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이야기] 직접 본 참혹한 전쟁터 실상 담아 인도주의 국제협약 이끌어냈어요

입력 : 2021.05.06 03:30

솔페리노의 회상

솔페리노 전투를 그린 그림. /대한적십자사
솔페리노 전투를 그린 그림. /대한적십자사
한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는 도덕심과 저 많은 불행한 부상자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하는 인간의 희망이 용기를 북돋아 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군가는 뭔가를 해야만 합니다.

'어버이날'인 5월 8일은 '세계 적십자의 날'이기도 합니다. 근대 인도주의(Humanitarianism)를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장 앙리 뒤낭(1828~1910)의 생일을 기념해 제정한 날이죠. 인도주의는 인종·종교·국적 등을 떠나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인류 복지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상이에요.

스위스 사람인 뒤낭은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제분공장을 경영하던 사업가였습니다. 하지만 현지 관료주의로 사업이 잘 진행되지 않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를 찾아가기로 결심합니다. 뒤낭은 이탈리아 독립 전쟁에 참전 중인 황제를 만나기 위해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지역으로 갔습니다.

당시 여러 나라로 분열되어 있었던 이탈리아에선 사르디니아 공국을 중심으로 반도를 통일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사르디니아 공국은 당시 북부 지역을 지배하던 오스트리아 제국을 몰아내기 위해 오스트리아의 경쟁국이었던 프랑스와 연합해 전쟁에 나섰습니다. 1859년 6월 24일 이탈리아 북부 솔페리노 지역에서 양측 간 무력충돌이 발생합니다. 이날 단 하루 전투로 무려 4만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뒤낭은 전투 다음 날 아침 솔페리노 인근 카스틸리오네 마을에 도착해 엄청난 사상자가 물밀듯이 밀려드는 참혹한 현장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애초 그곳을 찾은 목적은 잊고 구호 활동에 전념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비로 야전 병원을 열었으며 마을 주민들과 봉사대를 조직해 국적에 상관없이 부상자들을 돌봤습니다.

뒤낭은 알제리로 돌아온 이후 전쟁의 참상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로 결심하고 1862년 '솔페리노의 회상'이라는 책을 자비로 출판했습니다. 병사들의 비참한 모습과 그들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봉사자들의 모습 등을 실감 나게 담았습니다. 그는 또 책에서 두 가지를 제안합니다. 전쟁을 대비해 평상시 훈련된 자원봉사원으로 구성된 단체를 만들 것, 그리고 국가 간 조약을 통해 구호 단체 활동을 보장하자는 것입니다. '솔페리노의 회상'은 유럽 전역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영향으로 1863년 근대 최초의 인도주의 기관인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설립됐고, 1864년에는 전쟁 희생자를 보호하자는 국제 조약인 제네바협약이 최초로 체결됐습니다. 현재는 전 세계 192국에 적십자사가 설립됐고, 196국이 제네바협약에 가입했습니다. 그가 평생 헌신했던 인도주의라는 유산을 잘 지키기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목정하 대한적십자사 인도법연구소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