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당당한 기백 담긴 '황제'… 포격 피해 지하실서 만들었죠

입력 : 2021.07.26 03:30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베토벤이 피아노 앞에서 작곡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에요. 19세기 말 카를 슐로에저(Carl Schloesser) 작품. /게티이미지코리아
베토벤이 피아노 앞에서 작곡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에요. 19세기 말 카를 슐로에저(Carl Schloesser) 작품. /게티이미지코리아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 삶의 모든 분야를 바꿔 놓고 있습니다. 클래식 공연장도 마찬가지예요. 출연자와 청중 모두 마스크를 쓴 채 연주하고 공연을 감상하지요. 연주회뿐 아니라, 녹음을 하거나 영상물을 만드는 과정에도 여러 어려움이 있어요.

지난주 국내에 정식으로 발매된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5곡) 음반도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졌습니다. 음반 녹음을 할 때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서로 멀리 떨어져 앉아야 했고, 지메르만은 그들의 소리와 자신의 피아노 소리를 한데 모아서 듣기 위해 평소보다 훨씬 많은 집중력을 발휘해야 했다고 합니다. 격리 수칙을 지키며 연습하기 위해 캠핑카에서 혼자 잠을 자기도 한 지메르만의 노력은 정통적인 베토벤의 해석과 연주자의 개성이 적절하게 어울린 명연주를 만들었고, 팬들은 조금 늦었지만 베토벤(1770~1827)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는 이 기념비적인 연주에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메르만이 연주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은 베토벤 작품들 중 매우 중요한 걸작인 동시에 서로 다른 음악적 특색을 지니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청년 베토벤' 만날 수 있는 1·2번

베토벤 초기작인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은 각각 작품 번호 15번과 19번으로 모두 1795년, 그의 나이 25세 때 완성됐어요. 협주곡 1번 C장조보다 협주곡 2번 B 플랫 장조가 먼저 작곡됐지만, 출판 순서가 바뀌어 C장조가 1번이 됐죠. 이 시기는 베토벤이 아직 작곡가로 폭넓게 인정받기 전이고 재능이 뛰어난 신인으로 음악의 도시 빈에서 막 알려지기 시작한 때였어요. 그래서 베토벤은 자신이 직접 작품을 연주하며 이름을 알리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래서 협주곡 1번은 1798년, 2번은 이보다 이른 1795년에 베토벤의 연주로 초연되었죠.

두 작품은 선배 작곡가인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이 느껴진다고 평가받고 있어요. 동시에, 온화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에너지가 넘치는 악상에서 젊지만 충분히 성숙했던 청년 베토벤의 모습도 찾을 수 있습니다. 베토벤은 1번 협주곡의 1악장 마지막에 카덴차(피아노 혼자서 기교를 과시하는 부분)를 세 종류나 남겨 놓았는데요, 그만큼 이 곡에 대한 애정이 강했죠. 2번은 1번보다 규모가 작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유머러스한 표현이 매력적입니다.

귓병에 대한 두려움 담긴 3번

1803년 작곡되어 그해 초연된 협주곡 3번 작품번호 37은 앞의 두 작품에 비해 작곡가로서 한층 더 성장한 베토벤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 곡은 c단조라는 조성부터 특별해요. c단조는 그가 가장 사랑한 조성이자 걸작이 많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운명' 교향곡, 피아노 소나타 '비창' 등이 c단조로 쓰였지요. 베토벤은 내면의 짙은 고뇌와 정신적인 투쟁을 나타내려 할 때 이 조성을 즐겨 사용했어요. 이 곡에는 20대 후반부터 자신을 괴롭히기 시작한 귓병에 대한 두려움과 울분이 나타나 있습니다.

1806년 완성된 협주곡 4번 작품번호 58은 소위 '걸작의 숲' 한가운데 들어있는 작품입니다. '걸작의 숲' 이란 베토벤이 30대에 만든 작품 대부분이 음악사에 길이 남을 걸작들이라서 마치 거대한 음악의 숲에 들어가 있는 듯하다는 뜻으로 평론가들이 한 말입니다. 베토벤이 요제피네라는 귀족 여인과 사랑에 빠져 있던 때 만들어진 이 협주곡은 그래서인지 매우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표현이 두드러집니다. 또한 이 곡에서 베토벤은 혁명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는데요, 바로 피아노 독주자의 연주로 작품을 시작한 것이었죠. 이전까지의 협주곡은 도입부에서 오케스트라가 길게 연주를 한 뒤 독주자가 등장하는 형식을 따랐는데, 과감히 이 틀을 깨버린 시도를 한 것입니다. 이는 이후 많은 작곡가들에게 창조적인 영감으로 작용했습니다.

포화 속 완성된 5번 '황제'

작품번호 73의 피아노 협주곡 5번은 우리에게 '황제'라는 부제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작품이 지닌 무게감과 귀족적인 분위기, 당당한 기백 등과 '황제' 라는 제목이 잘 맞아떨어집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완성된 1809년은 베토벤이 많은 시련과 맞닥뜨린 때였어요. 나폴레옹이 이끈 프랑스군이 베토벤이 살고 있던 오스트리아 빈을 폭격하게 됩니다. 빈에 살던 귀족들은 대부분 피란을 떠났지만 베토벤은 도시를 지키며 작곡을 계속했죠. 자기 집에서 작업하기가 힘들어지자 동생 집 지하실에서 작품을 써나갔는데, 계속된 포격이 가뜩이나 나빠진 청력에 치명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은 작곡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피아노 협주곡을 통틀어 가장 인기가 많은 '황제' 협주곡의 음표들은 그 어떤 것으로도 자신의 예술혼을 꺾지 못한다는 멋진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대한 예술 작품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들도 숱한 고난과 역경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들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슬기롭게 맞서며 베토벤의 걸작들을 녹음해 낸 지메르만과 동료들의 노력이 더욱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베토벤의 제자 체르니]

피아노 협주곡 1번부터 4번까지 초연은 모두 베토벤이 직접 맡았지만, 마지막 협주곡 '황제'는 귓병이 악화되어 연주할 수 없었어요. 이 협주곡의 비엔나 초연(1812년)은 베토벤의 제자였던 카를 체르니(1791~1857)<사진>가 맡았습니다. 우리에게 '체르니 연습곡'으로 친숙한 바로 그 인물이에요. 체르니하면 연습곡을 만든 작곡가로만 알기 쉽지만, 그 외에도 그는 협주곡, 실내악 등 무려 1000곡 가까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훌륭한 선생님으로 제자도 많이 길러냈는데 그중에 가장 유명한 제자는 19세기 피아노의 제왕으로 불린 프란츠 리스트였죠. 리스트도 '황제' 협주곡을 즐겨 연주했는데, 아마도 스승인 체르니의 영향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체르니
체르니
김주영 피아니스트 기획·구성=김연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