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진시황이 쌓은 건 사라지고 명나라때 성벽만 남았어요

입력 : 2021.07.21 03:30

만리장성

1972년 2월 24일 중국을 방문한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퍼스트레이디 팻 닉슨이 베이징 근교 바다링 장성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고 있어요. /The 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1972년 2월 24일 중국을 방문한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퍼스트레이디 팻 닉슨이 베이징 근교 바다링 장성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고 있어요. /The 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지난 1일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경축 대회에서 시진핑 중국 공산당 주석이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연설을 했어요. 시 주석은 연설 중 "외부 세력이 우리를 괴롭히거나 압박하면 14억 중국 인민들의 피와 살로 만든 강철 만리장성 앞에서 머리가 깨져 피가 흐를 것"이라고 말했어요. 중국의 강함을 드러내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다른 국가들에 겁을 주려 했다는 해석이 나왔어요.

시 주석이 언급한 만리장성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축물로 알려져 있어요.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고, 그 장대한 규모 때문에 로마의 콜로세움 등과 함께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죠.

만리장성은 수천년에 이르는 중국의 긴 역사 동안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지어지고 방치되고 다시 지어지는 일이 반복됐어요. 북방 이민족 침입을 막고 백성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죠. 동서로 펼쳐진 하나의 긴 성벽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론 따로 떨어진 성벽도 있고 각각 지어진 것을 후에 연결한 것도 많아요. 지금 남아 있는 성벽의 길이는 6000㎞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1만리(약 4000㎞)보다는 긴 길이예요. '만리'라는 이름은 사마천의 '사기'에 '장성이 1만여 리 된다'고 기록된 데서 비롯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중국 정부는 만리장성 길이를 당초 6300㎞에서 2009년 8851㎞로 늘려 발표했다가 2012년엔 고구려와 발해가 쌓은 성까지 포함해 2만1196㎞라고 발표해 논란이 되기도 했어요. 어쨌든 이렇게 거대한 장성을 쌓는 데는 셀 수 없이 많은 인력이 동원됐을 거예요. 만리장성이 중국 역사 속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아볼게요.

"사내아이 낳지 마라" 백성의 눈물

만리장성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진시황(기원전 259~기원전 210)입니다. 진시황은 기원전 221년 중국 최초로 통일 제국을 이룬 황제였어요. 당시 북쪽 몽골 초원에 위치한 흉노족이 자꾸 진나라 국경을 넘어와 골칫거리였죠. 그래서 진시황은 이들을 막기 위해 그 이전 춘추전국 시대에 쌓았던 성벽들을 보수하고 연결해 북쪽 방어선을 만들었어요.

당시 장성은 흙에 물을 개어서 다지거나 흙으로 구운 벽돌을 쌓아 지었어요. 그래서 전쟁 시 방어용으로 쓰기엔 그렇게 튼튼하진 않았대요. 진시황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장성 축조에 동원됐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어요. 하지만 백성들이 불렀다는 한 서린 노래가 전해져요. "사내아이라면 낳지를 마라. 보지 않았는가. 장성 아래 징용되어 죽은 남자들의 해골이 겹겹이 서로 의지하고 있음을." 이후 진시황이 사망한 뒤 각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 진나라는 멸망합니다.

장성은 나중에 한나라(기원전 206~220) 때 다시 지어졌어요. 한나라의 국력을 강화한 황제로 꼽히는 무제(재위 기원전 141~기원전 87)는 장성을 서쪽 둔황까지 연장했어요. 이 시기 한나라는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과의 교역을 활발히 하기 시작했는데, 장성은 흉노 등 북방 유목민으로부터 안전하게 교역로를 확보하는 역할을 했대요. 이후 흉노 세력이 쇠퇴하면서 수백 년간 장성 증축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어요.

만리장성 뚫고 중국 차지한 몽골

송나라(960~1279) 때는 북방 유목 민족인 거란·여진·몽골 등이 장성 안으로 쳐들어와 중국 영토를 일부 지배했어요. 거란의 '요나라'와 여진의 '금나라' 역시 다른 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새로 성벽을 축조하기도 했지만, 몽골군에게는 소용이 없었죠. 몽골이 세운 '원나라'가 중국 전체를 지배하게 됐어요.

오늘날 남아 있는 만리장성은 대부분 명나라(1368~1644) 때 세운 것이에요. 몽골 고원으로 쫓아낸 원나라가 다시 쳐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였어요. 영락제(재위 1402~1424) 때 건설을 시작해 수도 베이징 주변을 중심으로 건설됐어요. 16세기 말 서쪽으로는 자위관(嘉峪關)에서 동쪽으로는 산하이관(山海關)에 이르는 장성이 완성됐어요. 그러나 17세기 만주족이 만리장성을 뚫고 내려와 베이징을 함락하며 결국 명나라는 멸망하고 청나라가 시작됐습니다.

형태 온전한 건 20%뿐

현재 남아있는 만리장성은 대부분 명나라 시절 것이지만, 그것조차 형태가 온전한 것은 20% 정도에 불과하다고 해요. 비바람에 자연스레 허물어진 것도 있고, 주민들이 집이나 농장 등을 짓는 데 쓰려고 성벽을 부수고 벽돌을 가져간 경우도 많았대요.

북방 이민족과의 끊임없는 전쟁의 역사를 보여주는 만리장성이 지금은 중국의 자부심이자 상징이 됐어요. 베이징 근교 바다링(八達) 장성에 가면 중화인민공화국 초대 주석을 지낸 마오쩌둥이 남긴 말이 비석에 새겨져 있어요. "장성에 오르지 않으면 사내대장부가 아니다"라는 말이죠. 중국에서 공산당과 국민당이 내전을 벌이던 시절인 1935년 공산당 군대인 홍군이 국민당 군대에 쫓기던 중 마오쩌둥이 이 말을 했다고 해요. 홍군은 수많은 산과 강을 넘어 1만2000㎞가 넘는 대장정을 완수하고 옌안에서 힘을 결집했어요. 공산당은 국민당을 몰아내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어요.

만리장성은 현대사에서도 존재감을 발휘했어요. 1972년 미국 닉슨 대통령은 냉전 중 소련을 견제할 목적으로 중국을 방문했어요. 닉슨은 바다링 장성에 올라 "위대한 민족만이 이처럼 위대한 장성을 세울 수 있다"고 했어요. 만리장성에 올라 덕담하는 미국 대통령의 모습은 냉전이 끝나고 화해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어요.


[달에서 만리장성이 보인다?]

서양 사람들은 일찍부터 만리장성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했어요. 18세기 말 영국 국왕 조지는 최초로 중국에 통상 사절단을 보냈는데, 당시 중국에 대해 부정적 기록만 남긴 사절단이 만리장성에 대해서만은 그 규모에 압도당한 듯 찬사를 남겼죠. 이후 19세기 말엔 서양에서 "만리장성은 달에서도 보이는 유일한 인공 건축물"이라는 말도 나왔어요.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하고 돌아온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에게 만리장성이 달에서 보이는지 물었을 때 암스트롱은 처음엔 "보인다"고 했지만, 나중에 '지리학 잡지'에서 "내가 관찰한 건 그냥 구름덩어리였다"고 바로잡았대요.

윤서원 단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김연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