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익살·변덕·슬픔… 작곡가의 감정이 작품명 됐어요
입력 : 2021.05.24 03:30
스케르초·카프리치오·엘레지
- ▲ /그래픽=양진경
'미뉴에트' 대신 넣은 빠른 박자의 곡
먼저 '스케르초'입니다. 이탈리아어로 '익살''해학'을 의미하는 스케르초는 매우 빠른 세 박자의 춤곡이에요. 스케르초는 하이든(1732~1809)이 활동하던 18세기 중반에도 쓰였지만, 본격적으로 작품에 사용된 것은 베토벤(1770~1827)의 작품에 한 악장으로 삽입되면서부터입니다.
베토벤은 4악장으로 구성된 교향곡이나 소나타 속 세 번째 악장으로 스케르초를 넣었습니다. 베토벤 이전까지 교향곡의 세 번째 악장에는 완만한 템포의 세 박자 춤곡 '미뉴에트'가 들어갔어요. 일설에는 귀족들이 미뉴에트만 나오면 작품을 감상하지 않고 일어나서 춤을 추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베토벤이 너무 빨라서 춤을 추기 어려운 스케르초를 미뉴에트 대신 넣었다고도 해요.
베토벤의 여러 스케르초 가운데 재미있는 작품으로는 교향곡 3번 '영웅' 작품 55(1804)의 3악장이 있습니다. 이 스케르초 중간에는 호른 세 대가 등장해 마치 사냥 나팔 소리 같은 멜로디를 연주해요. 당시엔 세 호른 연주자가 한 번에 등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청중이 많이 놀랐다고 합니다.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리는 쇼팽(1810~1849)의 스케르초도 유명합니다. 피아노로 연주하는 그의 스케르초는 어딘지 어둡고 불안한 분위기가 감도는 동시에 피아노의 화려한 기교가 돋보이는 작품이에요. 작곡가이자 평론가였던 로베르트 슈만(1810~1856)은 쇼팽의 스케르초에 대해 "농담이 검은 옷을 입고 다니는 느낌"이라고 평했어요. 익살스러운 느낌이 나는 스케르초에서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가 나는 것이 낯설다는 뜻이었을 거예요. 모두 네 곡인 쇼팽의 스케르초 중에는 작품 31의 스케르초 2번이 가장 인기 있습니다. 탄력 있는 리듬과 아름다운 멜로디가 인상적인 걸작이죠.
자유롭게, 변화무쌍하게
'카프리치오'는 '변덕'이라는 뜻의 이탈리어어예요. 특별한 형식이 없이 자유로운 기분을 표현한 작품이 많습니다. 작곡가의 즉흥적 기질을 변화무쌍한 악상으로 그린 곡들이 대부분이죠.
유명한 작품으로는 차이콥스키가 1880년에 발표한 '이탈리아 카프리치오' 작품 45가 있습니다. 여행을 좋아했던 그가 이탈리아에 머물던 당시 이탈리아 민요와 자연에서 받았던 인상을 자유롭게 표현한 작품이에요. 이탈리아 특유의 서정적인 선율과 신나는 타란텔라(나폴리 지방의 춤곡) 리듬, 군악대의 팡파르 등이 번갈아 등장해 듣는 이들의 흥분을 고조시킵니다. 카미유 생상스의 바이올린 곡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작품 28(1863)도 인기 있는 카프리치오죠. 생상스가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사라사테를 위해 만든 이 곡은 우울한 느낌의 느린 서주 후 자유로운 분위기의 론도로 넘어가며 바이올린의 화려한 기교를 뽐내는 악상이 쉴 새 없이 등장해 변화무쌍하게 발전합니다.
가버린 봄에 빗댄 '실연의 슬픔'
스케르초나 카프리치오와 대조적으로 깊은 슬픔의 정서를 노래한 작품들도 있습니다. '엘레지', 혹은 '비가(悲歌)'라고 부르는 작품들입니다. 엘레지는 작곡가가 느낀 우울하고 쓸쓸한 기분을 극대화시켜 표현한 곡이라고 할 수 있어요. 프랑스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1845~1924)가 만든 작품 24의 엘레지는 원래 첼로 소나타의 느린 악장으로 구상되었지만, 다른 악장들은 완성되지 않은 채 맨 처음 만들어진 이 곡만 남아 전합니다. 작품은 무거운 분위기의 호흡이 긴 선율로 시작돼 슬픔을 점점 깊게 그려내며 중간에는 약간 밝은 분위기로 바뀌지만 격정적인 클라이맥스를 거쳐 이내 첫 부분의 어두운 정서로 돌아옵니다.
오페라로 유명한 작곡가 쥘 마스네(1842~1912)의 '엘레지'도 이와 비슷한 분위기의 가곡입니다. 1875년 작곡된 이 노래의 가사는 프랑스 작가 루이 갈레가 붙인 것으로 실연의 슬픔을 가버린 봄에 빗대고 있죠. '오 아름답고 푸르른 봄이여, 그러나 너는 내 사랑하는 이와 함께 가버렸구나(후략)' 3분 남짓한 짧은 가곡이지만 작곡가 특유의 우아한 색채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마스네의 대표곡 중 하나인 이 곡은 바이올린이나 첼로 등 악기용으로 편곡해 연주하기도 합니다.
음악에 담긴 정서를 작품 이름으로 그대로 쓴 스케르초·카프리치오·엘레지는 감상하는 사람들을 들뜨고 신나게 하기도, 또 슬프고 우울하게도 만드는 매력을 갖고 있어요. 작곡가들이 이 곡들을 지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상상하며 들어보세요.
[6월 호국 보훈의 달에 만나는 클래식]
제목이 '엘레지'는 아니지만, 작품 분위기로 인해 장례식이나 추모의 자리에서 자주 연주되는 곡이 있습니다.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의 2악장은 유명한 장송(죽은 이를 장사 지내 보냄) 행진곡인데, 특유의 무겁고 엄숙한 악상으로 잘 알려져 있죠. 그의 교향곡 7번 작품92(1813)의 2악장 알레그레토도 짙은 슬픔의 정서로 깊은 여운을 남기는 곡입니다. 노르웨이의 작곡가 그리그의 극음악 '페르귄트' 중 '오제의 죽음' 은 극 중 주인공인 페르의 어머니 오제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 쓰인 음악으로, 격하게 터져나오는 울음을 음악으로 표현한 인상적인 악상이 등장합니다. 이 곡들은 현충일이 있는 보훈의 달 6월에 자주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