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 이야기] 노인으로 태어나 점점 젊어진 벤자민, 남들 시선 아랑곳 않고 현재 즐겼어요

입력 : 2021.06.22 03:30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노인 외모의 어린 벤자민을 데리고 다니는 로저 버튼을 그린 삽화. /위키피디아
노인 외모의 어린 벤자민을 데리고 다니는 로저 버튼을 그린 삽화. /위키피디아

"버튼씨의 눈길이 간호사의 손가락을 따라갔다. 일흔 살쯤 되어 보이는 노인이 커다랗고 하얀 담요에 싸여 아기 침대에 앉아 있었다. 듬성듬성한 백발에 희뿌옇고 긴 턱수염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산들바람에 엉성하게 흔들렸다. 그가 흐리멍덩한 눈으로 버튼씨를 바라보았다. 이게 다 무슨 소란인가 하는 표정 같았다."

최근 '시간'을 소재로 하는 영상 콘텐츠가 많이 나오고 있어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고 가는 '타임 슬립(Time slip)'과 특정 시간대를 반복하는 '타임 루프(loop)'를 다룬 콘텐츠들이 대표적이에요. 인간이 좌우할 수 없는 거의 유일한 것이기 때문일까요? 시간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였어요. '위대한 개츠비'로 유명한 작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가 1922년 발표한 단편 소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도 시간에 대한 신선한 통찰을 담은 작품이에요. 우리말로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로 번역됐지만, 원래 제목은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이에요.

1860년 어느 날,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한 병원에서 로저 버튼 부부의 첫아이가 태어나요. 보통 갓 태어난 아이는 뽀얀 살결에 작고 귀엽죠. 그런데 이 아이는 얼굴에 쪼글쪼글한 주름이 가득하고 흰 수염이 덥수룩했어요. 병원은 발칵 뒤집혔고, 늦게 도착해 아이를 확인한 아빠 로저도 큰 충격에 빠졌어요. 방금 태어난 아이가 자신을 보자마자 "당신이 내 아버지인가요?"라고 물었으니, 어지간한 강심장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거예요.

더 놀라운 일은 벤자민이 시간이 지날수록 늙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젊어진다는 것이었어요. 그가 12살쯤 됐을 때는 더 이상 허리가 굽지 않았어요. 18살 땐 오십대같이 보였죠. 벤자민은 날이 갈수록 젊어졌고, 장군의 딸과 결혼했어요. 벤자민은 아빠의 철물 도매 사업을 도왔는데, 수완이 좋아 사업이 나날이 번창했죠. 군대에 입대한 후 스페인과 전쟁에 참전해 공을 세우고 훈장도 받아요.

실제 나이가 오십이 됐을 때, 외모만 보면 이십대인 벤자민은 하버드대에 입학해 공부도 하고 럭비팀에서 탁월한 운동 실력도 발휘해요. 이후 벤자민은 실제 나이 쉰 살이 훌쩍 넘어서면서 외모는 점점 십대, 유아로 변하더니 결국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가 됐어요. 흥미로운 것은 벤자민 스스로는 거꾸로 가는 시간을 원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자기 삶의 시간들을 충실하고 즐겁게 산다는 거예요. 남들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요. 가끔 사는 게 힘들 때 큰 걱정 없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 있나요? 그럴 땐 늘 현재를 즐기며 살았던 벤자민 버튼을 떠올려봐요.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