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작은 공이 큰 공 움직였다"… 美中 관계 탁구로 풀었죠

입력 : 2021.05.05 03:30

핑퐁 외교 50주년

1972년 2월 중국에서 미국 닉슨 대통령과 중국 마오쩌둥 공산당 최고 지도자가 만났어요. /게티이미지코리아
1972년 2월 중국에서 미국 닉슨 대통령과 중국 마오쩌둥 공산당 최고 지도자가 만났어요. /게티이미지코리아

지난달 24일 중국 베이징에서 미국과 중국 인사 700여명이 참여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중국은 현재 미국과 중국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50년 전 경험을 되살려 양국이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왕치산(王岐山) 중국 국가 부주석은 "과거 작은 공으로 큰 공을 움직여 미·중 관계 정상화라는 역사적 과정을 열었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작은 공은 탁구공을 뜻하고 큰 공은 지구를 뜻합니다. 이 행사는 바로 '핑퐁(pingpong·탁구) 외교' 50주년 기념식이었습니다. '핑퐁 외교'가 뭐길래 50주년 기념식까지 한 걸까요.

6·25전쟁으로 얼어붙은 미·중 관계

핑퐁 외교는 얼어붙어 있던 미국과 중국 관계를 탁구로 푼 사건을 뜻합니다. 1939년 시작한 제2차 세계대전은 1945년 미국·영국·프랑스·소련 등 연합국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이때 미국과 소련은 승전국으로 세계 무대 강자로 등극했죠.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미국과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소련은 친구가 될 수 없었고, 결국 양국을 중심으로 편이 나뉘어 세계는 대립했습니다. 이를 '냉전(Cold War)'이라고 합니다.

이 냉전 체제는 아시아 지역에도 영향을 미쳤어요. 중국에서는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에 벌어진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공산당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어요. 패배한 국민당은 대만으로 쫓겨 갔죠. 미국은 공산당이 중심인 중화인민공화국 대신 대만을 지지했습니다. 이후 한반도에서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남한은 미국을 주축으로 한 UN군 지원을 받았고, 북한은 중국 등 공산 국가 지원을 받았습니다. 냉전 대립은 한반도에서 심화됐고, 6·25전쟁에서 맞서 싸운 미국과 중국 관계도 악화일로를 걸었습니다.

스포츠로 두 나라 대화 시작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은 우연하고 조그만 사건 하나로 대화의 물꼬를 트게 됐습니다. 1971년 3월 28일부터 4월 7일까지 일본 나고야에서 제3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열렸는데요. 대회가 끝날 무렵인 4월 5일 월요일, 미국 탁구선수 코완은 연습을 마치고 앞을 지나가던 버스를 셔틀버스라 생각하고 올라탔습니다. 그런데 그 버스는 중국 선수단 버스였어요. 버스 안에는 중국 탁구 영웅 좡쩌둥(莊則棟)이 있었는데요. 중국 선수단은 미국인과 대화가 금지돼 있었지만 좡쩌둥은 코완에게 중국 명산인 황산(黃山)이 그려진 수건을 선물하며 말을 걸었고 코완 또한 미소로 답했어요.

중국 선수단 취재를 나온 기자들이 버스에서 내린 두 사람 모습을 찍었고, 다음 날 일본 신문 곳곳에 이 사진이 실리면서 엄청난 화제가 됐습니다. 코완은 기자들 질문에 "중국에 가보고 싶다"고 답했고, 이 말은 중국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를 거쳐 공산당 최고지도자였던 마오쩌둥(毛澤東)에게 전달됐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친선 탁구 대회 열었어요

1971년 4월 10일 미국 선수단은 중국 초청을 받아 중국을 방문했어요. 선수단은 저우언라이 총리와 면담을 가지고 베이징·상하이·광저우 등을 여행하며 귀빈 대접을 받았습니다. 또한 미국 선수단은 중국에서 여러 차례 탁구 경기를 펼쳤죠. 중국 선수단은 미국 선수단보다 훨씬 실력이 뛰어났지만 일부러 몇몇 경기는 미국 선수들에게 져줬다고 합니다.

당시 미국 닉슨 대통령은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면 자국 경제에 이익이 되는 동시에 가장 큰 적인 소련을 견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미국 선수단을 초청해준 것에 대한 화답을 중국에 보냈습니다. 4월 14일 20년 넘게 지속된 중국에 대한 무역 금지 조치를 해제하고 중국 화폐와 선박 수송 통제도 완화한다고 발표한 거죠.

이어 1972년 2월 닉슨 대통령이 중국 땅을 밟습니다. 닉슨은 베이징·항저우·상하이를 방문했고 마오쩌둥과 회담을 가졌어요. 두 국가의 신뢰의 상징으로 미국은 중국에 사향소(알래스카 등에 사는 양처럼 생긴 소) 한 쌍을, 중국은 미국에 자이언트 판다 한 쌍을 선물했답니다.

이렇게 어렵사리 연결된 미·중 관계는 다시 악화하고 있어요. 최근 중국이 미국을 위협할 정도로 강국 반열에 오르자 미국은 중국을 강력하게 견제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가진 첫 미·중 고위급 회담에서 미국은 중국이 국제 질서를 위협한다고 비판했고, 중국은 미국의 인권 수준이 최저라고 맞섰습니다. 반면 미국과 대만 관계는 좋아지고 있어요. 미국은 대만과 교류를 장려했고 최근 대만 외교관이 프랑스에 있는 미국 대사 공관을 방문하기도 했어요. 중국은 "미국이 대만을 이용해 미·중 관계를 파괴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반발하기도 했어요.

☞상하이 공동성명

중국을 방문한 닉슨 대통령은 상하이에서 미·중 양국이 국교 정상화를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상하이 공동성명을 발표했어요. 이 공동성명에는 '미국은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중국의 입장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어요. 이미 1971년 10월 대만은 유엔 회원국 지위를 상실하고 중국이 그 자리를 차지한 상태였는데, 여기에 쐐기를 박은 거죠. 이후 1979년 미국은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했습니다. 미·중 수교는 저우언라이 총리 표현대로 작은 탁구공 하나가 지구를 흔든 것이었답니다.

중국 선수단의 버스를 잘못 탄 미국의 탁구 선수 코완(오른쪽)이 버스에서 내려 중국 탁구 선수 좡쩌둥과 악수하는 모습입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중국 선수단의 버스를 잘못 탄 미국의 탁구 선수 코완(오른쪽)이 버스에서 내려 중국 탁구 선수 좡쩌둥과 악수하는 모습입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서민영·경기 함현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최원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