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조선시대 '서울시장'은 수사·재판·시체 검사까지 했어요

입력 : 2021.04.01 03:30 | 수정 : 2021.06.25 11:15

한성판윤

/그래픽=안병현
/그래픽=안병현

서울시장을 뽑는 선거가 오는 7일 실시됩니다. 서울시장은 인구 1000만명에 가까운 수도 서울의 최고 행정 책임자이지요. 그만큼 권한이 크고 책임도 막중하답니다. 조선시대에는 어땠을까요? 당시의 서울시장은 '한성판윤'으로 불렸어요. 조선의 도읍지인 한성을 관할하는 관청이 한성부(府)였는데, 이곳의 최고 책임자가 한성판윤이었지요. 지금의 서울시장과 한성판윤은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을까요?

임금에게 중대사를 직접 보고했어요

한성판윤은 정2품에 해당하는 관직이었어요. 종2품이었던 다른 지역 관찰사(지금의 도지사)보다 더 높았어요. 지금으로 따지면 한성판윤이 장관급, 다른 관찰사는 차관급이라고 볼 수 있어요. 지금도 차관급 대우를 받는 다른 광역자치단체장들과는 달리 서울시장만 장관급 대우를 받는다는 점에서 비슷하죠.

한성판윤은 임금에게 중대사를 직접 보고하며 국정 운영에 참여했어요. 수도를 다스릴 뿐 아니라 궁궐을 호위하고 중앙 정치 무대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중대한 자리였습니다. 중종 때 대사헌 유세침은 한성판윤 안윤덕을 다른 자리로 바꾸라는 상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윤덕은 가볍고 마음가짐이 바르지 않은데, 판윤은 중대사를 총괄하는 자리로서 그 임무가 지극히 중대하니 그가 함부로 이 지위에 있을 수 없습니다."

한성판윤의 주요 업무는 가옥의 건축과 철거, 호적 관리, 소방 업무, 하수 관리 등이었다고 해요. 오늘날 서울시장의 역할과 비슷했어요. 굶주리는 백성을 구제하는 일은 다른 관청이 맡았는데 임진왜란 도중에 이 업무도 한성판윤이 맡았다고 해요. 1593년 한성판윤 이헌국은 "서울 구호소에 나와 음식을 먹는 굶주린 백성들이 1만명이며 지쳐서 집에 있는 자는 그 수를 알 수 없고 날마다 죽어가는데, 곡식은 겨우 10일 치만 남았다"며 임금에게 참상을 알리고 대책을 호소하기도 했답니다.

수사, 재판 책임도 맡았어요

지금의 서울시장과 가장 큰 차이점은 한성판윤이 행정권뿐 아니라 사법권도 갖고 있었다는 겁니다. 주로 재산을 둘러싼 주민 간 분쟁을 맡았는데, 어쩌다 일어나는 강력 범죄가 아니라 매일같이 일어나는 분쟁이어서 골치가 아팠다고 합니다. 1536년(중종 31년) 한성판윤을 지내던 서지라는 사람은 "더 이상은 도저히 판윤 노릇을 못 하겠다"고 임금에게 호소했어요. 그는 "한성부에 소송하는 사람들은 다른 관청과는 다르게 (아주 작은) 한 치의 땅을 두고 싸웁니다. 시비하다가 조금이라도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오만한 말을 퍼붓습니다"라고 하소연했다고 해요. 수도에 사는 백성들의 재산에 얽힌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이 너무나 힘들다는 얘기였죠. 소송에 지면 대궐이나 한성부 앞에서 징을 치며 소란을 벌이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한성판윤은 도성 안팎에서 발견된 시신의 검시 업무도 맡았어요. 성종 때 한성판윤 이극균은 '급소에 상처가 없으면 타살 여부를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 '독살을 판단하기 위해선 은비녀가 필요하다'는 등 과학적인 검시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황희, 맹사성도 한성판윤이었어요

한성판윤은 당시 '정승이 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벼슬'로 인식됐다고 해요. 그만큼 경쟁도 치열했는데 쟁쟁한 인물들이 한성판윤 자리를 맡았답니다. 첫 한성판윤은 태조 이성계의 친구이자 조선왕조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운 성석린이었습니다. 세종대왕 때 명재상으로 이름난 황희와 맹사성, '동국통감'을 편찬한 서거정, 병자호란 때 외교 활동으로 이름난 최명길 등이 한성판윤을 맡았어요. 주로 문신이 이 자리에 앉았지만 행주대첩의 주인공인 권율 장군처럼 무신이 맡는 경우도 있었어요. 암행어사 박문수, 종두법을 보급한 지석영,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자결한 민영환 등도 한성판윤 출신이랍니다.

'최악의 한성판윤'은 고종 때 김홍륙인데, 그는 1898년 커피를 좋아하던 고종 황제를 독살하기 위해 커피에 아편을 탔어요. 고종은 곧바로 뱉어 버려 무사했지만 같이 마셨던 황태자(훗날 순종)는 적잖은 양의 아편을 삼켜 피똥을 쏟고 이빨이 빠지는 변을 당했다고 합니다. 이 일로 김홍륙은 교수형에 처해졌지요.

최근 연구에 따르면 조선 왕조 518년 동안 역대 한성판윤은 모두 2010대(代)에 달한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로 가면서 안동 김씨 등 특정 가문의 독점이 심해졌고, 임기는 점점 짧아져 오전에 임명된 사람이 오후에 교체되는 경우도 있었답니다.

[경성부윤과 서울시장]

1910년 한일 강제병합으로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한 일제는 수도 한성부를 '경성부'로 바꿨습니다. 이때는 한성판윤이 아니라 '경성부윤'으로 불렸죠. 경성부는 경기도 산하 지방관청이 되면서 역할도 크게 축소됐습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미 군정 때 부윤이었던 김형민이 제1대 서울시장이 됩니다. 이후 윤보선(2대), 이기붕(3·4대), 허정(8대), 김현옥(14대), 양택식(15대), 구자춘(16대), 염보현(20대), 고건(22대), 최병렬(29대) 등 정부에 의해 임명되는 관선 시장 시대가 있었습니다. 1995년 지방자치제가 본격 실시되면서 조순(30대), 고건(31대), 이명박(32대), 오세훈(33·34대), 박원순(35~37대)이 민선 시장으로 선출됐죠. 이번 보궐선거로 선출될 서울시장은 제38대 시장인데, 한성판윤과 경성부윤까지 다 치면 제2072대 시장이 되는 셈입니다.

유석재 기자 기획·구성=최원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