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명화 돋보기] 미술 재료도 결국 쓰레기… 바다·흙·나무로 만들었어요
입력 : 2021.07.12 03:30
대지 미술(Land Art)
- ▲ ①로버트스미스슨, 〈나선형방파제(Spiral Jetty)〉(1970). ②앤디골즈워디,〈 돌집(Stone House)〉(1997). ③패트릭도허티,〈 작은무도회장(Little Ballroom)〉(2012). /위키피디아·이주은 교수 제공
1960년대 말 몇몇 미술가들은 미술 작품의 재료가 무조건 영원하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자연 속으로 서서히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자연 재료를 활용한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런 작품들을 '어스워크(Earth-work)', '대지 미술(Land Art)'이라고 불러요.
대지 미술의 탄생
미국의 로버트 스미스슨(Robert Smithson·1938~1973)이 이런 형식의 작품을 처음으로 '어스워크'라고 불렀어요. 영어 'earth'는 땅 또는 지구라는 뜻이지요. 이 이름은 인류가 야기한 생태학적 재앙으로 인해 파괴된 세상을 다룬 브라이언 올디스의 소설 '어스워크'(1965)에서 따왔어요. 어스워크는 1968년 스미스슨이 뉴욕 드웬 화랑에서 자신의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대지 미술(Land Art)'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세상에 소개했습니다.
당시는 미국에서 레이철 카슨의 책 '침묵의 봄'(1962)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인간에 의한 환경 파괴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이슈가 되던 때였어요. 그런 분위기와 함께 미술 시장의 요인도 영향을 줬어요. 미국 경제가 활기를 띠던 1950년대부터 미술품 가격이 치솟았어요. 그러자 미술이 상품처럼 여겨지는 세태에 회의적인 미술가들이 늘어났어요. 그들은 미술이 진정 자유로워지려면 물건처럼 사고팔 수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러기 위해선 아예 소장하거나 양도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배경에서 대지에서 직접 작업하는 '어스워크'가 탄생한 거예요.
바닷물에 잠겼다 나타나는 작품
1970년 스미스슨은 흙과 물, 그리고 주변의 자연 재료를 이용하여 소용돌이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양으로 방파제를 쌓았어요. 스미스슨은 35세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만, 미국 유타주에 가면 '나선형 방파제'<사진1>라는 그의 작품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아직'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이 작품에도 사람처럼 수명이 있기 때문이에요. 자연과 인간처럼 미술 작품도 숨 쉬고 성장하고 노쇠하고 그리고 외부 환경에 의해 계속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 스미스슨의 생각이었답니다.
'나선형 방파제'는 물이 차면 호수에 잠기고, 물이 빠지면 모습을 드러냅니다. 방문자들은 호수의 수면이 낮아지면 작품 속 나선형의 길 위를 걸어볼 수 있어요. 작품을 따라 걷다 보면, 360도로 회전하면서 시시각각 달라지는 주위의 경관을 감상할 수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점차 자연의 손길 속에서 침식되다가 종국에는 사라지게 되어 있어요. 작품이 물속에 잠겼다가 나올 때마다 방파제 돌에 맺히는 소금 결정까지도 작품의 일부이지요. 영원한 성지로 길이길이 남거나 명품으로 소장되는 것이 아니라, 소멸되는 운명을 지닌 작품입니다.
예술도 농장 작업처럼
영국의 앤디 골즈워디(Andy Goldsworthy·1956~ )도 자연 속에 있는 재료 그대로를 가지고 작업하는 대지 미술가예요. <사진2>는 돌을 쌓아 만든 '돌 집'인데, 돌로 만든 집이기도 하고, 돌이 사는 집이기도 해요. 가운데 둥그런 구멍에 큼지막한 돌을 얹어 두었어요. 이 돌을 놓아두기 위해 작은 돌들을 쌓은 것이죠. 골즈워디는 열세 살 때부터 부모의 농장 일을 도왔는데, 반복적인 농장 일이 훗날 조각 작업의 기초가 되었다고 해요. "(제 작업은) 계속해서 땅에서 감자를 줍는 것과 같아요. 자연 속에서 리듬을 찾는 것이 제 작업의 의미입니다."
이 말처럼 실제로 골즈워디는 주변의 자연 재료를 거의 다듬지 않은 채 주워서 그대로 사용해요. 조각가들이 사용하는 여러 도구나 기구를 되도록 쓰지 않고 자신의 손과 주변의 단단한 물체들만 가지고 작품을 만드는 것이죠. 인간이 도구와 기술을 발달시켜 눈부신 문명을 이루기는 했지만, 그와 더불어 자연을 훼손시킨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에 대한 무언의 반성으로 골즈워디는 자연의 모습을 너무 많이 변형시키지 않고 약간의 흔적만 남기려고 합니다.
도시 분주함 속 자연을 느껴요
1960년대 말 탄생한 대지 미술은 생태와 환경 보존 문제가 점차 부각되면서 전 세계 환경운동가들과 연결되며 작품 범위가 확산됐어요. 우리나라에도 '야투(野投)' 같은 몇몇 자연 미술 운동 단체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나뭇가지 미술가'로 불리는 미국의 패트릭 도허티(Patrick Dougherty·1945~ )의 작품을 소개할게요. 묘목의 나뭇가지를 휘고 엮어 만든 <사진3>의 제목은 '작은 무도회장'입니다. 그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집 짓는 기술을 배워서 가족과 함께 살 통나무집도 짓고, 또 조각 작품에도 활용했습니다.
'작은 무도회장'은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 시내에 세워졌던 작품이에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도시의 분주함 속에서 자연의 감각을 느껴볼 수 있도록 만든 나무집입니다. 그 안에 들어가면 숲속에 들어온 착각도 들고, 잠깐 다른 세상으로 들어온 듯 어리둥절한 기분도 들겠지요. 하지만 이 작품도 세월의 흐름을 거슬러 영원히 존재할 수는 없답니다. 플라스틱이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