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하멜의 총 똑같이 만들어 청나라 공격하려 했어요

입력 : 2021.04.29 03:30

효종의 북벌과 외국인

 /그래픽=안병현
/그래픽=안병현
문화재청 세종대왕유적관리소는 오는 6월 27일까지 온라인 기획 전시 '효종과 하멜 이야기'를 열고 있습니다. 하멜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으로 17세기에 일본으로 가던 중 표류해 조선에 도착한 인물입니다. 조선의 지리·풍속 등을 유럽에 처음 소개한 인물이기도 하지요. 조선 땅을 밟은 낯선 외국인 하멜과 조선의 17대 왕 효종은 어떤 사연이 있기에 문화재청이 기획 전시를 열었을까요?

제주도에 도착한 네덜란드 배

"이상한 배가 남쪽 해안을 표류하다가 뭍으로 왔습니다!"

1653년(효종 4년), 제주를 다스리던 관리 이원진에게 급한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배의 모습에 제주도 사람들은 눈을 휘둥그레 떴습니다. 이 배는 그해 7월 대만을 떠나 일본 나가사키로 향해 가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배 스페르베르(Sperwer)호였어요. 동인도회사는 바타비아(지금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본사를 두고 중국과 일본의 향신료와 비단·도자기 등을 유럽에 팔아 큰돈을 벌었던 회사예요. 동인도회사는 일본과 중국은 알았지만, 당시 조선은 미지의 나라였습니다. 풍랑을 만나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조선이라는 나라에 닿게 된 것이죠.

배에 탔던 선원 64명 중 36명만이 살아남았는데, 이 중에 헨드릭 하멜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 배의 문서 등을 기록하는 서기였습니다. 조선은 하멜 등 36명의 외국인 선원을 제주도에 억지로 머무르게 했어요. 제주 관아에 머물던 하멜은 조선 조정이 보낸 뜻밖의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26년 전 하멜 일행보다 먼저 조선 땅에 온 외국인 얀 야너스 벨테브레이(조선 이름 박연)였습니다.

효종의 북벌 계획에 동참한 외국인

벨테브레이 역시 네덜란드 사람이었는데요. 그는 하멜처럼 표류하다가 조선에 도착했고, 무관으로 임명돼 아예 조선에 정착했어요. 이후 조선에서 각종 무기 개발을 담당했어요. 조총을 만들고 화포를 개량했는데, 특히 1652년 서양식 최신 대포인 '홍이포' 제작을 주도했습니다.

당시 동아시아 정세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어요. 하멜 일행이 표류하기 17년 전인 1636년 조선은 청나라가 일으킨 병자호란으로 온 나라가 큰 고통에 빠졌어요. 1644년 명나라가 멸망하고 나서 청나라는 중국 전역을 지배하게 됐죠. 한편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과 전쟁을 벌였던 일본은 1609년 네덜란드와 무역을 개시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어요.

1649년 조선에서는 효종이 왕으로 즉위했어요. 효종은 어린 시절 청나라에 8년 동안 볼모로 잡혀 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볼모는 조약 이행을 담보로 강대국에 인질처럼 끌려간 약소국의 왕자나 유력한 사람을 뜻해요. 이런 치욕적인 경험이 있는 효종은 군사력을 길러 청나라를 공격하려는 '북벌'을 꾀했어요.

효종은 군사력 강화를 위해 군비를 확장했습니다. 또 무기 개발에도 신경을 많이 썼는데요. 벨테브레이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이루지 못한 북벌의 꿈

1654년 효종은 제주도에 있던 하멜 일행도 서울로 데려와 조선의 군사력 강화에 도움을 받으려고 했어요. 하멜이 타고 온 스페르베르호에는 30만냥(현재 가치 약 200억원대)에 달하는 무역품과 함께 서양식 최신 화포와 총도 있었거든요. 하멜은 원래 행선지였던 일본으로 가게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효종은 이를 거절하고 하멜을 당시 수도 수비를 담당하던 훈련도감으로 보냈어요.

1657년 훈련도감에선 하멜 일행이 가지고 온 총을 복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총은 16세기 말~17세기 초 유럽에서 완성된 최신 무기였어요. 총의 점화 장치에 부싯돌로 불꽃을 일으켜 총탄을 발사하는 방식인데, 기후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사격 속도가 빨랐기 때문에 19세기 중반까지 세계적으로 많이 사용된 총이었지요.

하지만 효종의 북벌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어요. 효종이 즉위 10년 만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지요. 만약 하멜이 조선 땅을 밟은 것을 계기로 효종이 네덜란드와 교류의 길을 텄다면 어땠을까요? 네덜란드로부터 수입을 통해 무기와 신문물을 받아들였다면 역사는 크게 바뀌었을 수 있습니다. 효종이 세상을 떠나자 무기 개발도 중지됐고, 하멜 일행은 1666년 조선을 탈출해 일본으로 떠났어요. 이후 조선의 문은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열리기까지 200년 넘게 닫히게 됐답니다.

[하멜표류기]

조선을 탈출한 하멜 일행은 일본을 거쳐 네덜란드로 돌아갔습니다. 하멜은 조선에 억류된 13년 동안의 급여를 동인도회사에 청구하기 위해 업무 보고서를 썼는데요. 이 보고서에 조선에서 겪은 일들을 상세히 기록했습니다. 이 기록은 책으로 출간돼 금세 베스트셀러가 됐어요. '하멜 표류기'로 불리는 이 책은 미지의 나라 조선을 서양에 소개한 최초의 문헌으로 영어·프랑스어·독일어로도 번역됐습니다.

하멜은 '국왕의 권력이 크고 마을을 소유한 영주가 없다'며 조선의 중앙집권제를 언급하고 '양반들은 자식이 아주 어릴 때부터 글공부를 시키며 많은 돈을 들인다'며 조선의 교육열을 소개했습니다. 기후와 건축, 종교, 장례 풍습에 대해서도 상세히 서술했습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이 책을 계기로 조선과 직접 교역하려고 했지만 일본의 반대로 실패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