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무대 위 인문학] 고풍 가득한 도시서 열리는 축제… 월드컵만큼 관객 많죠
입력 : 2021.05.17 03:30
75주년 맞은 프랑스 아비뇽·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 ▲ ①프랑스‘아비뇽 페스티벌’의 주요 무대인 교황청 안뜰‘쿠르 도뇌르’에서 셰익스피어의‘리처드 2세’연극이 펼쳐지고 있어요. 아비뇽 페스티벌은 1947년 바로 이 장소에서 리처드 2세 등 3편의 연극을 올리면서 시작됐습니다. ②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관객들이 길거리 공연을 즐겁게 보고 있어요. /아비뇽 페스티벌·에든버러 페스티벌 공식 홈페이지
프랑스와 영국 모두 백신을 맞은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축제 등에 대한 통제도 완화하는 추세예요. 아직 축제까지 2~3개월이 남은 만큼 코로나 확산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두 축제 모두 관람 인원을 제한하고 관람객 간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한 상태에서 공연을 즐길 수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는 백신을 맞았거나 코로나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다는 증명서를 낸 사람들에게만 축제 참가를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입니다. 에든버러 페스티벌의 일부는 온라인으로 열릴 가능성도 있어요.
14세기 교황청 안뜰에서 공연 펼쳐져요
파리 리옹역에서 고속철도를 타고 2시간 40여분 남짓이면 도착하는 곳에 아비뇽이 있습니다. 아비뇽은 프랑스 남동부를 지나 지중해로 흘러드는 아름다운 론강을 배경으로 중세 시대 고풍스러운 성벽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곳이에요.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됐죠.
이 도시는 '아비뇽 유수(幽囚·잡아 가둠)' 사건으로 유명합니다. 프랑스 왕 필리프 4세(1285~1314)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로마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와 분쟁을 일으켜 승리를 거두고 로마에 있는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옮깁니다. 이를 통해 1309년부터 1377년까지 약 70년간 교황 7명이 아비뇽에 발이 묶이게 됩니다. 이후 교황청은 다시 로마로 돌아갔지만, 교황권은 쇠퇴의 길로 들어섰어요. '아비뇽 유수' 기간에 지어진 아비뇽 교황청과 대성당 등은 인기 있는 관광 명소가 됐습니다.
아비뇽 페스티벌은 1947년, 배우이자 연출가 장 빌라르가 교황청 안뜰에서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2세' 등 연극 세 편을 선보이며 시작됐어요. 이 교황청 안뜰 '쿠르 도뇌르(Cour d'honneur·명예의 뜰)'는 지금도 주요 작품이 공연되는 축제의 상징적인 장소예요. 축제는 주최 측의 엄격한 심사를 거친 공연팀들의 공식 프로그램인 '페스티벌 인(In)'과 아마추어 단체들이 누구나 자유롭게 공연을 거리에서 펼쳐 보이는 '페스티벌 오프(Off)' 두 개로 나뉩니다.
아비뇽 페스티벌은 매년 10만명이 찾는 대표적인 공연 예술 축제로 성장했어요. 축제 관광객이 도시 총 인구와 맞먹는 대단한 인기죠. 초창기엔 연극 중심으로 행사가 열렸지만, 점차 춤·음악·영화 등이 더해져 다양한 공연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됐습니다. 지난 4월 말에는 아비뇽 페스티벌의 화제작을 영상으로 만날 수 있는 '아비뇽 페스티벌 시네마'가 LG아트센터에서 상영돼 아비뇽으로 떠나지 못하는 국내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기도 했어요.
2차 세계대전 상처 어루만지려 탄생했어요
아비뇽 페스티벌이 끝나는 8월이면 영국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에서 '에든버러 페스티벌'이 개최됩니다. 에든버러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에요. 축제의 규모나 장르의 다양성 등을 보면 아비뇽 페스티벌보다 훨씬 큽니다. 축제 기간 서쪽의 에든버러 성과 동쪽의 홀리루드 하우스 궁전을 연결하는 '로열 마일'은 공연을 홍보하기 위해 나온 예술가들과 관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려요.
에든버러 페스티벌은 지난 70여년간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됐어요. 각종 공연 예술이 펼쳐지는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뿐 아니라, 과학·어린이·영화·재즈&블루스·군악대 연주·책 등 다양한 주제의 11개 축제가 도시 곳곳에서 열려요. 공식 초청을 받지 않아도 누구나 공연을 선보일 수 있는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도 인기죠. '프린지(fringe)'는 '주변·변두리'라는 뜻이지만, 실제론 페스티벌의 주요 볼거리로 꼽힐 만큼 실력 있는 단체들이 공연을 한답니다.
에든버러 페스티벌은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으로 상처받은 많은 이의 마음을 치유하고 서로 단합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됐어요. 당시 영국 정부와 에든버러시의 후원을 받아 글라인드본 오페라단 행정관이었던 루돌프 빙이 축제를 기획하고 이끌었죠. 1947년 첫 회 때 겨우 8개 공연 단체로 시작한 축제는 지난 70주년엔 3300여 공연 단체가 참가해 하루 1000편 이상 공연을 여는 세계적 축제로 성장했습니다. 티켓 판매 규모가 월드컵 수준이라고 해요. 70주년에 에든버러시 전체 인구(50만명)의 9배에 달하는 450만명의 관광객이 찾았습니다. 이런 인기로 매년 5000억원에 달하는 경제 유발 효과와 6000여 명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하니, 잘 만들어진 축제가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로열 마일(Royal Mile)]
에든버러 페스티벌 동안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곳으로, 에든버러 중심부를 통과해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1마일(1.6㎞) 길이 거리예요. 과거 왕과 귀족들만 다닐 수 있어 '로열(royal·왕, 왕족) 마일'이라고 불렸어요. 평민들은 '클로스(close)'라는 좁고 긴 골목길로 다녀야 했답니다. 클로스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브로디스(Brodie's) 클로스예요. 낮에는 목수와 시의원으로, 밤에는 강도로 살다가 처형된 윌리엄 브로디의 이름을 땄어요. 그의 이중적 캐릭터가 에든버러 출신 영국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1850~1894)에게 영감을 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