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이야기] 개미·백조·달걀 모양 의자… 시대를 앞선 북유럽 디자인의 상징

입력 : 2021.04.07 03:30

아르네 야콥센

야콥센이 디자인한 백조를 닮은 스완 체어(왼쪽부터), 개미를 닮은 앤트 체어, 달걀을 닮은 에그체어 입니다. /위키피디아
야콥센이 디자인한 백조를 닮은 스완 체어(왼쪽부터), 개미를 닮은 앤트 체어, 달걀을 닮은 에그체어 입니다. /위키피디아
올해는 덴마크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 아르네 야콥센이 세상을 떠난 지 50주년 되는 해입니다. 야콥센은 북유럽 디자인의 상징과 같은 인물인데요. 그는 건축과 디자인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1902년 코펜하겐에서 태어난 야콥센은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건축을 공부했습니다. 그는 1929년 '미래의 집'이라는 콘셉트 건물을 선보였는데요. 유리와 콘크리트로 소라 껍데기처럼 빙빙 비틀려 돌아간 모양으로 집을 만들고 자동차와 선박, 헬리콥터를 위한 공간까지 마련했어요. 덴마크에 모더니즘 건축을 예고한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죠. 모더니즘은 장식을 줄이고 기능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근대적인 경향을 뜻해요.

야콥센의 꿈은 명확했습니다. 바로 '토털 디자인'입니다. 건축물뿐 아니라 인테리어, 그곳에 들어가는 각종 물건 등 모든 부분을 디자인하는 거예요. 그는 덴마크의 유명 휴양지인 '벨레부에 해수욕장'을 통째로 디자인했어요. 구조대 타워, 매점, 탈의실, 텐트, 표, 직원 유니폼 등 해수욕장에 관련된 모든 것을요. 파란 줄무늬의 독특한 구조대 타워는 이제 해수욕장의 상징이 됐죠. 또 다른 대표적인 예는 코펜하겐의 'SAS 로열 호텔'입니다. 이 호텔은 1960년 당시 덴마크 최초로 지어진 초고층 빌딩이었는데요. 야콥센은 건물은 물론이고 내부 로비와 그곳에 놓는 의자들, 레스토랑과 식기 등 호텔 모든 부분을 디자인했어요. 북유럽 가구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달걀을 닮은 '에그 체어', 백조를 닮은 '스완 체어'가 이때 탄생했습니다. 이 호텔 606호는 1960년대 그가 꾸민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아직도 손님들을 받고 있답니다. 옥스퍼드대 세인트 캐서린 칼리지도 야콥센 작품이에요. 그는 각종 기물은 물론이고 정원 연못에 사는 물고기 종류까지 골랐다고 해요.

야콥센은 시대를 앞선 현대적 의자를 선보인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1952년 위아래는 넓은 원형으로 두고 중간 허리 부분은 잘록하게 설계한 나무판을 구부려 의자를 만들었어요. 개미를 닮은 모습에 '앤트 체어'로 불린 이 의자는 지금까지 500만개가 넘게 팔렸다고 해요. 1955년 뒷모습이 숫자 7을 닮은 '시리즈 7 체어'는 1000만개가 넘게 팔렸어요. 그가 만든 가볍고 단순한 의자가 인기를 얻은 이후 덴마크 가구 산업은 완전히 바뀌었죠.

야콥센의 디자인은 시대를 초월했다는 평가를 받아요. 그가 SAS 로열 호텔 레스토랑을 위해 만든 수저, 포크 등은 1968년 우주를 배경으로 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라는 영화에서 우주인이 사용한 소품으로 등장했어요. 외계인과 지구를 지키는 정예요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맨 인 블랙'에도 야콥센이 디자인한 가구가 나와요. 인간과 외계인이 공존하는 비밀 본부에 있는 의자가 에그 체어와 스완 체어랍니다.
전종현 디자인 건축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