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사소한 역사] 고대 이집트·중국서 해 가리개로 시작… 유럽선 18세기 중반까지 여성만 썼대요
입력 : 2021.07.06 03:30
우산
- ▲ 유럽서 우산 대중화를 이끈 한웨이를 그린 그림. /뉴욕공립도서관
우산은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중국에서부터 쓰인 것으로 전해져 내려와요. 처음엔 비를 막는 용도가 아니라 햇볕을 가리는 양산이었어요. 우산의 영어 단어 'umbrella'의 어원이 '그늘'이란 뜻의 라틴어 'umbra'인 걸 봐도 알 수 있지요. 그리고 왕이나 황제 등 높은 신분의 사람들만 쓸 수 있었어요. 특히 이집트에선 우산이 '하늘의 여신' 누트를 상징하는 물건이어서 사용 계층이 극소수였대요.
유럽에선 18세기까지만 해도 남성이 우산을 쓰는 건 나약한 행동이라며 부정적으로 봤어요. 이 때문에 남성은 비가 오면 모자를 쓰거나, 마차를 타거나, 그냥 맞아야 했죠. 남성이 우산을 써도 손가락질받지 않는 상황은 여성을 에스코트하기 위해 함께 쓰는 경우뿐이었대요. 반면 여성에게 우산은 부와 지위를 상징하는 수단으로 애용됐다고 합니다.
이런 편견을 깬 것은 영국 무역업자 조너스 한웨이(1712~1786)였어요. 당시 런던은 지금처럼 늘 비가 왔는데, 남성은 우산을 못 썼어요. 비에 젖는 게 너무 싫었던 한웨이는 업무상 페르시아에 갔다가 우산 쓴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그리고 1750년쯤 런던에서 우산을 들고 거리로 나가 '최초의 우산 쓴 런던 남자'가 됐어요. 사람들은 한웨이에게 야유와 돌팔매질을 했고, 밥줄이 끊길 걸 걱정한 마부가 일부러 마차를 물웅덩이로 몰고 가 한웨이에게 물벼락이 쏟아지게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한웨이는 그런 비난에도 30년간 꿋꿋하게 우산을 들고 다녔고, 결국 우산에 대한 편견을 없앴어요. 한동안 영국에서 우산을 '한웨이즈'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우산은 왕이나 왕족이 해를 피하는 용도로 사용했어요. '일산(日傘)'으로 불렸죠. 조선시대까지도 백성이 비를 막기 위해 하늘을 가리는 것은 불경한 행동이었어요. 이 때문에 백성들은 비가 오면 그냥 맞거나 삿갓, 도롱이(재래식 우비)를 이용했죠. 우산은 구한말 선교사가 들여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독립신문'(1896년 창간)엔 오랜 가뭄 끝에 비가 오는데 우산을 쓰고 거리를 나선 외국인이 집단 폭행을 당했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어요.
초창기 우산은 나무로 대와 살을 만들고 가죽·천 등을 씌우거나, 기름 먹인 종이를 바른 지우산(紙雨傘) 형태였어요. 이후 1847년 발명가 헨리 홀랜드가 금속 뼈대를 발명했고, 1852년 직조기 제조업자 새뮤얼 폭스가 이를 상품으로 만들어내면서 현대식 우산이 탄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