'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비천한 신분이었던 홍길동이 바다 건너 '율도국'이라는 곳에서 왕이 된다는 것은 당시 조선 사회에서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사회 비판적이고 계몽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는 얘기예요. 반대로 '결국 체제에 순응한 영웅이 펼치는 오락적 이야기'란 해석도 있습니다. 결국 소설 '홍길동전' 속 홍길동은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하고 있을 뿐 거의 새롭게 창작된 캐릭터로 봐야 합니다.

한글 소설, 허균 작품 아니라는 주장도

'홍길동전의 작자는 허균이 아니었다'는 최근 학계의 주장은 어떤 이야기일까요? 이윤석 전 연세대 교수는 "한글 소설의 발전 단계로 볼 때 '홍길동전'은 선조와 광해군 때 살았던 허균이 쓸 수 없는 작품"이라고 말합니다. 조선 시대 중국 소설을 번역하다가 한글 소설이 나왔고, 이것이 세책점(도서 대여점)을 중심으로 민간에 확산됐는데, 대략 허균이 살았던 때보다 200년 가까이 지난 18세기 후반에 가서야 홍길동전 같은 새로운 형식의 한글 소설이 창작된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주장이 반영돼 최근 펭귄 클래식 시리즈로 출간된 영문판 '홍길동전'은 '작자 미상'으로 소개됐습니다.


[조선 후기 유행한 한글 소설]

조선 후기엔 농업과 상업의 발달로 경제적 여유가 생긴 서민들이 늘어났고, 이들 사이에선 문화적인 욕구가 커졌어요. 한글을 익힌 서민들이 늘어나면서 한글 소설이 크게 유행하게 됩니다. 한글 소설은 주로 평민층이 창작했어요. 당시 대표적 한글 소설인 홍길동전은 신분 차별 등 사회 문제를 다룬 비판적 소설로 평가됩니다. 기생의 딸 성춘향과 양반댁 이몽룡의 신분을 극복한 사랑을 다룬 춘향전도 당시 인기였다고 해요. 이 밖에도 심청전, 장화홍련전, 흥부전 등 한글소설도 서민들의 사랑을 받았답니다.
유석재 기자 기획·구성=김연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