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세계의 박물관] 도자기·가구 예술품이 세계에서 제일 많아요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
- ▲ 영국 런던에 있는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의 모습입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최근 영국 왕실의 해리 왕자 부부가 미국 방송에 나와 왕실에서 살며 겪었던 사연을 털어놨습니다. 해리 왕자 부부는 왕실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영국을 떠나 미 캘리포니아에서 살고 있는데요. 영국 왕실 내부에서 일어난 가족 구성원들 간의 불만이나 갈등 사례는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1837년부터 1901년까지 64년 왕좌를 지켰던 빅토리아 여왕은 장남 에드워드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앨버트 공(公)이 장티푸스에 걸렸을 때 장남이 온갖 말썽을 피웠고, 남편이 그걸 수습하다가 병이 악화해 이른 나이에 죽은 거라 믿었거든요.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인 앨버트 공은 미술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었어요. 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았죠. 앨버트 공 덕분에 빅토리아 여왕은 재위 시절 박물관을 짓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적극적인 문화예술 정책을 폈어요. 남편의 예술적 업적을 기억하고 든든한 예술 후원자가 되기 위해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을 개관하기도 했답니다. 전 세계의 다양한 작품을 소장한, 공예 분야에서 독보적인 미술관이죠.
생활 미술 분야가 독보적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은 1851년 서구 열강의 기술력과 예술적 성취를 자랑한 런던 산업박람회 이후 그 수익금과 전시품을 토대로 이듬해인 1852년에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박물관 안쪽 정원에 있는 건물 벽면에는 빅토리아 여왕이 박람회가 열렸던 수정궁을 배경으로 서 있고, 그 양쪽에 세계 각국 사람들이 박람회에 전시할 물건들을 들고 모여드는 모습이 새겨져 있죠.
이 박물관은 영국 제조업자들에게 창의적인 자극을 주겠다는 취지에서 '제조 박물관'으로 불리다가, 1857년에 사우스켄싱턴으로 옮겨오면서 사우스켄싱턴 박물관으로 명칭을 바꿨어요. 그러다 빅토리아 여왕이 1899년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으로 다시 개명한 것이죠.
이 박물관에는 그릇, 가구, 유리·금속·섬유공예품, 의복과 장신구 등 세계 각지에서 만든 아름다운 작품들이 전시돼 있어요. 그림과 조각품도 있지만, 특히 생활미술 분야가 독보적입니다. 생활 미술품 소장 규모가 220만 점이 넘는 단연 세계 최대 공예 박물관이랍니다.
중산층의 예술 교육을 위한 박물관
이 미술관과 관련된 중요한 인물이 존 시프섕크스(John Sheepshanks)입니다. 시프섕크스의 집안은 18세기 말 섬유와 의류 산업으로 재산을 모은 신흥 중산층이었어요. 시프섕크스처럼 산업화 이후 새로운 부자로 등장한 중산층은 주로 제조업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귀족과 달리 직접 일을 해본 사람들이어서 검소하고 실용적인 태도가 몸에 배어 있었어요. 외국의 비싼 예술품을 사들여 집안을 장식하는 것은 이들의 정서에 맞지 않았습니다. 시프섕크스는 영국 문화예술을 이끌고 갈 주된 세력은 중산층이어야 한다고 믿었어요. 문제는 어떻게 중산층의 미적 안목을 높이는가 하는 것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아름다운 물품을 자주 보고 직접 사용해보는 것이 중요한데, 당시 막 돈을 벌기 시작한 대부분의 중산층들은 그럴 기회를 갖지 못했거든요.
귀족들이 외국 옛 거장의 그림을 경매에서 사느라 거금을 내놓을 때 시프섕크스는 현재 활동하는 영국 화가들을 후원하며 그들의 작품을 사들였어요. 시프섕크스는 그렇게 모은 유화 233점과 소묘, 수채화 등 298점을 사우스켄싱턴 박물관에 기증했어요. 누구라도 박물관에 와서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하고 미적인 감각을 키워가길 바랐던 것이죠. 빅토리아 여왕도 이 박물관이 중산층의 예술 교육을 위한 자리가 되길 적극적으로 지지했어요. 또 박물관의 초대 관장, 헨리 콜(Henry Cole)은 생산직 종사자들이 일을 마치고 작품을 관람할 수 있도록 야간까지 박물관 문을 열었어요. 전구가 발명되기 이전이라 가스등을 켜 전시장 주변을 밝혔다고 해요. 이 전통이 이어져 지금도 매주 금요일은 야간에도 박물관을 열어요.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아요
이 박물관에 가면 꼭 봐야 할 작품이 있습니다. 1775년쯤 만들어진 웨지우드의 크림색 찻주전자와 찻잔 세트입니다. 웨지우드는 18세기 중반 조지아 웨지우드가 공장을 세운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의 도자기 회사예요. 당시 귀족들이 사용하던 도자기는 값이 비싸서 아무나 사기 어려울 정도였죠. 웨지우드는 품질 좋은 그릇 제품을 많은 사람에게 공급하기 위해 공장 시스템을 도예 공방에 도입했어요. 중산층도 아름다운 그릇을 식탁 위에서 누릴 수 있게 했죠.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은 1858년 세계 최초로 사진 전시회를 열었고, 1973년엔 세계 박물관 역사상 최초로 록 콘서트를 개최했어요. 2013년에는 팝 음악의 전설이라고 할 수 있는 데이비드 보위 전시를 기획했어요.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이 주관한 이 전시회는 2018년까지 세계 곳곳에서 열렸고 약 200만 명이 이 전시를 관람했어요.
[런던 산업박람회와 수정궁]
1851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 최초 박람회입니다. 산업혁명 시기에 새로운 기술로 개발한 공산품과 함께 미술품, 건축물 등을 선보였어요. 5개월 동안 런던 인구의 2배에 달하는 600만 관중이 모였다고 합니다. 이 박람회는 '수정궁'<사진>이라 불린 거대한 건물에서 열렸어요. 수정궁은 벽돌 등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철과 유리를 조립해 만든 온실 건물입니다. 건물 전체를 유리로 지은 데다 구조물을 6개월 만에 조립해 '건축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아요. 박람회가 열린 해(1851년)를 기념해 전시장 길이를 1851피트(564m)로 지은 것도 특징이죠. 산업혁명을 이룩한 영국의 기술 발전을 한눈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건물인데, 1936년 화재로 소실됐어요.
- ▲ 박물관 건물에는 런던 산업박람회 당시 빅토리아 여왕의 모습이 새겨져 있어요.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위키피디아
- ▲ 박물관에 전시된 에드워드의 찻주전자와 찻잔입니다.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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