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청소년 늦잠 자는 이유… 성인보다 '생체시계' 2시간 늦어

입력 : 2021.04.13 03:30

청소년과 잠

 /그래픽=유재일
/그래픽=유재일
새 학기가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등교 인원을 조절하면서 매일 학교에 가지 않는 학생이 많아요. 그렇다 보니 원격 수업을 하는 날이면 전날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고 놀다가 아침에 늦잠을 자는 학생이 많다고 해요. 그런데 평소에도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청소년이 많이 있지요. 일부러 늦잠 자는 게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늦잠을 잘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답니다. 왜 그런지 알아볼까요?

우리 몸 안에 시계가 있어요

우리의 몸에는 지구 자전에 맞춰 일정한 생체 리듬을 갖게 하는 세포가 있어요. 하루를 기준으로 수면, 호르몬, 심박수 등 생체 리듬이 시간에 따라 주기적으로 변하는 거예요. 이를 시계에 비유해 '생체시계'라고 해요. 우리 몸의 모든 장기에 이런 생체시계가 있는데요. 뇌에 있는 중앙 생체시계가 각각의 생체시계를 조절한답니다.

보통 어린아이의 생체시계는 성인보다 시간이 약간 빠르게 맞춰져 있어요. 그래서 아이들은 대체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요. 그런데 사춘기가 되면 생체시계가 급격히 늦춰져 성인보다 약 두 시간이나 늦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신경과 매슈 워커(Matthew Walker) 교수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청소년은 잠에 들게 하는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성인보다 2시간 정도 늦게 분비된다"고 발표했지요.

성인은 멜라토닌이 저녁 8시쯤 분비되기 시작해 10시쯤 되면 갑자기 많은 양을 내뿜으면서 곧 잠잘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줘요. 새벽 2~3시쯤에는 분비되는 양이 가장 많아 깊은 잠에 빠져들게 하죠. 하지만 청소년기에는 멜라토닌 분비 시점이 2시간 늦어지기 때문에 밤 11시쯤에는 잠이 안 와 말똥말똥 깨어 있게 되는 거지요. 어른들이 활기를 되찾는 오전 7시쯤에는 아직 비몽사몽이죠. 워커 교수는 "청소년 자녀에게 밤 10시에 자라는 건 남편(또는 아내)에게 8시에 자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해요. 바꿔 말하면 청소년 자녀에게 오전 6시에 일어나라는 건 어른에게 새벽 4시에 일어나라는 말과 같은 셈이죠.

그런데 청소년기에 생체시계가 왜 2시간 늦어질까요? 진화학자들은 "인류의 진화 방향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해요. 청소년기 이전에는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일찍 잠에 빠져들지만 청소년기가 되면 부모가 잠든 이후에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독립을 준비한다는 것이죠.

잠을 못 자면 뇌에 악영향 미쳐요

그러므로 청소년기에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늦잠 자는 아이를 깨우면 아이들은 충분한 수면을 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수면이 부족하면 뇌 발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청소년기에는 생후 10여년간 급격하게 뇌가 성장하면서 뇌에 신경세포와 이들을 연결하는 시냅스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요. 깊은 잠을 자는 동안 사용하지 않거나 효율성이 떨어지는 세포와 시냅스를 정리해 구조를 단순화하고 신경 회로의 기능을 정교하게 만들어요. 제멋대로 자란 나무를 가지치기해 정리하는 것처럼요. 청소년기에 깊은 잠을 자지 못하면 이런 과정이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전문가들은 청소년기 수면 부족이 심할 경우 시냅스 가지치기가 잘 일어나지 않아 정신분열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해요.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특히 청소년에게 수면은 정말 중요해요. 뇌 발달뿐 아니라 자는 동안 성장호르몬도 나오고 손상된 세포가 다시 만들어지는 등 많은 일이 몸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이죠.

늦잠 자도록 등교를 늦추자는 주장도 있어요

한국 청소년의 평균 수면 시간은 약 7시간 18분이라고 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8시간 22분보다 약 한 시간 부족한 거예요. 미국의 피츠버그대 연구팀은 수면 시간이 6시간 이하면 생체 조직이 손상되고 이에 대한 방어적 반응으로 염증이 생겨 질병에 걸리기 쉽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어요. 국내 연구에서도 7시간 이하로 자는 청소년은 더 많이 자는 청소년보다 우울한 감정이 1.4배 높다고 발표했죠. 수면이 부족하면 비만 위험도가 2배 이상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답니다.

이렇다 보니 청소년들의 생체시계에 맞게 아침에 늦게 일어날 수 있도록 등교 시간을 늦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소아과학회에 따르면 저녁에 일찍 재우는 것보다는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게 청소년들에게 더 좋다고 합니다. 실제로 미국 미네소타주의 일부 고등학교에서는 등교 시간을 한두 시간 늦췄더니 수업 시간에 조는 비율도 크게 줄고, 학생의 40%가 학업 성취도와 성적이 향상됐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14년 경기도교육청이 9시 등교를 추진했어요. 일찍 등교하는 것보다 등교 시간을 늦추면 학업성취도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근거였어요. 하지만 학부모들은 학습 시간이 줄어든다고 반대했어요. 그래서 등교 시간을 늦춘 학교가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본 청소년이 아침잠을 더 많이 자요]

우리나라와 일본은 같은 시간대를 사용합니다. 우리나라 시간은 일본 시간대인 동경 135도에 맞춰져 있기 때문인데요. 동경 135도는 지구상의 위치를 나타내는 좌표인 경도를 기준선인 본초자오선으로부터 동쪽으로 135도만큼 떨어져 있다는 뜻이에요. 15도만큼 이동할 때마다 영국 런던을 기준으로 1시간씩 늘어납니다.

우리나라 학교의 등교 시간이 오전 8시라고 가정해볼게요. 그런데 학생들의 몸이 느끼기에는 오전 8시가 아니라 그보다 빠른 오전 7시 30분이에요. 우리나라는 동경 125도와 130도 사이에 있어 실제 시간은 30분 정도 더 빠르기 때문이죠. 일본과 우리나라에 사는 두 학생이 같은 시간에 자고 같은 시간에 일어난다면 두 사람의 수면 시간은 같습니다. 하지만 아침잠은 일본 학생이 30분 더 많이 자는 것이지요.

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최원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