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무대 위 인문학] 유진 오닐, 테너시 윌리엄스, 아서 밀러 모두 수상했어요

입력 : 2021.06.28 03:30

퓰리처상 연극 부문

①2010년 테너시 윌리엄스 원작‘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한국 무대에 올랐어요. ②유진 오닐에게 네 번째 ‘퓰리처상’을 안겨 준 ‘밤으로의 긴 여로’ 작품(1950년대 독일 공연). ③2016년 국내에서 공연된 아서 밀러 원작‘세일즈 맨의 죽음’. /연극열전·예술의전당·위키피디아
①2010년 테너시 윌리엄스 원작‘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한국 무대에 올랐어요. ②유진 오닐에게 네 번째 ‘퓰리처상’을 안겨 준 ‘밤으로의 긴 여로’ 작품(1950년대 독일 공연). ③2016년 국내에서 공연된 아서 밀러 원작‘세일즈 맨의 죽음’. /연극열전·예술의전당·위키피디아
'언론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상이 있습니다. 바로 퓰리처상인데요, 수상자를 미국인으로 한정 짓고 있는 미국 국내 상이지만 국제적으로도 신뢰도가 높고 많은 관심을 받는 상이죠. 지난 11일(현지 시각) 발표된 올해 퓰리처상 특별 수상자로 지난해 미국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관의 무릎에 목이 짓눌리는 장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해 전 세계에 알린 18살 흑인 소녀 다넬라 프레이저가 선정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그런 퓰리처상에 '연극' 부문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나요? 퓰리처상은 헝가리 출신 미국 언론인 조셉 퓰리처(1847~1911)의 유언으로 1917년에 제정됐는데, 연극 분야는 3년 뒤인 1920년부터 수여됐습니다. 유진 오닐, 테너시 윌리엄스, 아서 밀러는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3대 극작가로 손꼽히는데요, 이들 모두 퓰리처상 수상 작가입니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들 작품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 연극 무대에 끊임없이 오르고 있습니다.

희곡에 '사실주의 기법' 도입한 유진 오닐

한 번도 받기 힘든 퓰리처상 연극 부문 수상자로 네 번이나 선정된 작가가 있습니다. 바로 '미국 현대 연극의 아버지'라 불리는 유진 오닐(Eugene O'Neill·1888~1953)이에요.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쓴 제임스 오닐의 아들이자, 찰리 채플린의 네 번째 아내 우나 오닐의 아버지로도 유명하죠. 오닐은 미국 현대 연극에 기초를 놓은 탁월한 공로를 인정받아 1936년 미국 극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어요. 오닐은 퓰리처상 연극 부문이 만들어지는 데 기여한 장본인이에요. 그의 첫 장편 희곡 '지평선 너머'가 바로 1920년 최초의 퓰리처상 연극 부문 수상작입니다. 이 작품은 당시 스타 배우와 상업극 중심이라는 관행에서 벗어나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최초의 작품성 높은 희곡이라는 점에서 크게 주목받았어요. 성향이 다른 두 형제 로버트와 앤드루, 그리고 이들과 삼각관계로 얽힌 루스라는 여인의 삶을 그렸죠.

오닐의 업적은 미국 연극 최초로 '사실주의 기법'을 도입한 것이에요.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깊은 사상성을 더한 완성도 있는 작품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그 문학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안나 크리스티'(1921), '기이한 막간극'(1928)에 이은 그의 네 번째 퓰리처상 수상작은 1953년 오닐이 사망하고 3년 뒤 발표된 '밤으로의 긴 여로'(1956)라는 작품이에요.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우울하고 비관적인 가족사를 고통스럽게 드러낸 이 작품은 오닐의 최대 걸작 중 하나로 꼽힙니다.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수상한 아서 밀러

테너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1911~1983)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47),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1955)로 퓰리처상을 두 번 거머쥔 작가입니다. 20편이 넘는 장편 희곡을 남긴 윌리엄스의 작품들은 주로 1865년 미국 남북 전쟁 이후 격변하는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몰락한 남부 지방 여성들의 비극적인 삶을 그려내고 있어요. 윌리엄스는 많은 시(詩)도 남겼는데, 그의 희곡 대사는 시적 감성과 유려한 표현으로 여운을 남깁니다.

아서 밀러(Arthur Miller·1915~2005)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세일즈맨의 죽음'(1948)으로 퓰리처상을 받았어요. 이 작품은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절 뉴욕의 평범한 세일즈맨 윌리 로만이 실직 후 좌절과 방황 끝에 자살을 택하는 비극적인 가족 이야기예요. 아서 밀러는 유명 배우 매릴린 먼로와의 짧은 결혼 생활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지만, 2005년 밀러의 임종 후 브로드웨이 극장들은 일제히 전등을 켜지 않는 퍼포먼스로 20세기 가장 위대한 희곡 작가로 살았던 그의 삶을 추모했어요.

퓰리처상 못 받았지만 흥행은 대성공!

퓰리처상 연극 부문 시상 역사에서 심사위원 절반이 사퇴하는 소동이 일어난 작품도 있어요. 미국 연극의 또 다른 거장 에드워드 올비(Edward Albee·1928~2016)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라는 희곡이죠. 퓰리처상은 두 단계를 거쳐 선정되는데, 먼저 분야별 퓰리처상 심사위원이 후보작 3개를 올리면 퓰리처 위원회에서 최종 작품을 선정해요. 1963년 심사위원들은 올비의 작품을 가장 강력하게 추천했죠. 하지만 대학교수 조지와 마사 부부를 통해 결혼의 허상을 밝히는 이 작품은 노골적인 음담패설과 선정성 때문에 퓰리처 위원회에서 수상을 거부합니다. 이런 소문은 오히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흥행에 대성공했고, 1963년 토니상(미국 브로드웨이 연극상) 5개 부문을 휩쓸었죠. 올비의 희곡은 발표 4년 뒤인 1966년 세기의 스타 부부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 부부가 주연한 영화로 재탄생해 지금도 클래식 영화의 고전으로 남아 있으니, 올비도 퓰리처상을 받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지 않았을까요?

[퓰리처상과 노벨상]

퓰리처상은 퓰리처의 유산으로 조성된 기금으로 매년 언론·문학·음악 등 21개 분야 수상자를 선정해 수여해요. 수상자들에겐 각 1만5000달러(약 1700만원)의 상금을 지급합니다. 1901년도에 첫 수상자를 낸 노벨문학상이 모든 문학 분야를 통틀어 단 한 명의 수상자를 선정하는 것과 달리 퓰리처상은 문학의 분야별로 시상해요. 또 노벨상은 한 작가가 이룬 평생의 공로를 평가하기 때문에 평생 단 한 번만 받을 수 있지만, 퓰리처상은 그해 각 분야에서 탁월한 평가를 받은 작품을 선정하기 때문에 한 작가가 여러 번 받을 수 있어요. 노벨상은 국적을 제한하지 않지만 퓰리처상 수상자는 반드시 미국인이어야 해요. 단, 퓰리처상 언론 부문만은 출신 국가에 상관없이 미국 언론사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면 수상 자격이 되지요. 그래서 한국인 기자가 수상한 적도 있답니다.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기획·구성=김연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