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명화 돋보기] 통통 튀는 몸짓 순간 포착… 화가에게 큰 도전이었어요

입력 : 2021.06.21 03:30

무용수를 그린 작품들

그림1 - 에드가르 드가 ‘에투알(별)’(1878년).
그림1 - 에드가르 드가 ‘에투알(별)’(1878년).
발레리나 박세은(32)이 아시아 무용가 최초로 352년 역사를 가진 프랑스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에투알이 됐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졌어요. 에투알이란 프랑스어로 '별'이라는 뜻으로,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를 일컫는 호칭입니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원은 5등급으로 나뉘어요. 처음에 입단하면 군무(群舞)를 추는 '카드리유'부터 시작해요. 이어서 군무에서 가장 앞쪽에 등장하는 '코리페'가 되고, 그다음으로는 독립적으로 춤을 추는 '쉬제'가 됩니다. 거기서 승급하면 주연급의 '프르미에 당쇠르'가 되는데, 당쇠르 중 최고 수준이라는 인정을 받으면 '에투알'로 지명됩니다.

연습장·무대 뒤 등 드나들며 스케치했어요

에투알은 옛 그림에서도 볼 수 있어요. 〈그림1〉은 19세기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에드가르 드가(Edgar Degas, 1834~1917)가 그린 '에투알'입니다. 드가는 인물의 동작을 묘사할 수 있는 소재를 좋아해서 발레나 서커스 공연을 많이 그렸어요. 특히 발레 작품은 유화, 스케치 등을 모두 합쳐 1500여 편이나 남겼어요. 작품 '에투알'은 화려한 의상을 입은 발레리나가 홀로 넓은 무대 위에서 두 팔을 날개처럼 펼친 채 우아하게 한 발로 회전하는 모습을 그렸어요. 화가의 시선은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보고 있어요. 가녀린 목을 뒤로 젖힌 무용가의 얼굴 표정까지 생생하게 볼 수 있도록 특별한 위치에서 그림의 구도를 잡은 것이지요.

드가는 당시 공연장 특석에서 관람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의 왼편을 보세요. 무대 뒤쪽으로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얼굴은 잘 드러내지 않은 채 서 있어요. 무대 가까이까지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던 것으로 볼 때 그는 일반 관람자가 아니라 예술을 후원하는 상류층 클럽의 회원으로 추정돼요. 드가는 이런 회원 중 한 사람을 친한 친구로 둔 덕분에 극장의 특석을 비롯해 무대 뒤나 분장실 근처까지 드나들며 스케치를 할 수 있었어요.

드가는 평소 발레 연습장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고 합니다. 발레리나들이 교습을 받거나 연습을 하는 장면을 관찰하고 그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림2〉는 당대 유명한 발레 안무가인 쥘 페로가 지도하는 모습이지요. 드가는 어디에 앉아 그림을 그렸을까요? 마루의 맨 끝 구석에 마루보다 약간 높은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보여요. 그림에선 왼편 아래쪽이지요. 머리가 하얀 쥘 페로는 지금 한 사람씩 불러내 어떤 동작을 해보도록 시키는 것 같아요. 학생들은 자기 순서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몸을 비틀어 등을 긁기도 하고, 머리나 귀걸이, 리본 등 옷매무시를 가다듬기도 합니다.

드가는 안타깝게도 서른 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눈병으로 오른쪽 시력을 잃었습니다. 초점이 완전하지 못해서 한 점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어슴푸레한 주변만 보였어요. 드가는 그림을 그릴 때 파스텔을 적극적으로 사용했어요.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이 파스텔화처럼 희뿌옇게 번져있기 때문이었지요. 드가 그림의 특징은 평범하지 않은 위치에서 인물을 바라봤다는 것이에요. 한쪽 눈으로도 잘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를 찾느라 여기저기 옮겨 다닌 결과였을지도 모릅니다.



화가에게 영감 준 전설의 男무용수 '니진스키'

남성 무용가를 다룬 그림도 있어요. 20세기 초반에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발레단 중에는 세르게이 댜길레프가 이끄는 '발레 뤼스'가 있었어요. 당시 러시아는 혁명의 움직임이 있고 정치적으로 복잡한 상황이어서 문화 예술 활동이 어려웠습니다. 그로 인해 발레 뤼스는 프랑스 파리를 본거지로 삼아 외국으로 순회 공연을 다녔어요. 이 발레단은 무용가들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음악가, 안무가, 무대 디자이너, 의상 디자이너 등 다방면에서 탁월한 인물이 많았어요.

발레 뤼스 소속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바츨라프 니진스키(1889~1950)입니다. 남성 무용가의 역사를 새로 쓴 전설의 무용수예요. 〈그림 3〉은 니진스키가 공연 '목신(牧神)의 오후'를 위해 목신으로 분장한 모습인데, 러시아의 화가이자 무대 디자이너였던 레온 박스트(1866~1924)가 그린 것이에요. 목신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숲·사냥·목축을 맡은, 반은 사람이고 반은 짐승 모습을 한 신(神)이죠. 그림에서 긴 천 자락이 화면을 과감하게 훑고 지나가면서 운동감을 자아냅니다.

니진스키의 몸은 결코 무용가로서 이상적이지는 않았어요. 작은 키에 허벅지는 지나치게 굵었으니까요. 그러나 일단 무대에 올라가 춤추기 시작하면 그런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대를 가로질러 새처럼 날아다녔어요. 몸이 마치 통통 튕겨 오르는 공처럼 가뿐하게 솟구쳐 올랐지요.

〈그림4〉는 '셰에라자드'에서 노예 역을 맡은 니진스키의 모습입니다. 이 공연에서 니진스키는 마룻바닥에 머리를 아주 잠깐 대었다가 목 근육의 힘으로 공중으로 세차게 튀어 올라 부들부들 떨다가 쓰러지는 연기를 선보였어요. 당시 관객들은 혹시 그의 목이 부러지는 건 아닐까 해서 잠시 호흡을 멈추었다고 합니다.

무용가는 하나의 포즈를 취한 채 가만히 앉아있는 다른 모델과 달리 시시각각 수많은 동작을 만들어내요. 무용가의 몸짓을 잘 그리려면 움직이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빠르게 잡아낼 줄 알아야 하고, 동작에 깃든 감정까지도 놓치지 말아야 해요. 에드가르 드가는 '무용수의 화가'라고 불려요. 그는 살아생전 "나는 정말 '움직임' 그 자체를 그리고 싶었다"고 했어요. 최고의 무용가가 되기도 어렵지만, 그 무용가를 그리는 것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답니다.

이주은·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그림2 - 에드가르 드가 ‘페로의 교습 시간’(1875년).
그림2 - 에드가르 드가 ‘페로의 교습 시간’(1875년).
그림3 - 레온 박스트 ‘목신의 오후의 니진스키’(1912).
그림3 - 레온 박스트 ‘목신의 오후의 니진스키’(1912).
그림4 - 조르주 바르비에 ‘셰에라자드에서의 바츨라프 니진스키’(1912). /위키피디아·이주은 제공
그림4 - 조르주 바르비에 ‘셰에라자드에서의 바츨라프 니진스키’(1912). /위키피디아·이주은 제공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김연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