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로봇 승려'도 과연 해탈에 이를 수 있을까요
입력 : 2021.07.06 03:30
AI(인공지능)와 종교
- ▲ /그래픽=유재일
이뿐 아니라 인공지능은 이제 병을 진단하는 의료 분야, 그림이나 음악 등 예술 분야 등 과거 사람만 할 수 있다고 여겨진 많은 분야에도 진출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인공지능 기술을 점점 더 많은 분야에서 접하게 될 거예요. 그중에는 '종교'도 있어요. 신(神)을 숭배하거나,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영역인 종교에서 인공지능은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축복 내리고, 염불 외는 로봇
지난 2016년 중국 베이징의 한 절에 염불을 외고 기초 교리를 설명하는 로봇 승려가 모습을 나타냈어요. 대학 인공지능 연구자가 기업과 함께 공동 개발한 로봇이에요. 귀여운 동자승처럼 생긴 이 로봇 승려는 가슴에 달린 터치스크린 패널로 불교와 수행에 관한 간단한 질문을 받고 대답할 수 있어요. 자신의 내면보다 스마트폰과 더 가까운 현대인들에게 다가가는 게 개발 목적이었대요.
2017년엔 마르틴 루터가 시작한 종교 개혁 500주년을 맞아 독일에서 열린 전시회에 로봇 목사가 등장했어요. '블레스유-2(BlessU-2)'라는 로봇 목사 가슴에는 터치스크린 화면이 있어 신도가 원하는 언어와 목소리 성별을 선택할 수 있어요. 그걸 선택하면 블레스유-2가 두 팔을 들어 손바닥에 달린 전등으로 불빛을 비추며 축복을 내려주는 시늉을 하지요.
로봇 강국인 일본 교토의 한 유서 깊은 절에서도 2019년 '민다르'라는 법명의 로봇 승려가 신도들을 만나기 시작했어요. 민다르는 자비로 중생을 보살피는 관세음보살 모습을 본떠 만들었어요. 민다르는 여느 승려와 마찬가지로 설법을 하고 신도들과 이야기를 나눠요.
이렇게 목사와 승려 역할을 대신하는 로봇을 만든 건 종교에 점점 흥미를 잃어가는 현대인의 관심을 붙잡기 위해서예요. 사실 이 로봇 목사와 승려는 인공지능을 갖췄다고 볼 수 없는 수준의 로봇이지만, 신도들 사이에선 로봇이 종교의 영역에 들어선 것에 대해 찬반이 갈리고 있어요.
로봇, 해탈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은 크게 약(弱)인공지능과 강(强)인공지능으로 나눌 수 있어요. 약인공지능은 이세돌 9단에게 바둑을 이긴 알파고처럼,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인공지능이에요. 반면 강인공지능은 인간처럼 스스로 생각하는 지성을 가진 존재로,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을 대체할 수 있는 존재예요. 아직 우리는 강인공지능을 만들어내지 못했어요. 앞으로 강인공지능 로봇이 개발된다면 성직자의 역할도 할 수 있을까요? 종교적 진리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해탈(불교 수행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깨달음의 궁극의 경지)도 할 수 있을까요?
SF 작가들은 이런 의문에 상상력을 덧붙여 종교와 인공지능의 관계를 탐구했어요. 2004년 발표된 박성환의 '레디메이드 보살'에는 깨달음을 얻은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해요. 레디메이드는 '이미 만들어져 나온'이란 뜻이죠. 로봇이 해탈의 경지에 올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승려들과 로봇 개발자들이 논쟁을 벌이는 내용이에요. 또, 1951년 앤서니 바우처의 소설 '성 아퀸을 찾아서'는 현대 문명이 멸망한 후 종교가 금지된 세상이 배경인데, 주인공은 과거에 수많은 사람을 전도한 성 아퀸의 시신을 찾아 비밀 여행을 떠나요. 성 아퀸의 시신이 썩지 않았다는 기적을 보여줌으로써 더 많은 사람을 신도로 만드는 게 목적이에요. 그런데 놀랍게도 시신을 찾아낸 주인공은 성 아퀸이 로봇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종교 가지려면 감정이 우선"
앞의 두 소설처럼, 인공지능 로봇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 실제 학계에서 논의가 이뤄지기도 했어요. 2017년 한국불교학회가 연 학술대회에서 '인공지능 로봇의 해탈 가능성'이라는 주제로 발표와 토의가 이뤄졌죠. 발표자는 인공지능의 해탈 가능성을 부정하진 않았지만, 그 과정이 인간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봤어요. 인간은 해탈을 하려면 수행을 통해 마음을 갈고 닦아 욕심·노여움·어리석음이라는 번뇌를 없애야 해요. 그런데 로봇은 애초에 감정이 없고 번뇌도 없기 때문에 인간과 같은 방식으론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죠. 발표자는 "로봇이 해탈하려면 원래 없는 감정을 우선 탑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렇다면 인공지능을 넘어 로봇이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요? 흔히 우리는 로봇이라고 하면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humanoid) 로봇을 떠올려요. 그중에서도 외모와 지능이 인간과 거의 흡사해 구분이 안 될 정도의 로봇을 안드로이드(Android)라고 불러요. 연구자들은 감정을 가진 안드로이드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개발된 것은 인간의 표정이나 목소리 톤 등을 학습해 인간 감정 일부를 인식하고 반응하는 수준이죠. 2015년 일본 소프트뱅크가 개발한 감정 인식 로봇 '페퍼'가 대표적이에요. 아직 스스로 감정을 느끼고 사람과 교류하는 휴머노이드는 개발되지 않았어요.
앞으로 기술이 크게 발전하면 스스로 사랑·두려움 같은 감정을 갖고 종교 활동을 하는 인공지능 로봇이 나오는 게 가능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소설 '레디메이드 보살'처럼 이미 깨달음을 얻은 로봇이 공장에서 나온다면 고생스럽게 구도의 길을 걷는 사람이 있을까요? 오히려 그런 로봇 때문에 인간들이 종교에서 멀어질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