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무대 위의 인문학] 편견 버리고 다름 인정한 두 마녀의 우정을 그렸어요
입력 : 2021.04.05 03:30
뮤지컬 위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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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위키드’의 한 장면입니다. 위키드는 오는 5월 2일까지 국내에서 공연할 예정이에요. /에스엔코
5년 만에 국내 공연을 시작한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위키드' 1막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초록 마녀가 빗자루를 타고 공중에 날아오르며 부르는 노래예요. 이 초록 마녀는 온몸이 온통 녹색인 피부 때문에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는데요. 하지만 그녀는 씩씩하게 '세상의 편견에 맞서 싸우겠다'고 다짐해요.
뮤지컬 위키드는 두 권의 원작 소설에서 탄생했어요. 1900년에 발간된 라이먼 프랭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와 이를 기발한 상상력으로 뒤집은 그레고리 매과이어의 1995년 소설 '사악한 서쪽 마녀의 생애'라는 책입니다. 오즈의 마법사는 발간된 지 120년이나 흘렀지만, 영화와 뮤지컬로 만들어지며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뮤지컬 위키드는 우리가 알고 있었던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교훈도 주는 작품이죠.
상상의 나라로 떠나는 모험
오즈의 마법사 소설을 읽지 않았더라도 미국 캔자스에 살던 '도로시'가 강아지 '토토'와 함께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오즈라는 마술 나라에 도착하게 된다는 줄거리만큼은 친숙할 거예요. 오즈(OZ)라는 나라의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작가 바움은 자신의 서류를 알파벳의 첫 글자를 따서 정리해 두었는데, 첫째 선반이 A부터 N까지고 둘째 칸이 O부터 Z인 것을 보고 'OZ'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해요. 상상의 나라에 딱 어울리는 재미있는 이름이죠.
도로시는 두뇌가 없는 허수아비와 심장이 없는 양철나무꾼, 그리고 겁쟁이 사자와 함께 모험을 떠나는데요. 이들 모두 자신들의 소원을 이루어줄 오즈의 마법사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나죠. 이들 외에 중요한 조연이 또 있습니다. 바로 네 마녀예요. 북쪽과 남쪽 마녀는 착하고 정의롭지만, 동쪽과 서쪽 마녀는 나쁜 마녀로 등장해요. 북쪽 마녀가 도로시의 행운을 빌며 이마에 남겨준 키스 자국은 도로시를 위험에서 지켜주고, 남쪽 마녀는 도로시가 캔자스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죠. 하지만 서쪽 마녀는 도로시와 친구들을 붙잡아 두고 괴롭혀요.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오즈의 마법사
뮤지컬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조연에 그친 이 서쪽 마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서쪽 마녀의 이름은 '엘파바'랍니다. 원작 오즈의 마법사를 쓴 작가 라이먼 프랭크 바움의 이름 앞글자 L, F, Ba에서 따왔죠. 뮤지컬에 등장하는 인물은 소설과 다르게 설정됐어요. 도로시와 친구들의 소원을 들어줄 오즈의 마법사는 사실 독재자이자 폭군이고, 우리가 나쁜 마녀로 알고 있던 서쪽 마녀는 마법사의 독재에 대항하며 약자의 편에 선 정의로운 영웅이랍니다. 착한 마녀인 줄 알았던 북쪽 마녀 글린다는 거울만 들여다보는 공주병 환자로 등장하지요.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요. 남들과 다르게 초록색 피부를 갖고 태어난 엘파바는 저주받은 존재로 여겨졌어요. 그래서 부모로부터도 사랑을 받지 못했어요. 나중에 학교를 다니면서는 친구들에게 따돌림까지 받아요.
이런 엘파바는 화려한 외모에 언제나 주목받기 좋아하는 북쪽 마녀 글린다와 친구가 됩니다. 처음에는 두 사람 모두 서로 싫어하면서 적대감을 표현해요. 엘파바는 글린다를 '금발'이라고 싫어했고 글린다는 엘파바를 '이상하고 특이한 애'로 표현해요. 하지만 두 사람은 점점 서로 이해하면서 우정을 쌓아가요. 위키드는 이들의 우정을 통해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세상을 더욱 넓고 깊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요. 엘파바가 뮤지컬 1막 마지막에 "하늘 높이 날개를 펼 거야"라고 한 것 역시 현실 속에 있는 편견과 차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작품의 메시지를 드러내고 있죠. 또 우리가 사악하다고 믿었던 서쪽 마녀가 악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통해 우리가 단정적으로 선(善) 또는 악(惡)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사실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줘요.
'라이온 킹'과 어깨 견주는 뮤지컬
원작인 오즈의 마법사를 쓴 라이먼 프랭크 바움은 유명한 소설가는 아니었어요. 그는 편집자, 신문 기자, 배우, 외판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작가의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아내의 격려로 좌절하지 않고 매일 밤 자신의 네 아이를 위해 글을 써 내려갔죠. 그리고 마침내 오즈의 마법사로 큰 성공을 거뒀어요. 그는 오즈의 마법사의 후속편을 쓸 생각이 없었지만, 팬들의 열화 같은 요청 때문에 1900년부터 그가 세상을 떠난 1919년까지 총 14편의 '오즈' 시리즈를 발표했어요.
오즈의 마법사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감독 빅터 플레밍이 1939년 영화로 만들면서 전 세계인에게 널리 알려졌어요.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 있어요. 이후 영화, 만화, 뮤지컬 등으로 재탄생해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요. 뮤지컬 위키드는 '라이온 킹', '오페라의 유령'과 함께 미국 브로드웨이 매출 10억달러(약 1조1300억원)를 돌파했답니다.
[브로드웨이]
미국 뉴욕 맨해튼 도심을 가로지르는 거리의 이름입니다. 하지만 지명보다는 미국 연극·뮤지컬 분야를 뜻하는 말로 더 자주 쓰입니다. 브로드웨이는 1900년 빅토리아 극장 설립을 시작으로 19세기 중반부터 연극과 뮤지컬을 대표하는 장소가 됐습니다. 이곳에 자리 잡은 40여 극장에 하루 2만여 관객이 모인다고 합니다. 위키드, 라이온 킹, 오페라의 유령 같은 유명한 작품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던 작품이지요.
'오프(off)브로드웨이' '오프오프브로드웨이'라는 단어도 있는데요.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는 작품의 상업성에 반발해 생겨난 브로드웨이 외곽의 소극장 거리를 뜻해요. 이들 극장에서는 예술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이 주로 무대에 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