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더 빨리, 더 크게, 더 부드럽게… 악기들의 '연주 올림픽'

입력 : 2021.07.05 03:30

연주자들이 경쟁하는 곡 '오케스트라 게임'

/일러스트=박상훈
/일러스트=박상훈

오는 23일 1년간 미뤄졌던 도쿄올림픽이 시작돼요. 코로나가 수그러들지 않아 염려도 되지만, 아무쪼록 세계인들의 축제가 무사히 치러지길 바라며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의 멋진 활약도 기대합니다. 음악 작품 중에서도 연주자들이 마치 올림픽 경기를 하듯 겨루는 곡이 있다는 사실, 알고 있었나요? 바로 미국 작곡가 그레고리 스미스(Gregory Smith·1957~)가 1995년 발표한 '오케스트라 게임(The Orchestra Games)'이에요.

세 팀이 다양한 종목에서 겨뤄요

스미스는 전 세계 디즈니랜드에 가면 울려 퍼지는 여러 테마 음악을 비롯해 애니메이션, 영화 음악 등을 작곡했고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장애인 올림픽의 개막식 음악을 담당한 음악가예요. 그는 청소년 음악 교육에도 관심이 많아 재미있는 해설이나 영상과 함께 하는 오케스트라 작품을 만들었는데, '오케스트라 게임'이 대표작입니다.

작품에서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은 각각 목관악기·금관악기·현악기로 팀을 나눠 팀 경기 하듯 곡을 연주해요. 해설자가 선수들을 소개하면서 작품은 시작합니다. 목관악기·금관악기·현악기 순서로 선수 소개가 진행되고, 각 악기 내에선 고음 악기부터 저음 악기 순으로 소개돼요. 목관악기팀에는 피콜로·플루트·오보에·클라리넷·바순이 선수로 나서고요, 금관악기팀에선 트럼펫·호른·트롬본·튜바가 출전해요. 현악기팀에는 바이올린·비올라·첼로·더블베이스가 나오고요. 그럼 팀파니 같은 타악기들은 어떤 역할을 할까요? 경기 시작을 알리는 총소리나 결과 발표 전 긴장감을 조성하는 소리 등을 내면서 '심판 역할'을 맡아요.

악기들은 단거리 달리기(가장 빨리 연주하기), 높이뛰기처럼 도약하기(음과 음 사이를 한숨에 뛰어넘어 연주하기)뿐 아니라 '가장 큰 소리 내기' '가장 작은 소리 내기' '가장 부드러운 소리 내기' 등 여러 종목을 겨룹니다. 악기들은 최대한 낮은음을 내기 위해 림보 춤 리듬을 타며 점점 저음으로 내려가기도 하고, 높이가 다른 두 음 사이를 어느 악기가 더 잘 내려가는지 보여주기 위해 글리산도('미끄러지듯'이란 뜻) 주법을 선보이기도 해요.

스미스는 곡 말미에 해설자를 통해 경쟁보다 모든 악기가 한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해요.

작품 속 트롬본은 마라톤 종목에 참가했는데 몸 상태가 안 좋아 이상한 소리를 내요. 하지만 다른 악기들이 트롬본을 다독여 함께 결승선을 통과(연주를 끝마침)한다는 이야기를 해설자가 전해줘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경쟁보다 화합을 보여주는 흐뭇한 장면이에요.

이 작품에선 관중들도 큰 역할을 한답니다. 해설자가 매 종목이 끝날 때마다 청중들에게 마치 스포츠 경기를 보러온 관중들에게 하듯 열광적인 박수를 요구하기 때문이죠. 마지막으로 악기들은 다 같이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합주를 들려주고, 해설자는 "언젠가 여러분도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할 기회가 오길 바란다"는 말로 작품을 마무리합니다.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이 모델

'오케스트라 게임'은 오케스트라를 이루는 악기 종류와 악기별 음색·음역·기능을 청소년을 비롯한 클래식 음악 초심자들에게 설명하려는 목적도 있어요. 이 작품의 모델은 영국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1913~1976)이 1946년 발표한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이에요. 브리튼이 영국 교육부로부터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이라는 교육용 영화의 음악을 작곡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쓴 작품인데, 이 작품도 해설자의 도움말과 함께 진행되며 악기들의 합주와 독주를 짧은 시간에 모두 들을 수 있는 작품이에요.

오케스트라의 여러 악기를 모두 등장시키기 위해 브리튼이 택한 형식은 '변주곡'이었어요. 하나의 주제 멜로디를 제시하고 이를 여러 악기가 다양하게 바꿔 발전해나가는 방식이죠. 작품의 주제 멜로디는 영국 출신 헨리 퍼셀(1659~1695)이 1695년 만든 멜로디예요. 전체 오케스트라가 다 함께 퍼셀의 멜로디를 한번 연주한 뒤 목관악기·금관악기·현악기·타악기 순서로 반복한 다음 본격적인 변주가 이어져요. 13개로 구성된 변주는 목관악기·현악기·금관악기·타악기 순서로 연주됩니다. 변주곡 사이에 해설자가 친절히 설명해주기 때문에 지금 어떤 악기를 연주하는지 놓치지 않고 따라가며 감상할 수 있어요.

음악과 스포츠에 공통점이 있다면, 최상의 결과를 얻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거예요. 모두의 노력이 하나로 모여 완성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 음악처럼, 선수들의 땀방울과 우리의 응원이 합쳐져 올림픽에서 승리의 환호를 듣게 되길 기대합니다.

[올림픽 영화 '불의 전차' 속 음악]

올림픽 소재 영화 중 음악으로 오랜 시간 사랑받는 작품이 있어요. 휴 허드슨 감독의 '불의 전차'(1981년)예요. 1924년 파리올림픽 육상 부문에서 금메달을 딴 영국의 해럴드 에이브러햄(Harold Abrahams)과 에릭 리들(Eric Liddell)의 실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에요. 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딛고 끝내 금메달을 목에 건 해럴드,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중국에서의 선교사 활동을 포기하고 육상에 뛰어든 에릭의 이야기가 감동적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음악은 그리스 출신 작곡가 방겔리스가 담당했어요. 록그룹 '아프로디테스 차일드'의 키보드 연주자였던 방겔리스는 1972년 이후 솔로로 전향해 영화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는데,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불의 전차'는 지금도 광고나 스포츠 행사 등에서 널리 사용됩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주제 음악인 'Anthem'도 방겔리스의 작품이에요.

김주영 피아니스트 김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