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바다에서 45전 무패… 원래는 육군 출신이에요
입력 : 2021.04.22 03:30
이순신 탄생 476주년
- ▲ /그래픽=안병현
서울 시내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어요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곳은 어디일까요?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현충사가 충남 아산에 있어 장군의 출생지를 아산으로 잘못 아는 사람이 많아요. 이순신 장군은 지금의 서울 중구 인현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 지하철 을지로3가역 근처에 장군의 생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지금도 그곳에 가면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라는 비석이 있지요. 바로 근처에 '충무로'가 있는데요. 이 지명도 충무공에서 따온 거예요.
'이순신 장군의 할아버지가 1519년 급진 개혁파가 제거된 기묘사화 때 역적으로 몰려 가세가 기울었고 가난하게 자랐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드라마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가 삯바느질하는 등 가난했다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장군의 할아버지 이백록은 기묘사화에 연루되긴 했지만, 이후에도 성균관 유생 대표로 살아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조선시대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기묘사화 이후 훨씬 지난 시점에 이백록의 기록이 등장합니다. 기묘사화 때 죽음을 당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또 이순신 장군의 아버지 이정은 오래도록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지만, 이것도 재산이 적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해요. 이민웅 해군사관학교 교수는 "이순신은 명망 있는 사대부 가문에서 나름대로 유복하게 자라면서 조선 성리학에 기반을 둔 당대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엘리트로 성장했다"고 말했어요.
늘 '붓을 던질 뜻'을 품었어요
이순신 장군은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을 이끄는 골목대장이었어요. "영특하고 남의 구속을 받지 않았으며, 여러 아이와 함께 전쟁놀이를 했는데 아이들이 대장으로 떠받들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요. 어릴 때부터 장군이 될 자질을 보여줬다는 것이죠. 어린 이순신은 어른들에게도 주눅이 들지 않고 당당했기 때문에 전쟁놀이를 할 때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진짜 전쟁터인 것처럼 피해 갔다고 합니다. 근처 참외밭 주인은 어린 이순신의 기개에 탄복해 지나갈 때마다 참외를 내줬다고 해요.
이순신 장군과 절친한 사이였으며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유성룡은 '징비록'에 이순신 장군에 대한 기록을 남겼는데요. "순신의 사람됨은 말과 웃음이 적고 용모가 단아하며 몸을 닦고 언행을 삼가는 선비와 같았으나, 그의 속에는 담기(겁이 없고 용감한 기운)가 있었다"고 썼어요.
서른두 살 때 '취준생'을 벗어났어요
이순신 장군은 어렸을 때는 두 형과 함께 문과 과거 시험을 준비했어요. 유교의 주요 경전인 '주역'과 중국의 역사책 '통감강목'을 통달할 정도로 글공부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장군이 되는 꿈을 꾸고 있었어요.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록한 '이충무공전서'에는 '항상 붓을 던질 뜻을 품곤 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순신은 스무 살 무렵 상주 방씨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장인인 방진은 활을 잘 쏘는 사람이었는데 사위의 자질을 알아보고 이순신이 문과에서 무과로 바꾸게 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28세 때 처음 무과에 응시했는데 떨어지고 말았어요. 달리던 말에서 떨어져 왼쪽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거든요. 이순신은 32세 때 마침내 무과에 합격해요. 성적은 합격자 29명 중 12등이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32세라는 늦은 나이까지 '취준생(취업준비생)' 생활을 한 건데요. 당시 합격자 평균 나이가 34세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때 기준으로는 늦은 편이 아니었답니다.
이순신 장군은 조선 수군을 이끌고 바다에서 대승을 거둔 것으로 유명한데요. 젊은 시절 이순신은 함경도, 충청도, 북방 국경 지대 등 육군 무관으로 근무했어요. 전국 곳곳에서 쌓은 실전 경험이 훗날 임진왜란에서 빛을 발했답니다.
[일본과 싸워 한 번도 지지 않았어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일본군을 상대로 '23전 23승'을 거뒀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45전 40승 5무승부'였다고 말하기도 해요. 어떻게 된 걸까요? 이순신 연구가인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은 "23전이라는 것은 큰 전투 위주로 집계한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는 40여 차례 해전 중 40번을 승리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어요. 무승부는 일본군이 맞서 싸우지 않아 승패가 가려지지 않은 것이라고 해요. 어떻게 보더라도 이순신 장군은 일본군에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대표적인 전투로는 첫 승리를 거둔 옥포해전, 거북선이 처음 출전했던 사천해전, 일본 수군을 크게 무찌른 한산도대첩, 일본군의 한양 북상을 막은 명량해전,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