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지도, 사용 물품 내역, 품삯 등 기록… 수원 화성은 '의궤' 보고 복원했어요
의궤: 조선왕실문화의 위대한 기록
김종렬 지음 l 권아라 그림
출판사 사계절 l 가격 1만2500원
이달 29일부터 '창덕궁 달빛기행' 행사가 시작됩니다. 창덕궁 야경을 둘러보며 창덕궁에 얽힌 옛이야기를 듣고 고궁의 운치를 느낄 수 있는 행사인데요. 조선 시대 궁궐인 창덕궁은 나라에 큰 재난이 닥쳐 공식 궁궐을 사용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 지은 건물이에요. 창덕궁에서는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등 여러 공식 행사가 열렸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나라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꼼꼼하게 기록을 남겼는데요. 후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행사의 순서와 내용 등을 글과 그림으로 옮겼어요. 이 기록을 '의궤'라고 합니다. 의궤는 '의식'과 규범 또는 본보기를 뜻하는 '궤범'을 합한 말입니다. 풀어쓰면 '의례 행사에 본보기가 되는 규범'이죠. 이 책은 의궤를 통해 조선왕조의 주요 행사를 알기 쉽게 설명해줘요.
경기도 수원에 있는 화성은 6·25 한국전쟁을 겪으며 훼손됐어요. 화성을 복원할 때 참고한 기록이 바로 '화성성역의궤'입니다. 화성성역의궤는 수원 화성 건축에 대한 모든 것을 기록해놓은 의궤입니다. 정약용은 정조의 명을 받아 중국과 일본의 성을 연구하고 화성을 설계했어요. 이 기록에는 화성의 전체 모습을 담은 화성전도뿐 아니라 성을 쌓는 데 참여한 사람들, 사용된 각종 물품 내역, 일한 사람들의 품삯까지 꼼꼼하게 적혀 있어요. 화성을 지을 때 과학적 원리를 이용한 거중기 같은 새로운 기계를 사용했다는 것도 화성성역의궤를 보고 알 수 있었답니다. 무엇보다 이 기록 덕분에 화성을 정확하게 복원할 수 있었어요. 수원 화성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는데요. 당시 유네스코 조사관들은 화성성역의궤의 방대하면서도 정확하고 상세한 기록에 감탄했다고 합니다.
조선 왕들의 삶도 의궤에 모두 기록돼 있습니다. 왕자가 태어나면 '태실의궤'를 만들어 그의 삶을 기록해요. 왕자가 왕위를 이을 세자가 되면 '세자책례도감의궤'를, 왕이 되고 혼례를 치르면 '가례도감의궤'를 작성했습니다. 왕의 무덤을 만드는 과정도 적었는데요. 이를 '산릉도감의궤'라고 합니다. 왕이 치른 행사뿐 아니라 왕의 나들이까지 모두 의궤로 만들었어요.
의궤에는 글만 있는 게 아니에요. 그림도 수록돼 있는데요. 의궤에 남겨진 그림은 당시 풍경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달해주는 예술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임진왜란으로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의궤들은 대부분 불타버렸어요. 지금 우리가 살펴볼 수 있는 의궤는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