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한번 지은 건물은 절대 부수지 않는다" 낡은 건물 고쳐 '건축 노벨상' 받았죠

입력 : 2021.03.23 03:30

라카통과 바살

라카통과 바살이 설계한 파리 현대 미술관‘팔레 드 도쿄’의 지하 공간입니다. /프리츠커 재단
라카통과 바살이 설계한 파리 현대 미술관‘팔레 드 도쿄’의 지하 공간입니다. /프리츠커 재단
지난 16일 올해 프리츠커 건축상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은 1979년부터 매년 수상자를 결정하고 있습니다. 서울 동대문에 있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를 설계한 고(故) 자하 하디드도 프리츠커상을 받았어요. 올해 프리츠커상 주인공은 프랑스 건축가 안 라카통(65)과 장 필리프 바살(67)입니다. 이들은 1987년 공동건축사무소를 차려 지금까지 함께 일하고 있어요. 얼마나 멋진 건물을 설계했기에 최고의 건축상을 받았을까요?

라카통과 바살은 도시나 지역을 대표하는 화려하고 상징적인 건물을 짓는 데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건 바로 '건축의 지속 가능성'입니다. 그래서 '기존 건물은 절대 부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낡고 오래된 공동주택과 공공 건축물을 손보고 고쳤습니다. 기존 건물을 최대한 활용해 비용을 줄이고 친환경 재료를 사용한 것도 특징입니다.

프리츠커상은 특정 건축물이 아니라 건축가가 수상 시점까지 설계한 여러 작품을 기준으로 주어집니다. 라카통과 바살이 올해 프리츠커상을 받은 걸 놓고 건축계에서는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왔어요. 새로 짓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 이미 지은 건물을 지키면서 고치고 보완해도 충분히 건축의 발전을 이끌 수 있다는 거죠. 지금 건축계에서도 옛 공간을 고쳐서 새롭게 활용하는 게 유행하고 있어요. 또 두 사람은 다른 건축 거장들과 비교하면 주거 공간의 재생을 위해 더 노력했어요. 코로나 확산 이후 주거 공간의 중요성이 커진 것도 이들이 상을 받는 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라카통과 바살은 2017년 기존 주민들을 집에 그대로 살게 하면서 건물을 고쳐 짓는 공사를 진행해 화제가 됐어요. 건물을 한 번에 고치는 게 아니라 4년 동안 낡은 시설을 천천히 고친 덕분에 수백 명이 공사 중에도 일상을 온전히 보낼 수 있었죠. 파리 현대 미술관 '팔레 드 도쿄'도 이들이 고쳤어요. 팔레 드 도쿄는 1937년에 지은 건물인데요. 시간이 지나 더 큰 전시 공간이 필요했어요. 두 사람은 새로 박물관을 늘려 짓지 않고 지하 공간을 활용했어요. 지하 공간은 마치 동굴처럼 어두운 느낌과 묘한 분위기를 줬는데, 덕분에 이 박물관이 더 유명해지는 계기가 됐다네요. 라카통은 "변형은 이미 존재하는 걸 발전시킬 기회"라면서 "철거는 쉽고 단기적인 결정"이라고 했어요. 이들은 건축은 우리 삶이 지속할 수 있도록 조용히 도움을 주는 존재라고 믿고 있습니다.

전종현 디자인건축 칼럼니스트