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이야기] 장난감 블록처럼 쌓고 조립한 아파트… 중동의 언덕마을에서 영감 얻었어요

입력 : 2021.05.04 03:30

해비탯67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아파트‘해비탯67’입니다. /위키피디아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아파트‘해비탯67’입니다. /위키피디아
플라스틱 블록을 쌓아 장난감 집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우리가 실제로 사는 집도 이렇게 블록쌓기 놀이처럼 만들 수 있을까요? 캐나다에서 둘째로 큰 도시 몬트리올에 가면 이런 건물이 있답니다.

이 아파트의 이름은 '해비탯 67'입니다. 해비탯(Habitat)은 '주거지'라는 뜻이고 67은 1967년에 만들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아파트라고 하면 반듯반듯한 건물이 떠오르는데요. 해비탯 67은 수많은 직육면체를 엇갈려 쌓은 모습입니다. 마치 무질서하게 상자를 쏟아놓은 모습 같기도 해요. 어떻게 이런 아파트가 탄생했을까요? 보통 아파트는 철근을 설치하고 콘크리트를 붓는 방식으로 지어요. 콘크리트 때문에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고 굳을 때까지 시간도 오래 걸리지요. 해비탯 67은 이런 통념에서 완전히 벗어났어요. 현장 바로 옆에 공장을 세우고 그곳에서 주요 건축 구조물을 미리 제작했어요. 이후 구조물을 현장으로 옮겨 크레인으로 쌓았습니다. 블록놀이처럼 건물을 차례차례 조립한 셈이지요. 콘크리트 상자 총 354개를 조립한 다음 강철로 만든 줄로 연결했습니다. 이렇게 미리 구조물을 만들고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을 '프리패브(Prefab)'라고 불러요. 요즘도 이런 방식은 실험적이라고 평가받는데요. 해비탯 67은 50여년 전에 성공적으로 실현했어요.

여러 구조물을 조립했기 때문에 각각 분리됐을 것 같지만, 이 건물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요. 획일적인 콘크리트 건물로 가득한 도시에서 주민들이 어울려 살게 한 건데요. 아래층 아파트의 지붕에는 위층 아파트가 쓰는 정원을 만드는 등 수많은 정육면체가 다양한 방식으로 쌓이며 서로 연결된 거죠. 이 아파트는 인기가 아주 많다고 해요. 많은 사람이 이 아파트 입주를 희망하며 대기하고 있답니다.

해비탯 67은 이스라엘 출신 건축가 모셰 사프디가 설계했어요. 그는 캐나다에서 건축을 전공했는데요. 어린 시절을 보냈던 중동의 언덕마을에 오밀조밀 형성된 건물에서 영감을 얻어 미래형 주거단지에 대한 논문을 썼어요. 1967년 몬트리올 엑스포(국제박람회) 주최 측은 사프디에게 논문에 쓴 주거단지를 실제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어요. 사프디는 이 건물을 실제로 구현해냈고, 해비탯 67이 몬트리올 엑스포의 귀빈 숙박 시설로 쓰이면서 큰 화제를 모았답니다.
전종현 디자인 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