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인공 적혈구 개발 성공… 아직은 동물에만 쓰여요

입력 : 2021.06.22 03:30

인공 혈액
헌혈 줄면 반복되는 혈액 부족 문제… 과학계, 혈액 대체재 개발해왔어요

/그래픽=유재일
/그래픽=유재일

지난 14일은'세계 헌혈자의 날'이었어요. 코로나 사태로 군인 등 단체 헌혈자들이 줄어 혈액 수급이 잘 안 되고 있어요. 우리나라 혈액 수급을 대부분 담당하는 대한적십자는 매일 혈액 보유 현황을 공지해요. 21일 현재 혈액 보유량은 4.1일분이에요. 보통 5일분 미만이면 혈액 부족이 시작됐다고 봐요. 코로나 이전에도 매년 겨울철엔 혈액 부족이 반복됐어요. 혈액 부족은 인명과 직결되니 매우 심각한 문제죠. 혈액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사람들에게 헌혈을 독려하는 것밖에 없을까요? 과학자들은 혈액을 대체할 '인공 혈액'을 찾는 연구를 해왔어요.

'숨 쉴 수 있는 액체', 혈액 대체 가능할까

혈액은 세포인 혈구(血球·적혈구, 백혈구, 혈소판)들이 액체인 혈장(血漿)에 섞여 있는 상태예요. 우리 몸에 혈액이 부족했을 때 생명이 위험한 가장 큰 이유는 적혈구 부족 때문이에요. 적혈구는 세포에 산소를 배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요. 우리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들은 포도당을 분해해 얻는 에너지(ATP·아네노신삼인산)로 살아가는데, 포도당을 분해하는 데 산소가 꼭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적혈구가 부족하면 세포가 충분한 에너지를 얻지 못하고, 결국 죽어버리게 되는 거죠. 세포로 이뤄진 우리 생명도 위험해지는 거예요. 적혈구는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몸 전체 세포의 약 70%를 차지해요.

우리가 물에 빠졌을 때 몇 분 만에 익사하는 것도 물 때문이 아니라 물속에 산소량이 적기 때문이에요. 우린 태아 시절 '양수'라는 액체 속에서 살았던 경험도 있고, 폐에 액체를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진 않아요. 문제는 물속에 충분한 산소가 없다는 거죠. 물에 녹아 있는 산소량인 '용존 산소량'은 기압이 높을수록, 온도가 낮을수록, 미생물량이 적을수록 높아요. 그런데 아주 맑고 차가운 시냇물의 용존 산소량도 7~10ppm(전체의 100만분의 1)에 불과해요. 인간 등 공기로 폐호흡하는 생물체는 대기 중 21%를 차지하는 산소량에 최적화되어 있어 물처럼 산소 농도가 낮은 곳에선 살 수가 없죠.

만약 액체 속에 대기와 비슷한 농도 산소가 있다면 숨 쉬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과불화탄소의 일종인 퍼플루오르데칼린(Perfluorodecalin)에서는 가능해요. 이 액체는 산소 용해도가 매우 높아서 대기(21%)보다 많은 최대 45%까지 산소를 녹일 수 있어요. 과학자들이 퍼플루오르데칼린에 실험 쥐를 빠뜨리는 실험을 했는데, 쥐가 숨을 쉬며 떠있었다는 연구 결과를 1987년 발표했어요. 영화 '심연'(The Abyss·1989년)에선 심해 잠수사가 퍼플루오로데칼린 속에서 호흡하는 장면도 나와요.

과학자들은 이 액체가 혈액을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실제로 퍼플루오르데칼린에서 폐 기능이 원활하지 않은 조산아(早産兒)가 잠시 숨을 쉴 수 있게 하는 데 쓰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 액체가 적혈구 역할을 대체하기엔 무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혈액의 상당 부분은 물로 이뤄져 있는데, 과불화탄소류 물질은 물에 섞이지 않기 때문에 혈액 속 다른 구성 성분들과 어울리기 어렵고, 혈압이 지나치게 올라가는 부작용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산소 운반체를 만들라!

과학자들은 적혈구의 산소 운반 기능을 대신할 존재는 없을까도 연구했어요. 산소는 적혈구 그 자체가 아닌 적혈구 속 헤모글로빈에 달라붙어 운반돼요. 그래서 과학자들은 1980년대부터 인공 적혈구 제제인 '헤모글로빈을 기반으로 한 산소 운반체(HBOC·Hemoglobin Based Oxygen Carrier)'를 개발해 왔어요.

HBOC는 살아 있는 세포가 아니라 단백질의 일종이기 때문에 관리와 보관이 쉬워요. 수혈용 혈액은 6주까지 보관할 수 있지만, HBOC는 실온에서 최대 3년까지 보관할 수 있어요. 또 혈액형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투여할 수 있고, 혈액 관련 감염병에도 안전하죠. 그래서 현재까지 여러 생명공학 회사들이 다양한 HBOC를 개발했고, 일부는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사용 허가도 받았어요. 하지만 이후 심장 발작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밝혀져 사용 승인이 취소됐답니다. 현재는 동물 수혈에만 일부 사용되고 있고, 인체 사용엔 허가된 것이 없어요. 지금도 많은 제약사들이 HBOC의 부작용을 줄일 방법을 연구하고 있답니다.

하지만 부작용을 줄인 HBOC가 나온다 해도 이것이 완전히 혈액을 대체하기엔 부족해요. 혈액은 산소 운반 말고도 면역, 대사 조절 등 다양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사람 피가 파란색이나 녹색으로 변할 수도 있어요]

'피'하면 보통 붉은색을 떠올리지만, 생물체 피 색깔은 다양해요. 혈액이나 혈구 속에 산소 운반 역할을 하는 분자를 '혈색소(血色素)'라고 해요. 이 혈색소가 산소와 결합했을 때 어떤 원소를 가지냐에 따라 피는 다양한 색을 갖게 됩니다. 사람 혈색소는 적혈구 속 헤모글로빈이에요. 헤모글로빈은 철(Fe)을 함유했기 때문에 산소와 결합하며 산화철 색인 빨간색을 띠어요. 문어, 투구게 등은 구리를 함유한 헤모시아닌이 혈색소예요. 헤모시아닌은 원래 무색 투명한데 산소와 결합하면 산화구리의 색인 파란색이 됩니다. 또 바다 지렁이 등 혈색소가 클로로크루오린인 생물은 피가 초록색이고, 헤메리트린인 생물체는 피가 보라색이에요. 사람 피는 보통 붉지만, 파란색이나 녹색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이상 증상의 결과죠. 파란색은 질산염 부족 등 상태에서, 녹색은 심각한 황화합물 중독 증상이 있을 때 나타나요.

이은희 과학저술가 김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