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세상을 바꾼 사소한 역사] 고려 때 서해 태안군에 굴포운하 건설… 500년 넘게 공사했지만 실패했어요
입력 : 2021.04.07 03:30
운하
예부터 강이나 바다는 물건을 대량으로 옮길 때 이용하는 중요한 경로였습니다. 사람들은 바다나 강이 자연적으로 흐르는 물길을 따라가는 것보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물길을 만들면 운송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땅을 파서 원하는 경로로 물이 흐르게 한 인공 수로가 바로 운하입니다.
운하에 대한 기록은 기원전 4000년쯤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운하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기원전 2000년쯤에는 나일강 유역에 '파라오의 뱃길'이라는 이름의 운하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나와요. 파라오의 뱃길은 나일강에서 홍해로 가는 물길을 뚫은 운하였죠.
중국 수나라 양제는 통제거(通濟渠)와 영제거(永濟渠)라는 운하를 건설했어요. 통제거는 중국 남동 지역 물자를 당시 수도로 운반하는 물길이었어요. 영제거는 통제거와 함께 남북 교통의 주요 수로였어요. 군사용, 물류 운송용 대운하였는데요. 길이가 2000㎞에 달했다고 해요. 막대한 공사비로 수 왕조 몰락의 계기가 된 이 운하들은 이후 당나라, 송나라 등 중국 왕조의 원활한 물자 유통에 기여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 삼남 지방의 쌀을 서울로 운송할 때 물길을 이용했어요. 하지만 서해안의 물살이 빨라 물자를 실은 배가 자주 난파됐어요. 또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한 것도 문제였죠.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자 고려 인종은 서해 태안군을 가로지르는 굴포 운하를 건설하기로 해요. 당시 강한 화강암반을 뚫고 들어갈 기술력이 부족해 번번이 실패했어요. 조선시대까지 약 500년이 넘게 공사를 했지만, 전체 7㎞ 구간 중 4㎞만 운하를 내고 나머지 구간은 공사에 실패했어요. 굴포 운하는 지금도 유적으로 남아있어요.
19세기 말~20세기 초 운하가 전 세계적으로 건설됐어요. 산업혁명으로 기술이 발달하고 세계 교역량이 증가했기 때문이죠. 수에즈 운하, 파나마 운하 등 현재 국제 운하로 활용되며 어마어마한 물동량을 자랑하는 대운하들이 이때 만들어졌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