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사소한 역사] 영국은 식민지에서 식물 품종 대거 가져와 세계 최대 식물원 만들었죠

입력 : 2021.06.15 03:30

식물원

영국 런던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큐 왕립 식물원’. /위키피디아
영국 런던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큐 왕립 식물원’. /위키피디아
최근 강원도 양구에 있는 '국립DMZ(비무장지대)자생식물원'이 기존에 개방하지 않았던 북방계 식물 전시관을 일반에 잠시 개방했었어요. 쉽게 만나기 힘든 식물들을 관찰할 좋은 기회였습니다. 식물원은 식물을 연구하고 식물 관련 지식을 보급하기 위해 많은 종류의 식물을 모아 기르는 곳이에요. 식물원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인류가 식물을 모아 정원을 꾸민 흔적은 고대 문명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요.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중국에서 정복한 땅의 식물을 가져와 정원에 심어 가꾼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식물 연구'를 위해 설립된 정원은 아니었기 때문에 엄밀히는 식물원으로 보긴 어려워요. 연구 목적으로 조성한 것은 기록상으론 아리스토텔레스가 아테네에 만든 정원이 처음이에요. 하지만 이 정원에서 식물에 대해 어떤 연구를 했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식물원의 효시로 보지는 않아요.

연구 목적이었다는 게 밝혀진 고대·중세의 식물원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서유럽 프랑크 왕국(481~843)의 카롤루스 대제 때 수도원들이 만든 '의술 정원'입니다. 이 정원에선 73종류의 약용 허브를 키운 기록이 있어요.

근대로 접어들면서 식물원은 더욱 발전했습니다. 르네상스가 가장 먼저 시작된 이탈리아에선 1544년 피사 식물원, 1545년 파도바 식물원이 생겨 의학 대학이 식용식물을 연구할 수 있게 도움을 줬어요.

신항로 개척 이후 유럽이 식민지 쟁탈전에 나서면서 식물원의 성격도 변했습니다. 바로 식민지 개척의 성과를 선전하는 목적이 추가된 거예요. 1759년에 설립된 영국 런던의 '큐 왕립 식물원' 역시 처음엔 약용 식물 연구를 위한 식물원이었어요. 하지만 영국이 식민지 쟁탈전에 나서고 아프리카의 많은 땅을 식민지로 확보하면서 아프리카에서 자생하고 있던 식물들을 이 식물원으로 옮겼어요. 이후 갈수록 식물원 규모가 커져 현재는 세계 최대 규모 식물원으로 발전했죠. 현재 큐 식물원은 세계 식물학의 중심 역할을 하고 멸종 위기 식물 보존 등 긍정적인 역할을 많이 하고 있지만, 발전 배경엔 식민지 수탈이란 어두운 부분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식물원은 동물원과 함께 일제강점기에 등장했어요.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기 1년 전인 1909년 일제는 창경궁 이름을 창경원으로 바꾸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조성했어요. 이때 만들어진 유리 온실이 한반도 최초의 근대적 식물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리 온실은 일제 수탈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고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온실이라는 점 때문에 보존하자는 의견도 있었어요. 그래서 보수공사가 진행된 끝에 2017년 일반인에게 개방됐어요.

1922년엔 산림 자원 개발을 목적으로 나무 시험 재배를 위해 서울과 경기 포천에 시험 포지(식물을 심고 가꾸는 땅)를 설치했는데, 이곳이 현재 서울 청량리 홍릉숲과 경기 포천 국립수목원(옛 광릉수목원)이 됐습니다.

김현철 서울 영동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김연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