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생명 창조' 위한 끝없는 도전… '신의 영역'에 다가가요
입력 : 2021.05.18 03:30
인간의 생명체 창조 연대기
신화 속 키메라 전설은 현대에도 이어졌어요. 19세기 영국 여성 소설가 메리 셸리가 쓴 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는 신의 영역인 생명체 창조에 도전한 물리학 박사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어요. 박사는 죽은 사람의 뼈와 장기들을 이어 붙여 흉측한 괴물에 가까운 8피트(약 2.44m) 키의 인조인간을 만들고 전기 충격을 줘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비록 소설 속 이야기지만 출산이 아닌 인공적 실험으로 생명을 창조한다는 발상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현실에서도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걸 꿈꾸게 했으니까요.
동물 복제하고 인간 배아 만들고
1953년 인간 DNA의 이중나선 구조가 규명됐고, 1996년 7월 영국 에든버러 로즐린연구소 이언 윌멋 박사팀이 생명 복제 기술을 통해 세계 최초로 복제 양 돌리(Dolly)를 탄생시켰어요. 2000년 6월에는 인간 게놈(Genome·유전체) 지도 초안이 발표됐죠. 이제 인류는 본격적으로 생명체를 조작하고 복제하고 창조하기 위한 준비를 끝낸 셈입니다.
돌리는 난자와 난자가 만나 태어난 동물입니다. 먼저 다 자란 암컷 양의 체세포에서 핵을 꺼내고, 핵을 제거한 다른 양의 난자에 넣은 다음, 전기로 충격을 주면 마치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한 것처럼 세포분열이 일어나요. 얼마 후 이 수정란을 대리모의 자궁에 넣고 자라게 한 후 태어나게 했습니다. 이후 양뿐 아니라 소, 염소, 돼지, 쥐, 원숭이, 고양이, 개 등 다양한 동물이 복제됐습니다.
신화 속 반인반우(半人半牛)인 미노타우로스도 탄생했어요. 2002년 8월 국내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 박세필 박사는 사람 체세포를 소의 난자에 이식해 인간 배아(미노타우로스 배아) 복제에 성공했어요. 2006년 11월에는 영국 뉴캐슬대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치료용 인간 배아 줄기세포 개발 허가를 받아 연구했죠. '인간+소' 배아는 인간의 체세포 안에 들어 있는 핵만 쏙 빼내어 유전 정보가 제거된 소의 난자에 넣어 배아 단계까지 배양한 거예요. 이렇게 만든 배아는 생물학적으로 '99.9%' 인간 배아지만 소 난자의 세포핵 바깥 DNA가 제거되지 않아 '0.01%' 동물 DNA를 가진 이종(異種) 배아가 됩니다.
배아는 수정란이 세포분열을 시작하여 태아가 되기 전(8주 차)까지를 말해요. 이 배아가 세포분열을 하면서 머리, 팔, 다리가 생겨나고 눈, 코, 입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인간 배아는 복제된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뽑아내 치료용으로 사용하려고 만들어요. 줄기세포는 장기가 될 수도 있고, 피부가 될 수도 있고, 우리 몸을 구성하는 그 어떤 것으로도 바뀔 수 있는 만능 세포예요. 배아의 줄기세포로 장기를 만들면 폐암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고, 뇌세포를 만들면 치매 할머니의 기억을 되찾을 수 있답니다. 그런데 복제 배아를 치료용으로 사용하지 않고 자궁에 착상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배아가 자궁에서 자라나 복제 인간이 태어날 수도 있어요.
자손인 '딸세포' 만드는 인공 생명체
생명과학 기술은 더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3월 국제 학술지 '셀'에는 박테리아처럼 세포가 스스로 분열하여 자손 번식까지 가능한 인공 생명체 'JCVI-syn3A'를 만든 연구 결과가 실렸어요. 연구팀 중 하나인 미국 크레이그벤터연구소(JCVI)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관여한 벤터 박사가 세운 곳이죠. 인공 생명체는 게놈을 인공적으로 합성한 생명체를 의미해요.
2016년 벤터 박사팀은 유전자 473개를 가진 인공 생명체 'JCVI-syn3.0'을 만들었어요. 연구진은 모든 유전자를 없앤 박테리아에 직접 컴퓨터로 설계하고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합성한 유전자(DNA)를 넣었어요. 실제 박테리아는 유전자가 901개인데 사는 데 꼭 필요하지 않은 유전자는 제거하고 필수 유전자 473개만 추려 생존과 증식할 수 있게 한 거예요. 이미 있는 세균 유전체를 모방하긴 했지만 새로운 종(種)을 만든 셈이죠. 그런데 JCVI-syn3.0 세포가 균일하게 성장·분열하지 않아서 증식한 자손(딸세포·daughter cell)은 모양과 크기가 똑같지 않아 연구진이 고민하게 됐습니다.
이후 연구를 거듭해 정상적인 세포분열에 필요한 유전자 7개를 포함, 유전자 19개를 찾아내 JCVI-syn3.0에 추가했어요. 이걸 JCVI-syn3A로 불렀는데 이 모세포에서 증식한 딸세포는 모양과 크기, 유전자 구성이 일치했다고 해요. 이 JCVI-syn3A는 생명 유지뿐 아니라 세포분열을 통해 모세포와 동일한 딸세포로 증식할 수 있어 "진짜 인공 생명체"라고 벤터 박사는 말합니다. 단세포가 세포분열을 해서 자기랑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단세포를 여러 개 만들어내는 단계까지 온 겁니다. 박테리아 입장에선 자식을 낳은 겁니다. 앞으로 과학자들이 박테리아가 아닌 동물 같은 복잡한 유전자를 가진 다세포 인공 생명체도 이런 식으로 만들 수 있다면 인간은 생명체 창조라는 신의 영역에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빠 살리려 태어난 아기]
오빠 병을 치료하기 위한 '맞춤형 아기(designer baby)'도 탄생했어요. 지난 2002년 영국에선 찰리 휘터커라는 4세 남자아이가 희소 빈혈증을 앓았어요. 부모는 치료를 위해 골수 조직이 일치하고 희소병을 앓지 않는 유전자를 지닌 맞춤 아기 출산을 허가해 달라고 당국에 요청했죠. 하지만 영국 정부가 허가하지 않자 찰리 부모는 관련 법규가 없는 미국으로 건너가 이런 유전자 맞춤형 딸을 낳았어요. 이렇게 태어난 아이 골수는 찰리에게 이식됐습니다.
- ▲ 미노타우로스, 프랑켄슈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