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 이야기] 이탈리아 무솔리니 파시즘 독재 시대… 시간과 고독, 인간의 실존 고민했어요

입력 : 2021.04.27 03:30

타타르인의 사막

영국에서 출판된 ‘타타르인의 사막’ 표지. /위키피디아
영국에서 출판된 ‘타타르인의 사막’ 표지. /위키피디아

"아, 얼마나 더 먼 길을 더 가야 하는가. 앞으로 몇 시간이나 걸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데다 그의 말은 이미 지쳐 있었다. 넋이 나간 드로고는 요새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사람이 닿을 수 없으리만치 저토록 세상과 동떨어진 저 고독한 성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타타르인의 사막'은 이탈리아 작가 디노 부차티가 1940년 발표한 작품입니다. 디노 부차티는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작가입니다. '시간과 고독을 소재로 인간 실존의 문제를 탐구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지요. 디노 부차티가 살았던 시대에 이탈리아는 무솔리니의 파시즘 정권이 권력을 장악했는데, 이에 대항하는 반(反)파시즘 운동이 거셌습니다. 파시즘은 자유주의를 부정하고 폭력적인 방법에 의한 독재를 주장하면서 지배자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정치운동입니다. 디노 부차티는 '타타르인의 사막'에서 당시 사회적 혼란과 흔들리는 인간의 모습을 잘 묘사했습니다.

주인공 조반니 드로고는 군인입니다. 그는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국경에 있는 바스티아니 요새로 배치됐어요. 바스티아니 요새는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쇠락할 대로 쇠락한 곳이었어요. 드로고는 다른 곳으로 보내달라고 사령관에게 건의했지만, 앞으로 경력을 위해 넉 달만 견뎌보라는 충고를 듣고 그 말에 따르기로 했어요. 일단 참기로 한 드로고는 요새 생활에 하나둘 적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요새에 있는 모든 군인은 넓은 평원으로 적이 곧 쳐들어올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어요. 평화로운 시대였고 국경 인근에는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적에 대비한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지요. 요새의 군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가상의 적을 '타타르인'이라고 불렀습니다. 타타르인은 전설 속에 나오는 신비에 쌓인 북쪽의 이민족이었어요. 요새 너머 넓은 평원 끝에 보이는 '작고 검은 점'을 보고 타타르인이 언젠가 쳐들어올 것이라 생각했지요. 이 작고 검은 점은 실체를 알 수 없는 불분명하고 불확실한 것들이었지만요.

이들은 왜 가상의 적을 만들었을까요? 바로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해서였어요. 언젠가 쳐들어올 수도 있는 적은 '군인이 필요한 이유' '군인들의 포부를 실현할 수 있는 존재' '자신들을 영웅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존재' 등이었기 때문이지요.

처음에는 이런 모습을 이상하게 여겼던 드로고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에게 동화됩니다. 그도 오지 않을 적을 기다리면서 천천히 늙고 병들어 갑니다. 드로고는 이 과정에서 시간과 고독, 삶과 죽음, 인간 실존의 문제를 고민해요. 타타르인의 사막은 자신 앞에 닥친 삶과 누구나 맞이할 수밖에 없는 죽음에 의연히 맞선 한 인간의 모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랍니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