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동물 이야기] 동물 사체만 먹는 '하늘의 제왕'… 위장이 튼튼해 뼈도 소화한대요

입력 : 2021.07.14 03:30

벌처(Vulture)

벌처‘연분홍 콘도르’가 하늘을 날고 있어요. /위키피디아
벌처‘연분홍 콘도르’가 하늘을 날고 있어요. /위키피디아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이 얼마 전 독수리·검독수리·흰꼬리수리 등 수리류들이 사는 우리를 새로 단장했대요. 이들이 잘 날 수 있게 공간이 더 넓어졌어요. 날카로운 눈매와 발톱, 커다란 날개를 가진 수리는 하늘의 제왕으로 불릴 만큼 무서운 사냥꾼으로 유명하죠. 살아 있는 동물을 사냥하는 수리들을 이글(Eagle)이라고 불러요. 그런데 모든 수리들이 직접 살아 있는 동물을 사냥하진 않아요. 죽은 짐승을 먹는 수리들을 통틀어 영어로 벌처(Vulture)라고 부른답니다. 서울대공원에 있는 독수리도 '이글'이 아닌 '벌처'예요.

벌처 무리의 가장 큰 특징은 머리에 깃털이 아예 없거나 아주 듬성듬성 나 있다는 거예요. 이는 짐승 사체에 머리를 파묻고 고기를 먹을 때 깃털이 있으면 병균이나 기생충이 쉽게 묻어 옮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이들은 독특한 소화 기능을 갖고 있어요. 아프리카의 대머리수리들은 주로 사자나 하이에나가 먹고 남긴 동물 사체의 썩은 고기를 먹고 살아요. 썩은 고기에는 탄저병이나 식중독·콜레라 등을 유발할 수 있는 박테리아가 우글대는데, 대머리수리의 위장은 이 박테리아들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하대요. 중앙아시아와 유럽 등에는 부리에 긴 털이 난 수염수리가 사는데 주식이 동물의 뼈예요. 큰 뼈를 높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뜨려 부순 다음 삼키는데, 이 새의 위산은 딱딱한 뼈도 녹일 만큼 강력하대요.

벌처 무리는 아주 훌륭한 비행사들이랍니다. 공중을 오랫동안 빙빙 돌면서 동물 사체를 찾거나 맹수들의 사냥 현장을 포착해야 하거든요. 수리류 중 가장 몸집이 큰 남아메리카의 안데스콘도르는 먹잇감을 찾을 때 상승기류를 타고 하늘 높이 날아올라요. 상승기류를 타면 날갯짓을 자주 안 해도 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거든요.

벌처 무리는 저마다 독특한 생활 습성을 갖고 있어요. 아프리카 대머리수리들은 짐승 사체를 먹을 때 덩치와 힘에 따라 순서를 정해요. 가장 작고 힘이 약한 수리가 다른 친구들이 먹다 남긴 걸 먹죠. 이집트대머리수리는 크고 단단한 타조알을 먹기 위해 부리로 돌을 물어다 알에 내리쳐 구멍을 내요.

벌처 무리는 '시체 먹는 지저분한 새'로 인식돼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들이 없으면 지구촌 곳곳이 썩어가는 동물 사체들로 오염될 수 있어요. 이집트와 인도, 미국 원주민들은 오래전부터 벌처 무리를 신성한 새로 여겨왔어요. 티베트에선 하늘에 장사를 지낸다는 뜻의 천장(天葬)이라는 독특한 장례 풍습이 있는데, 사람이 죽으면 화장하거나 땅에 묻지 않고 대머리수리 등에게 먹이로 내줘요. 대머리수리가 죽은 이의 영혼을 하늘로 보내준다고 믿는 거지요.
정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