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초등학생용 값싼 플라스틱 악기? 중세시대 음유시인도 연주했대요
리코더를 불자
권재원 지음 l 출판사 창비 l 가격 1만2000원
리코더(recorder)는 참 좋은 악기예요. 구하기 쉽고 배우기 쉬울 뿐 아니라 좋은 소리가 나고 아무 데나 가지고 다니며 연주할 수 있죠. 이 책에 등장하는 꼬마들은 리코더로 온갖 즐거운 실험을 합니다. 거꾸로 매달려서 불고, 누워서 불고, 콧구멍으로 불고 물속에서 불고 풍선을 이용해서 불어요. 리코더 소리로 온 우주 외계인들을 불러 모으기도 해요. 리코더를 불면 모두가 즐겁고 흥이 납니다.
리코더는 40여 년 전 우리나라 초등학교에서 배워야 할 필수 악기로 지정됐어요. 우리 악기 피리와 비슷하게 생겨 '양피리'라는 별칭도 있답니다. 다른 악기를 연주할 줄 모르는 사람들도 대개 리코더는 불 줄 알죠. 문방구에서 파는 값싼 플라스틱 악기쯤으로 여겨져 제대로 대우를 못 받고 있긴 하지만, 역사가 오래고 훌륭한 악기예요. 신화에도 등장한답니다.
아주 오랜 옛날인 중세, 책도 텔레비전도 없던 시절에는 마을에서 마을로 다니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음유시인이 인기 있었어요. 길고 복잡한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서 불렀기 때문에 기억하기도 좋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도 좋았답니다. 음유시인들이 노래할 때 썼던 악기가 바로 리코더예요. 리코더 연주를 들을 때마다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기 때문에 '기억하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레코르다리(recordari)'에서 '리코더'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해요.
옛사람들은 리코더를 특별하게 생각했어요. 신의 악기이거나 마법을 부릴 줄 아는 악기로 여겼죠. 몸의 반은 인간, 반은 염소인 그리스의 신 '판'이 부는 악기도 리코더예요. 모험 이야기 '오디세이'에서 바다의 요정 세이렌이 선원을 유혹하고자 분 악기도 리코더고요. 그래서 1400년대 서양인들은 풍경화나 정물화에 리코더를 즐겨 그렸답니다. 리코더는 신의 노래, 마술, 최면, 사랑의 노래 등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오랜 역사를 가진 리코더는 1750년대에 하찮고 천박한 악기로 여겨져 거의 사라졌다가, 1800년대에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쉽게 접하는 플라스틱 리코더 말고도 모양이나 소리에 따라 다양한 리코더가 있어요. 흥겹게 때론 아름답게 리코더를 연주해봅시다. 즐거운 이 순간을 오래 기억하게 해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