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다른 사람의 자유도 지켜주는 게 의무" 오른팔·다리 잃어도 끝까지 싸웠죠

입력 : 2021.06.24 03:30

69년 전에 이미 지불하셨습니다

영국의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과 라미 현. /라미 현 제공
영국의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과 라미 현. /라미 현 제공
글·사진 라미 현 l 출판사 마음의숲 l 가격 1만6000원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북한은 예고 없이 전쟁을 일으켰어요. 남북 군사분계선인 38선 이남을 기습적으로 침공했답니다. 그날부터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을 조인할 때까지 우리 땅에서는 포화가 멈추지 않았어요. 많은 군인과 민간인이 다치거나 소중한 목숨을 잃었어요.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피란 생활을 했고,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지는 아픔을 겪었지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유엔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전쟁의 아픔에 동참하기 위해 군인들을 파견했어요. 참전 용사들은 자기 나라 전쟁이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용감히 싸웠답니다. 세계 16국의 34만1000여 명에 이르는 군인이 목숨을 걸고 전투를 치렀어요.

지난 2016년 미국 사진 작가인 라미 현씨는 경기 고양시에서 사진전을 열었어요. 그곳에서 미국 해병대 출신 참전 용사 살바토르 스칼라토씨를 만났어요. 참전 군인의 자부심이 가득한 스칼라토씨의 눈빛을 본 라미 현씨는 그들의 이야기와 사진을 기록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작가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를 찾아서'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지금까지 22국 참전 용사 약 1500명을 만났어요. 이 책에는 참전 용사들이 증언하는 생생한 전쟁 이야기와 인물 사진을 함께 담았습니다.

미국 워싱턴 DC의 한국전쟁 참전 용사 기념 공원에는 판초 우의를 입고 소총을 든 동상이 있어요. 이 동상은 '윌리엄 빌 베버'라는 참전 군인을 본떠 만들었어요. 그는 한국전쟁 중 오른팔을 잃었고, 후송 중에 다시 포탄을 맞아 오른쪽 다리마저 잃었죠. 하지만 그는 끝까지 군인으로 남기를 희망했고, 전쟁터에서 복무했어요. 그는 "자유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자유가 없거나 자유를 잃게 생긴 사람의 자유를 지켜주는 것이 의무"라고 말해요. 라미 현이 그의 사진을 찍어 선물하자 그는 뭘 해주면 되느냐고 물었어요. 작가는 "선생님께서는 69년 전에 이미 다 지불하셨다. 저는 다만 그 빚을 조금 갚을 뿐"이라고 했대요.

윌리엄 빌 펀체스는 1950년 11월부터 1953년 7월까지 약 2년 9개월간 중공군 포로로 생활했어요. '죽음의 계곡'이라 할 정도로 악명 높은 북한의 5번 포로수용소에 갇혔어요. 그는 그곳에서 굶주림에 시달렸고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았죠. 비인간적인 포로 생활에도 그는 절망하지 않았어요. 사랑하는 가족을 만날 기다림과 희망으로 끔찍한 수용소 생활을 견뎠답니다.

이런 숨은 영웅들의 피와 땀을 잊지 않는 것도 우리가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해야 하는 이유일 거예요.

김성신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