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명화 돋보기] 봄 소식 전하는 제피로스와 페르세포네 그렸어요
입력 : 2021.04.19 03:30
봄을 표현한 작품들
- ▲ ①이탈리아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봄. ②영국 화가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가 그린‘프로세르피나’. ③이탈리아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가 그린‘봄’. /위키피디아
지하세계의 여왕과 봄
먼저 19세기 중반에 영국에서 활약했던 화가 단테이 로세티(1828~1882)가 그린 '프로세르피나'<그림2>입니다. 초록색 옷을 입은 이 여인은 지하세계의 여왕입니다. '프로세르피나'보다 '페르세포네'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사람이 많을 텐데요. 로마식 이름인 프로세르피나를 그리스어로 하면 페르세포네예요. 로세티의 그림 속에서 페르세포네는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데요. 뭔가 후회한다는 듯 우리에게 과일을 하나 슬며시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이 과일은 석류랍니다. 페르세포네는 석류 때문에 지하에 갇혀 살게 됐지요.
어느 날 아름다운 페르세포네에게 한눈에 반한 지하세계의 왕 하데스는 싫다는 그녀를 억지로 지하세계로 끌고 갔습니다. 페르세포네의 어머니는 딸을 데려오기 위해 제우스신을 찾아가 도움을 구했어요. 제우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도와주겠소. 하지만 만일 딸이 무엇 하나라도 지하세계의 음식을 먹었다면 곤란하오. 지하세계의 음식을 먹은 자는 그곳 사람이라 누구의 힘으로도 빼낼 수 없기 때문이오." 안타깝게도 페르세포네는 아무것도 모른 채 석류를 한입 베어 먹은 상태였어요.
그래도 어머니의 간곡한 소원에 힘입어 다행히 1년 중 몇 달은 땅 위에서 살 수 있게 됐어요. 페르세포네는 씨앗이 자라나 열매를 맺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페르세포네가 땅 위로 올라오면 여기저기 잎이 나고 꽃이 피어났어요. 봄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녀는 다시 지하세계로 돌아와야만 했어요. 페르세포네가 지하세계로 가버리면 세상의 모든 나무가 잎을 떨어뜨리고 말라붙기 시작했어요.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겨울이 되는 거죠.
봄을 가져다주는 바람
다음은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했던 이탈리아의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의 '봄'<그림1>입니다. 이 그림도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린 건데요. 가운데에는 사랑과 아름다움, 풍요의 여신 비너스가 서 있고 그 옆으로는 세 여인이 기쁨의 춤을 추고 있어요. 우아함의 축복을 주는 여신들인데요. 봄에는 아름답고 우아한 여신들이 총동원된다는 걸 나타낸 거예요. 그림 위쪽에는 비너스의 아들이자 사랑의 신 큐피드가 눈을 가리고 마구 사랑의 화살을 날리고 있어요. 맨 왼쪽에는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전령사 헤르메스가 공기의 따스한 기운을 받아 땅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림 오른쪽에는 봄바람과 꽃의 관계도 표현돼 있어요. 맨 오른쪽 사람은 '서풍의 신' 제피로스입니다. 제피로스는 입을 가득 부풀려 바람을 불어주고 있어요. 그가 흰 옷을 입은 여자를 붙잡아 바람을 불어주자 그 여자의 숨결이 꽃이 되어 입술에서 꽃이 피어나오고 있어요. 이 여인은 꽃의 여신 플로라입니다. 플로라는 원래 축복받은 자들의 섬에 살던 클로리스라는 이름의 요정이었어요. 그녀는 "내 이름은 클로리스, 이제는 플로라랍니다. 길을 가는데 제피로스가 날 쫓아왔어요. 어찌나 나른하던지 몸이 다 녹아내리는 것 같았죠"라고 말했어요. 제피로스가 흰 눈처럼 창백한 여인이었던 클로리스를 바람을 불어 화려한 꽃의 여신 플로라로 만들어준 겁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서풍을 봄을 가져다주는 희망적 의미로 해석한다고 해요.
봄꽃과 풀로 그린 남자
마지막 작품은 이탈리아의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가 그린 '봄'<그림3>입니다. 젊은 남자의 옷과 얼굴, 머리까지 온몸이 꽃과 풀로 이뤄져 있습니다. 모두 봄에 피는 식물들인데요. 아르침볼도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내용을 담지는 않았지만, 마찬가지로 봄을 사람에 빗대어 표현한 거예요. 이렇게 어떤 대상을 직접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물 등을 이용해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알레고리'라고 합니다. 아르침볼도는 알레고리적 표현으로 유명한 화가인데요. 그는 사계절을 각 계절에 맞는 식물들을 이용해 사람의 형상으로 그려냈어요. 직업과 관련된 사물을 이용해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답니다.
[라파엘전(前)파]
프로세르피나를 그린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가 속한 예술가 그룹입니다. 이 단체는 19세기 영국에서 등장했는데요. 이들은 14~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 화가 라파엘로의 미술을 비판하고 라파엘로 이전의 미술로 돌아가자고 주장했어요. 그래서 라파엘전(前)파라고 불렸지요. 라파엘은 이탈리아 사람인 라파엘로를 영어식으로 부른 이름입니다.
19세기 당시 영국의 왕립미술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라파엘로·미켈란젤로 등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대표 화가의 그리기 방식을 따라 하게 했어요. 로세티, 윌리엄 홀먼 헌트, 존 에버렛 밀레이 등 스무 살 전후의 젊은 왕립미술학교 초년생들은 이런 미술교육에 불만을 품었어요. 이들은 르네상스 시대 거장을 모방하는 예술이 아니라 자연을 관찰하고 세부 묘사에 충실했던 르네상스 이전 시기 예술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시대에 어울리고 영국인다운 분위기의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던 것이죠. 라파엘전파는 당시 변화 없는 영국의 미술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